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김(Mike Kim): 독특한 유년 시절에서 마케팅 전략가로 거듭나기까지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무엇이 행복을 주고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솔직해져야 합니다.”
– 마이크 김(Mike Kim)

성장 배경 & 어린 시절

“안녕하세요, 저는 마이크 김(Mike Kim)입니다.
서비스나 제품을 홍보하려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자문과 마케팅 전략을 제공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멋진 제 스튜디오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리버 엣지(River Edge)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 이름은 ‘리버데일(Riverdale)’이었고, 이 주변 교회도 다녔죠.
그래서 여기가 제 ‘홈그라운드’ 같은 곳이에요.
어릴 때는 좀 독특하게 자랐던 것 같아요. 우리 가족에게도 나름의 어려움들이 있었거든요.”

“부모님 두 분 다 일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여동생과 저는 집에 단둘이 남아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 시기에 저도 모르게 생긴 습관이나 성향들이 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제 비즈니스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어릴 적에 책 읽는 걸 정말 좋아했습니다.
장난감도 많지 않고 케이블 TV도 없어서 상상력을 발휘할 일이 많았죠.”

어린 시절의 일상 & 가족 분위기

“저는 늘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스토리 중심의 영화나 비디오 게임, 만화책 같은 걸 정말 좋아했죠.
물론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이었으니 밖에서 뛰어노는 시간도 충분했어요.
친구들과 농구를 자주 했고, 교회 청소년부 활동을 통해 음악에도 꽤 많이 참여했었죠.
되돌아보면 제 어린 시절은 그렇게 고립돼 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세세하게 챙겨주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스스로 할 일을 알아서 해야 했던 삶이었던 것 같아요.”

“‘이걸 꼭 해야 한다, 저걸 해야 한다’ 식의 지도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과는 좀 달랐죠.
보통 한국 부모님들은 ‘수학 잘해야 해, 의사나 변호사가 돼야 해’ 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전혀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아버지는 인생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셨어요.
딱 정해진 커리어가 있었다기보다는, 아주 재능이 많고 똑똑하신 분이었지만
계속 직업을 바꾸시고, 또 다른 유혹(부정적 습관) 때문에 집중을 못 하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태권도 3단이셨고, 정치학 전공으로 대학에서 아마도 차석으로 졸업하셨다고 들었어요.
그 뒤 자동차 영업도 잠깐 하셨고, 다양한 잡일을 전전하셨죠.
굉장히 재능이 많은 분이셨지만, 하나에 오랫동안 집중하지 못하고,
또 다른 유혹들이 있어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셨던 것 같아요.
반면 어머니는 가정을 붙잡아 주는 안정적인 버팀목이었어요.
집안일도 하고 아버지도 챙기고 저희도 돌보면서 항상 열심히 사셨죠.”

어머니의 노력 & 자유로운 분위기

“어머니는 정말 대단한 근면함을 가지고 계셨어요.
제가 어릴 때는 밤샘으로 두세 가지 일을 병행하실 때도 있었어요.
어머니 얼굴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죠.
그래도 저는 밤늦게까지 깨어서 어머니 돌아오시길 기다리곤 했어요.
어머니께서는 한국에서 홍익대학교(홍대)를 나오셨는데,
유명한 예술학교 출신이셨죠.
하지만 저희를 키우기 위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 미용 자격증도 따셨고,
정말 다양한 일을 하셨어요.”

“기억나는 건, 제가 어릴 때 ‘키쿠(Kiku)’라는 식당에서 잠시 일하셨고,
밤에는 우체국에서 야간 근무도 하셨죠.
그렇게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서 모든 걸 감당하고, 또 다 감싸 안으셨던 것 같아요.
성격도 굉장히 여유로우셨고, 깐깐하게 애들을 들볶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런 식으로 간섭도 잘 안 하셨고요.”

“아마 예술 전공자로서 그런 자유분방함을 가진 게 아닐까 싶어요.
사실 두 분 다 그런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계셨고,
저나 제 여동생에게 ‘너희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한 적은 없었죠.
그저 학교 공부만 충실히 하고, 스스로 할 일 잘하고…
게다가 저희가 각각 다른 재능과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셔서,
그걸 나름대로 존중해 주셨던 것 같아요.
보통 한국 가정과 많이 달랐죠.”

“지금 와서 보면, 좀 더 체계적인 교육이나 ‘한국어는 꼭 배우자’ 같은 게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해요.
아니면 뭔가 하나에 집중하도록 몰아주셨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마 ‘누가 시키는 건 싫어’ 하는 제 성향도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았을지도 모르죠.
어쨌든, 그렇게 자랐습니다.”

언어 교육 & 아버지의 영향

“부모님께서는 저한테 한국어를 굳이 강요하지 않으셨어요.
당시에는 아이를 이중 언어로 키우면 혼란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여동생과 저에게는 영어 중심으로 교육을 하셨죠.
두 분 다 영어를 잘하셨어요.
아버지도 영어가 굉장히 유창하셨고요.”

“어머니는 조금 뒤에 더 연습하셔서 점점 잘하게 되셨고요.
어릴 때 기억나는 건, 아버지가 저녁마다 저를 자리에 앉혀 놓고
신문을 같이 읽게 시키셨다는 거예요.
어머니도 옆에 계시고, 거실에 다 같이 앉아서 제가 큰 소리로 신문을 읽어야 했죠.
혹시 한국어였느냐고요? 아니요, 영어였어요.
그래서 전 아버지께 꽤 고맙게 생각해요.”

“게다가 아버지는 운전 중에도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고 단어를 공부하셨어요.
제가 좀 더 커서야 ‘아, 아버지가 운전 중에도 공부를 하셨구나’ 하고 알게 됐죠.
차 안을 완전히 학습 공간으로 바꾸셨던 거예요.
그때는 라디오나 뉴스 같은 걸 듣지 않으셨고, 오로지 어학테이프에 집중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아마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쪽으로 내려오는 언어·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해요.”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언어, 글쓰기, 소통에 능하신 분들이었죠.
그 부분은 정말 감사히 물려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부모님께서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필요한 거 하다 보면 괜찮다’는 정도의
메시지만 주셨던 것 같아요.”

인생 조언 & 솔직함의 중요성

“만약 제가 어린 시절의 저에게 조언을 할 수 있다면—지금 제 나이가 마흔여섯인데,
사실 어느 시기의 저를 만나는지에 따라 또 다르겠지만—
결국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그 어린 저 자신이 들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네가 진짜 원하는 것,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그리고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아닌지,
거기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정직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분명하게 인정하는 게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말이죠.
저는 우리 가족 특유의 분위기나 환경으로 인해
여러 가지로 조건화된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물론 부모님 얘기를 좋은 쪽으로 많이 했지만,
솔직히 우리 가족도 다른 가정들처럼 문제도 많았어요.
집 안에 싸움이나 갈등이 잦았고, 늘 긴장감이 감도는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를 더 화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제 자신을 많이 닫았던 것 같아요.
아이가 그런 상황에서 자라다 보면, 자기 욕구나 바람을 자꾸 숨기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가 좋아하거나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걸 표현하는 데 서툴러졌어요.
그런데 거기에다 제가 종교적으로도 굉장히 열심이었던 시기가 있어서,
‘욕심 부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 들어야지’ 하는 생각에
더더욱 자기 욕구를 억누르게 된 거죠.”

“교회에서 바라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만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결혼 생활로까지 그 태도가 이어졌고, 사실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쳤죠.
그래서 만약 제가 시간 여행이라도 해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 필요한 것,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직접 솔직하게 들여다봐라.
그걸 단순히 감정에만 맡기지 말고, 네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패턴을 분석해봐라.
말뿐만 아니라 행동이 보여주는 걸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게 너 자신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인정해라.
만약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노력해서 바꾸면 된다.’”

“결국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것, ‘이게 바로 내가 지키고 싶은 선이야’라고
스스로에게 선을 긋는 것이 모든 출발점인 것 같아요.
평생 그걸 당연하게 해온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럽기도 하고요.
저는 아직도 그런 부분들을 다시 배우고, 또 잘못된 습관들을
없애 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 마이크 김(Mike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