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달리면, 더 멀리 간다!

나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이야기
글 주니어 리포터 선지우
다른 세계로 떨어지거나 시간을 돌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때론 유혹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실상은 정반대에 가깝다. 바야흐로 2년 전, 나는 친구들과 가족의 테두리 너머 그 동안 이루고 가꾼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 이민은 나의 선택이었다. 한국의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너무 숨이 막혀서. 그 당시 내 또래에게 90점 이하는 이미 낙오자였다. 우리는 고작 14살 이었지만 말이다. 학교가 끝나면 서너 시간은 기본으로 놀던 아이들이 어느 날부터 집대신 스터디 카페에서, 노는 법을 까먹은 듯 밤을 새워 학원 숙제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일상을 채웠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정말 학원 최상위반에서 버티는 것만이 뒤쳐지지 않을 유일한 방법인 줄 알았다. 그 미국 유학 브이로그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작은 화면 속 유학생들은 하루 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미국에만 간다면 나도 자유로운 그들처럼 될 것만 같았다. 그토록 힘들어했던 한국에서의 일상을 그리워 할 줄도 모르고.
처음 일 년은 학교를 다녀오면 딱 다섯 시간씩 낮잠을 잤다. 익숙하지 않은 학교 생활, 마음 붙일 데도 없는 곳에서 모국어도 아닌 언어를 쓰다보니, 학교만 다녀오면 죽은 듯이 잠에 빠졌다. 그러다 보니 숙제도 겨우 했고, 다니는 학원도 활동도 없다 보니 자괴감에 빠져 우울해하기만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악순환이였다. 그 고리를 끊은 것은 다름아닌 운동이었다. 학교 생활 중 미국과 한국 의 가장 다른 점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어릴 때는 태권도, 발레, 수영 등 많은 운동을 시키면서 정작 고등학생이 되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운동이다. 예체능 대입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면 운동은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미국은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동에 진심이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회 준비를 철저히 하고,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운동에 맞출 정도로 진지했다. 나의 첫 운동은 크로스 컨트리였다. 입학 시기가 늦었던 나에게는 크로스 컨트리밖에 선택지가 없었고, 그나마도 늦게 팀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팀에 민폐를 끼칠까봐. 왜냐하면 팀에 합류하자마자 대회에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 기록은 35분이었다. 우리 팀 평균이 25분이였으니, 내 기록은 팀에 더 부담이 되는 셈이었다.
첫 대회 당일 아무도 날 다그치지 않았다. 혼자 미안해서 쭈뼛거리고 있는 나에게 누구도 싫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나였다면 속상했을 것 같은데. 그 이후 연습 때마다 자꾸 멈추려고 하는 내 옆에서 페이스를 맞춰 달려주었다. 대회 때는 1마일마다 서서 응원해주었다. 내가 아무리 못해도 다독여주고 응원해주는 팀에서 달리다 보니 내 기록은 어느새 10분 넘게 빨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가기 싫던 연습도 오늘은 어디로 달릴지 궁금해졌다. 무거웠던 발걸음은 나도 모르는 새 가벼워졌다. 매일 서너 마일 씩 달리다 보니 체력이 좋아지고, 덩달아 땀을 흘린 후 기분도 좋아지면서 내가 통째로 바뀌었다. 체력이 좋아지고 팀원들과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다보니 낮잠을 안 자게 되고, 낮잠을 안 자니 할 수 있는게 많아지면서 하루를 낭비했다는 자책에서 오는 자괴감도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잘 하지 못해서 무서웠던 운동이 미국 생활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뒤바꿔 놓았다.
이게 벌써 재작년이다. 문득 내가 스스로 원해서 와도 이 고생을 했는데, 가족들 따라서 온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돕고 싶다. 우울하고 앞이 보이지 않던 내게 크로스컨트리는 내 마음 속 빛을 밝혀 길을 보여주었다. 저마다 다른 마음 속 빛을 꺼내어 길을 알려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면 된다. 물론 그 무언가를 찾는건 쉽지 않다. 나만 해도 일년이 걸렸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몇 개월, 몇 년 혹은 정말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들 속에 있는 빛을 내가 꺼내어 줄 순 없지만 내 빛을 꺼내준 힘은 보여 줄 수 있다. 바로 함께라는 힘. 크로스 컨트리에서 함께 달렸기에 끝까지 해낼 수 있었고 나를 암흑에서 꺼낼 수 있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처럼 하나보단 둘이, 둘보단 셋이 불러내는 빛은 찬란할 것이다.
선지우(Amber) – NVOT 11학년. 한국에서의 경쟁 사회를 떠나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낯선 환경 속에서 크로스컨트리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며, 함께하는 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운동을 통해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 창작과 교류를 즐기며, 더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