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강, 삶의 여정과 가족, 그리고 ‘피’를 말하다

앵커리지에서 뉴욕까지, 가족, 예술, 의학을 잇는 스티브 강 박사(Dr. Steve Kang)의 특별한 발자취

금요일 오후, 퇴근길의 꽉 막힌 트래픽을 뚫고 스티브 강 박사(Dr. Steven Kang)와 살랑살랑 봄바람 같은 미소로 주변을 밝히는 김태경 작가 부부가 더 앰 스튜디오를 찾았다. 스튜디오의 해 질 무렵 가장 아름다운 곳에 부부가 자리한 뒤 설렘과 쑥스러움이 섞인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유쾌한 수다로 바뀌었다. 마치 TV 예능의 톱 진행자와 같이 자연스럽고 막힘없는 스티븐 강 박사의 언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심지어 김태경 작가조차 “나도 몰랐던 이야기가 있었네요”라며 눈을 반짝일 정도였다. 웃음과 공감 속에서 진행된 이번 인터뷰에서 가족, 커리어, 앵커리지와 뉴욕, 그리고 예술과 의학을 아우르는 강 박사 부부의 특별한 삶을 온전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1. 앵커리지에서 자란 ‘시골 소년’, 뉴욕의 의사가 되다
스티브 강 박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세살에 알래스카의 작은 섬인 코디악(Kodiak)으로 이주하여 성장기를 보냈다. 그가 떠올리는 어린 시절의 앵커리지 풍경은 끝없는 자연과 더불어 ‘교외(suburb)’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앵커리지는 뉴저지처럼 대부분이 교외 느낌이라, 의외로 많은 한인이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병원과 군 시설에서 근무를 하고 계십니다. 저희 부모님도 병원에서 일하셨어요.” 앵커리지 주민에게 여름은 ‘연어 시즌’과 동의어다. 주말마다 가족 및 친구들과 낚시를 즐기며, 어디서 얼마나 잡았는지가 늘 화제였다. 알래스카 주민만 누릴 수 있는 ‘디핑 넷(dip net) 낚시(3미터가 훌쩍 넘는 긴 장대 끝에 거대한 그물을 달아 강어귀에서 그대로 연어를 건져 올리는 방식)’는 스티브 강 박사가 간직한 ‘앵커리지 추억’의 대표 장면이다. 알래스카의 겨울은 해가 일찍 지고 밤이 긴 덕에 대형 조명 아래 눈 덮인 산에서 야간 스키를 즐기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 “대낮처럼 환히 비치는 슬로프에서 밤새 스키를 타는 경험은 정말 특별하죠.”

2. “이날을 다시 산다면…” 30시간 진통의 드라마
그가 인생에서 다시 살고 싶은 하루로 주저 없이 아들이 태어난 날을 꼽았다. “아내가 30시간 가까이 진통했지만, 아기가 ‘써니 사이드 업’(머리가 아니라 얼굴이 위를 향한 자세)으로 버티다 보니 결국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어요. 그 와중에 저는 부동산 에이전트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집 계약서에 서명해야 했죠. 새 가족과 새 보금자리가 동시에 생긴, ‘혼란스러운 축복의 하루’였어요.” 강 박사 부부는 당시 맨해튼에 살고 있었지만, 그날 윌리엄스버그에 새 아파트를 계약했다.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계획하던 그때의 떨림과 행복이 여전히 생생하다는 그는, “가족의 탄생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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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족으로 인한 우선순위의 변화
가족이 생기기 전까지 ‘커리어’가 인생의 전부였던 그는 이제, 상황에 따라 가족과 커리어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말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늘 50:50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가족이, 때로는 커리어가 최우선이 될 수 있죠. 하지만 결국 큰 그림을 보면,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건 변함없는 진리예요.” 뉴욕이란 도시는 늘 숨 가쁜 속도를 자랑하지만, 이 도시에 살고 있는 강 박사 부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첼시 주변이나 리틀 아일랜드, 허드슨 강변을 조용히 산책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스티브 강 박사는 “알래스카 특유의 여유로움을 그리워하면서도, 대도시가 주는 무한한 기회와 다양성을 즐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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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로 다른 뇌의 만남, left brain vs. right brain
아내 김태경 작가는 일본의 유명 예술가인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비주얼 아티스트다. 반면, 스티브 강 박사는 엄격한 의학 세계에서 혈액 응고, 출혈, 수혈 의학 등 “피”를 다루는 상당히 섬세하고 전문적인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MBTI로 치자면, 저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성향이 강하고, 아내는 직관적이고 창의적인 면이 두드러져요. 한쪽이 빠뜨린 부분을 다른 쪽이 채워주며, 다른 시각을 서로에게 제공해 주는 게 결혼의 장점이죠.” 두 사람은 만남의 계기도 색달랐다. 본래 친구의 ‘소개팅’ 자리였으나, 식사 자리에 참가자가 빠지면서 김태경 작가가 ‘대타’로 합류했고, 그 순간 스티브 강 박사의 눈에 김태경 작가가 확 들어왔다고 한다. 이후, 스튜디오와 병원이 가까워 점심을 자주 함께하며 두 사람은 인연을 키워나갔고, 결국 두 사람은 부부의 연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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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프라이즈 청혼과 세금 없는(?) 알래스카의 이점
결혼을 결심한 스티브 강 박사는 자신이 졸업한 스탠퍼드 대학교의 로댕(Rodin) 조각 공원에서 이색적인 프러포즈를 했다. “핸드폰 앨범 속 사진들을 넘기다 보면 ‘Will you marry me?’라는 메시지가 등장하도록 만들어 두었어요. 아내가 조각들을 구경하다가, 결국 그 문구를 보게 되었죠.” 더 재밌는 점은 프러포즈 반지를 알래스카에서 공수해온 사실이다. 알래스카는 주 세금이 없는 데다, 오일 산업으로 주민들은 매년 일정 금액의 ‘배당금’을 받을 정도로 재정이 풍족하다. “부모님이 그 반지를 가지고 비행기로 오셨는데, 판매세가 전혀 없어 한 푼이라도 더 절약할 수 있었죠,”라며 강 박사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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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남자의 ‘장난감’ 그리고 18세로 돌아간다면
스티브 강 박사는 친구들과 차 한 잔 혹은 가벼운 술자리를 가질 때, 종종 ‘남자들의 장난감’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고 한다. “기술이나 개인용 기기, 최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이 대화가 투자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슈퍼카나 하이퍼카 이야기 역시 빠지지 않죠. 실제로 살 수는 없지만, 꿈의 자동차에 관해 이야기하면 막 설레잖아요.” 하지만 이런 취미 이야기와 별도로, “만약 18세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의사가 되고 싶겠지만, 굳이 바꾼다면 ‘방사선 영상의학(라디올로지)’ 같은 분야로 진로를 바꿨을지도 몰라요. 기술 발전 덕에 원격으로 이미지를 판독도 가능해졌고, 굉장히 흥미로운 분야죠.”

7. AI 시대에 의사의 길
디지털과 AI 기술이 가파르게 발전하는 시대, 과연 의학 분야도 대체될 수 있을까? 스티브 강 박사는 “의료 현장은 각종 규제와 면허 제도, 그리고 생명이 걸린 문제라 상대적으로 AI 침투가 더딜 것”이라 전망했다. “의사들은 대체가 아니라 ‘도구’로서 AI를 활용하게 될 겁니다. 정확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보조 역할이랄까요. 하지만 우리 의료진이 인간적인 통찰과 공감을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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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덴마크에서 만난 미식의 세계
강 박사 부부는 여행을 통해 일상의 피로를 푸는데, 여행한 곳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도시로 ‘코펜하겐’을 지목했다. 아내 김태경 작가의 남동생이 스웨덴에 레스토랑을 오픈하여 방문하게 되었고, 운 좋게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로 꼽히는 ‘노마(Noma)’ 예약에 성공했다고 한다. “노마에 들어서면 셰프들이 직접 문 앞까지 나와 맞아주는 장면부터 충격적이었어요. 테이블보다 셰프 수가 더 많을 정도로, 요리에 쏟는 정성이 대단했습니다. 별도의 주스 페어링이 제공될 정도로 미식에 진심이더군요.” 여행 중에 들른 ‘몬츠 클린트(Møns Klint)’라는 덴마크의 해안 절벽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새하얀 석회암 절벽이 햇볕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였다고. “알래스카처럼 웅장한 자연은 아니지만, 또 다른 형태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9. 부모님, 교회, 그리고 세대를 잇는 가교(架橋)

앵커리지의 한인 사회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스티브 강 박사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한인 교회에 다녔고, 그곳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 전국으로 뻗어 나갔지만, 여전히 끈끈한 유대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앵커리지 한인들은 이민 1세대가 많아 1970~80년대 한국 문화가 마치 ‘타임캡슐’처럼 남아 있기도 해요. 한국 드라마를 보며 향수를 달래는 분들도 많고요.” 그는 현재 SUNY Downstate 의대에서 부학장(Dean)으로 재직 중이며, 특별히 한국계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민자 가정 출신 학생들은 부모님의 지원이나 정보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어요. 제가 그들에게 ‘넌 소중하고, 여기서도 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항상 전하고 싶어요. 한국계 학생, 더 나아가 모든 학생에게 의미 있는 가교가 되고 싶습니다.”

10. ‘피’를 연구하는 의사로서의 사명과 헌혈의 가치
스티브 강 박사의 전문 분야는 혈액 응고와 수혈 의학(Transfusion Medicine)이다. 그는 환자에게 필요한 적혈구, 혈소판, 희귀한 응고 인자 등을 배분하고 승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위중한 환자에게 쓰이는 초고가 응급약(수만 달러에 달할 수 있음)에 대한 처방은 늘 그의 확인을 거쳐야 한다. “24시간 대기하는 이유가, 이 약물 사용이 잘못되면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고, 병원 비용도 엄청나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생사가 걸린 순간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코로나19 당시에는 뉴욕 시내 대형 병원들은 심각한 혈액 부족 사태에 시달렸다. “주말과 연휴만 되면 헌혈자가 부족해서 실제로 혈액이 ‘동나버리는’ 위급 상황이 벌어지죠. 또 인종마다 항원형이 달라, 한국인에게는 한국인 혈액이 호환성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분이 헌혈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스티브 강 박사는 가족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동시에 의사로서 환자를 위해 24시간 대기하는 헌신적인 삶을 살아간다. 앵커리지의 평온함과 뉴욕의 역동성, 비주얼 아트와 수혈 의학의 만남처럼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스파크가 그의 인생을 더욱 다채롭게 빛내주고 있었다. 그가 강조하듯 “가족이 우선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치열하게 몰입할 때가 있다”는 점은 우리가 인생에서 조화로운 밸런스를 찾는 데 작은 실마리가 돼줄지도 모르겠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마치 재미있는 한 편의 영화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또 한 잔의 와인을 기울이며 “속편”을 예고했을 정도였다. 너무 반듯하면서도 따뜻한 시골 소년 같은 스티븐 강 박사와 언제나 아름다운 미소로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는 김태경 작가 부부. 이 귀한 부부가 앞으로도 영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어가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계속적으로 끼칠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오늘, 이들과 더앰 매거진 스튜디오에서 만들어 낸 또 한 챕터의 스토리가 우리에게 더 큰 행복을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