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어떻게 아이 치아가 이렇게 백옥 같을 수 있어요?” 

큰 아이의 빠진 젖니를 보고 치과의사 눈이 휘둥그레 졌다.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부터 아내는 수유를 한 후, 골무처럼 생긴 유아용 칫솔을 손가락에 끼고, 치아가 아직 올라오지도 않은 아이의 잇몸과 혀를 닦아주는 일을 빼먹은 적이 없다. 그렇게 수년간 닦인 젖니가 빠지니 마치 표백제에 며칠간 담갔다가 광을 낸 것 같았던 것이다. 아내가 아이들 치아관리에 이렇게집착하는 이유는 자신의 어린 시절 때문이다. 아내 어린 시절 온갖 군것질을 섭렵한 덕에 성한 이가 없었고, 끝내 건지지 못한 한두 개는 의치로 대처해야 할 정도였다. 신혼 때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남편 이빨도 닦아야겠다며 칫솔을 들고 덤비는 바람에 수개월간 전쟁을 치렀었다. 아이 초등학교 때, 하루는 방과 후 아파트 문을 박차고 들어온 아이가 엄마를 불러댔다. “Mom, I’ve got a lot of lollies and candies from my friend’s birthday party at school today.” 책가방에서 사탕을 잔뜩 꺼내더니 엄마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게 아닌가? 아니 얼마나 세뇌를 시켰으면 저렇게까지… 이런 아내의 경이로운 헌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우리 온 식구들의 치아를 A+ 등급으로 만들어 놓으셨으니. 아이러니는 아직도 아내는 밥보다 디저트에 관심이 많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dark chocolate icecream이다. 이제 하이틴이 된 아이들이 왜 엄마가 주로 자기들이 잠든 야밤에 쇼핑을 가는지를 눈치챈 거 같다.

언제부턴가 뉴욕시에 기부할 도네이션 예산을 생활비에 포함시켰다. 평균일 년에 두세 번 정도 시 계좌에 입금을 시킨다. 말이 도네이션이지 사실 자의적으로 내는 것은 아니다. 교통 위반 벌금을 내는 게 너무 배가 아파서 시에 기부한다고 자위하는 것이다. 잘하는 운전의 정의는 옆에 탄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는 운전이다. 바쁜 뉴욕 생활에서 이동 중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다면 요즘 말로 “개꿀”같은 시간이다. 그런데, 내가 운전을 하면 아무리 피곤해도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든다는 분이 있다. 내가 만든 좋은 운전의 거룩한 정의는 언제쯤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갖고, 가정이나 사회생활을 통해 인생경험이 쌓이면 나름대로 가치관같은 것이 생긴다. 자신의 확신이나 신념을 남들 앞에서 주장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가 늘 확신을 갖고 말하는 것이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잘 안보인다는 점이다. 심지어 자신이 하는 말의 반대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중학교 한문시간에 배운 사자성어 “표리부동”表裏不同 이란 말은 일상생활에서는 잘 듣기 어렵지만, 유사하게 해석할 수 있는 “내로남불”, “선택적 정의”같은 말은 요즘 언론이나 SNS를 통해 자주 접하게 된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 중 가장 위대한 왕은 다윗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대왕급이다. 정치, 외교, 군사적 능력뿐 아니라, 예술적 재능도 탁월하여 무수한 시편을 지었고, 연주자 겸 singer songwriter였다. 고대 근동의 작은 부족 국가 이스라엘을 주변 어떤 나라도 넘보지 못하게 초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국민적 영웅이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전 오랫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의 시간을 겪었는데, 정작 더 어려운 시간은 왕이 된 이후였다. 나라에 충성하던 장군의 아내를 범한 다윗의 일탈은 당시 최고 권력자의 위상으로는 한 줄 기사거리도 안되는 해프닝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평성대가 지속되던 어느 날 자신의 자녀들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부왕은 그 일로 인해 분노했지만, 침묵으로 덮어버렸다. 그 일과 너무나도 닮은 자신의 과거 행적 때문에 상황을 올바로 잡기 위한 어떤 말도 전혀 권위가 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다윗 왕가는 비극의 역사로 남았다. (사무엘하 13장) 다윗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따라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지만, 사실 그의 가족사는 불행했다. 신앙과 실력, 재능과 용기 등 그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많은 것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반하는 악한 행동으로 인해 인생에 오점을 남긴 것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로 깨끗해야 그나마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도면 괜찮은 것일까? 가정을 가진이들은 이 기준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잘 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가족이 24시간 붙어있어야 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라 이미지 포장도 어렵다. 아직 자기 가정을 갖지 않은 이들은, 주변에 존경할 만한 어른을 거의 찾기 어렵다는 것으로도 이 기준이 쉽지 않음을 짐작할 것이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 문예 작품을 즐기는 이유 중 하나는 대리만족이다. 나의 표리부동의 gap을 멋지게 채워주지 않는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시인 자신의 고뇌를 고백한 이 시에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는 것 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 북부 어촌에 목수 하나가 살고 있었다. 나라가 이미 다 망해서 왕손이라 불리기 무색하지만, 이 집에 태어난 아이는 오래전 몰락한 다윗 왕가의 자손이었다. 30년 남짓 사는 동안 이 사람은 말과 행동, 겉과 속, 신념과 삶이 완전히 일치했다. 나는 20대 때 삶의 변화를 한번 겪었다. 사람이 정말 바뀔 수 있겠다는 소망이 생겼었다.그건 30개월 전방 군생활이었다. 첫 휴가를 나와서 집안을 다 뒤집어 놓았다. 막내였던 나는 온 가족을 향해 사는 게 이렇게 엉망일 수 있느냐고 소리쳤다. 집 안 옷장을 비롯해서 모든 물건에 “각”을 잡아 놓았다. 나의 언어와 행동도 물론 깔끔하게 각이 잡혀있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나의 군기는 제대 후 3개월 만에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 다윗의 자손을 만나게 되었다. 그를 만난 지 35년째, 아직 난 우리 아이들 앞에서, 아내 앞에서도 자신이 없다. 여전히 하늘을 우러러 많이 부끄럽다. 하지만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분으로 인해 사람답게 살고픈 소망을 버리지 않았다.다윗 왕조는 역사 속에 사라졌지만, 다윗의 자손은 지금 나의 왕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를 만나보면 좋겠다.

 

 

주진규 목사

•맨하탄 GCC (Gospel Centered Church,복음으로 하나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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