[Growing up in Concrete Forest]

뉴욕서 뉴욕으로 떠난 여행

 글 심지아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딸이 분주히도 움직인다. 스쿨버스 시간에 맞추어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 아침도 빨리빨리 먹고 시키지 않아도 이 닦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오늘은 플랫 아이언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간다고 미리 말을 해 두었더니 그런다. 길이 안 막히면 15분에서 20분밖에 안 걸리는 업타운에서 다운타운으로 가면서 여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그만큼 체감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뉴욕은 참 좁고도 큰 도시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브루클린 파크슬로프에 사는 친구에게 맨하탄 어퍼웨스트사이드에 집을 계약했다고 하자 한숨을 푹 쉬면서 “We will never see you guys!!!!” 라고 외쳤다. 친구네 집에 한번 놀러 가려면 차를 타고 30분에서 한 시간은 기본으로 다니던 캘리포니아에서 온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하철 타면 아무리 오래 걸려도 40분이면 오는데 우리가 왜 자주 못 보겠느냐 했더니, You will see!라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친구가 오버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뉴욕에 이사 온 4년간 브루클린에 간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이니 그녀 말이 맞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드넓은 미국 땅에 맨해튼은 정말 작은데 그 작은 도시를 동네별로 잘게도 잘라 놓았다. 뉴욕 사람들은 자기 동네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자부심도 강하다. 딱히 약속이 있지 않은 이상, 자기 동네를 잘 벗어나지도 않는다. 우리 부부 역시 그러한 편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집 반경 1마일 안으로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아이들 애프터 스쿨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안에 넘치도록 선택지가 많으며, 레스토랑도 너무 많아 집 앞에 있는 곳들도 부지런히 다녀야 다 가볼 수 있을 정도여서 외식하러 멀리 갈 일이 없다. 플레이 데이트를 딱히 계획하지 않아도 집 앞에 즐비한 놀이터 중에 아무데나 가면 친구를 마주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동네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게 되고, 애들도 다른 동네에 갈 일이 더더욱 없다. 그래서, 이렇게 주말여행으로 지하철을 타고 멀리멀리(그래 봤자 3마일 정도의 거리) 다른 동네에 가는 것이 특별한 이벤트가 된다.

 

 

집 앞에서 지하철을 타고 타임스퀘어역에서 NRW노선의 지하철로 갈아탔다. 익숙지 않은 라인이라 딸도 우리가 어느 스테이션에서 내리는지 몇 번이고 물어보더니 되뇌이고 있다. 엄마!! 23rd!! 우리 내려야 해! 작은 손에 이끌려 지하도 밖으로 나가니 다리미 빌딩은 공사 중이었다. 그 곳은 우리 동네에 비해 사람이 엄청 많이 걸어 다니고 있는 메디슨 스퀘어 파크 입구였다. 20분 지하철을 타니 분위기가 이렇게 확 바뀔 수가! 센트럴 파크가 소설책 안에서 다음 막으로 넘어가기 전 비어있는 페이지라면 메디슨 스퀘어 파크는 줄 바꿔 쓰기 같은 느낌이 든다. 이야기가 빠르게 이어져가는 중에 잠시 숨 고르고 리턴 버튼을 누르는 느낌.

 

메디슨 스퀘어 파크에 만들어 놓은 bee hive도 구경하고 나무 의자들을 쭉 늘어놓은 인스톨레이션 아트를 둘러보고 있으니 현지인 친구 이비와 올리비아가 저 멀리서 스쿠터를 타고 손을 흔들며 달려온다. 지난주에도 봤는데 부둥켜안고 기뻐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 함께 여행지 맛집인 쉐이크쉑에서 점심을 먹었다. 울 학교 앞에도 쉐이크쉑이 있는데 메디슨 스퀘어 파크 내 오리지널 키오스크 앞에 놓여있는 녹색 철제 의자에 앉아 비둘기들 쫓아내며 먹으니 왜 특별히 더 맛이 있을까? 햄버거랑 치즈 프라이를 신나게 나눠 먹고 아이들과 메디슨 스퀘어 파크 북쪽에 있는 Museum of Math – MoMath에 갔다. 입구 손잡이가 원주율 파이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수학인 딸은 들어가기 전부터 기대가 가득하다. 빨간색 Catenary 선 위로 타면 바퀴가 네모로 되어 있는 자전거도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잘 나아간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다양한 수학의 원리와 연관된 현상들에 대한 설명도 터치스크린에 자세히 나와 있다. 집에 앉아서 수학 문제지 한 장 풀려면 온몸이 배배 꼬이는 아이들이 사뭇 진지하게 내용을 읽어본다. 지하실로 내려가면 더 다양한 수학 원리를 이용한 게임들이 많이 있다. 열심히 보드게임을 풀고 있는 어른들도 많이 보인다. 한참을 놀고 나와 근처 아이들은 이비, 올리비아 집으로 갔다. 나는 길 건너 Eataly에 들러 제철 과일이랑 Eataly에서만 구할 수 있는 몇 가지 치즈를 샀다. 뉴욕에 ‘없는 것’은 ‘없는 것’뿐이라더니 Eataly에는 모든 특이 식재료가 다 있다.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뒤늦게 이비네 집으로 가니 또 다른 친구 켄싱턴이 와있었다. 어른들은 켄싱턴 엄마가 새로 생긴 베이커리에서 사 온 이쁜 슈와 와인을 먹고 아이들은 마리오 카트를 하고 놀았다. 너무 늦지 않게 여행을 마무리 짓고 싶었는데 이 동네에 오면 지나칠 수 없는 특산품점인 해리포터 스토어와 캠프 스토어가 눈에 밟혀 결국 캠프 스토어에 들리고 말았다. 평범하고 작은 장난감 가게처럼 보이는 캠프 스토어에 있는 선반 중 하나는 비밀의 문이다. 비밀의 문을 밀고 들어가면 엄청 넓고 큰 장난감 가게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Toy Speakeasy가 나타난다. 시간을 잘 맞추면 크래프트 수업도 들을 수 있고, 커다란 트럭을 타거나, 스팽글이 가득한 방 안에서 춤도 추고, 나무 모양의 미끄럼틀 등에서 무료로 맘껏 놀 수 있다.  마법 놀이를 하는 걸 좋아하는 딸은 마법 도구들이 들어 있는 토끼가 그려진 주머니 하나를 쥐고서 기쁘게 가게를 나섰다.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길로 나서니 Empire state building에 불이 들어와 있다. 뉴욕 여행을 마치고 뉴욕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 train 을 찾아 서둘러 걸어갔다. 

 

 

오늘 여행 즐거웠어? 응 너무 재미있었어. 다음엔 어디를 갈까? 다음에는… 정말 멀리 가볼까? 브루클린 어때? 힉? 브루클린?! 정말 멀지 않아? 좀 멀지만 익스프레스 라인을 타고 가서 레인보우 베이글도 사먹고, 도미노 파크에 있는 민트색 놀이터에서도 놀고, 아쿠아리움도 가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래! 재밌겠다. 그러자. 우리 또 뉴욕으로 여행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