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도 특별한 엄마, 고지혜

                                                                                              글. 맘앤아이 인터뷰 

 

 

세상을 평안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단 하나의 힘은 사랑일 것이다. 이런 사랑은 대물림이 가능하다. 사랑으로 자란 아이는 사랑을 주는 어른으로, 부모로, 그리고 사랑에 감사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학길에 오른 남편을 따라 이국땅에 정착하여 두 자녀의 엄마로 살고 있는 고재인 씨도 이런 대물림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다. 고재인 씨의 삶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평생 보여준 사람과 삶에 대한 따뜻한 관심, 헌신, 기도 그리고 사랑과 지혜가 따뜻하게 동행 중이다.
이런 동행이 그녀 삶의 태도를, 그리고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듯했다.
어머니의 날이 있는 5월을 맞아 표지를 장식한 평범하고도 특별한 엄마 고지혜 씨로부터 ‘엄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 미국 뉴저지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고재인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당시 남자친구였던 제 남편이 유학길에 오르게 되면서 제가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에 결혼하고 뉴욕으로 같이 오게 되었어요. 남편이 2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뉴욕에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곳에 조금 더 머물게 되었고,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Q. 이번 달 표지를 장식한 사진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 사진은 작년 이맘 때쯤에 한국에서 친정 엄마가 방문하셨을 때 찍은 사진이에요. Mother’s day 며칠 전이었는데요. 날씨가 너무 좋아서 햇살도 쐴 겸,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던 날이었어요. 식사를 마치고 잠시 전화 통화하러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엄마와 레스토랑 바로 아래층에 있는 가구점에서 가구를 둘러보다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남편이 와서 엄마와 제게 꽃다발을 한아름씩 안겨주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남편이 레스토랑에 오기 전에 미리 근처 꽃집에 꽃을 주문해 놓고, 식사 후에 잠시 통화한다고 하고서 꽃집에 다녀온 거였어요. 이때 사실 저희는 이사를 앞두고 있었고, 엄마가 이사 준비를 도와주러 한국에서 오신 건데요. 집 계약 후 너무 바빴던 두세 달간 두 아이를 온전히 돌보아 주셨고, 심지어 이사 후에도 모든 정리정돈을 도와주셨는데요. 늘 헌신적인 엄마에게 고맙고도 미안함이 많은 제 마음에 남편이 힘을 실어준 기분이라 남편에게 정말 고마웠죠. 엄마와 제게 어울릴 만한 꽃들을 직접 골라, 노란빛과 블루빛 꽃다발과 함께 정성스럽게 쓴 손편지까지 섬세하게 챙겨준 남편 덕분에, 두 아이의 엄마로, 아내로,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격려받은 것 같아 마음이 벅찼어요. 이 사진은 그때 남편이 찍어준 사진인데, 그 순간을 남긴 사진 덕분에, 이날의 마음도 고스란히 기억되네요. 엄마와 함께 생각지도 못하게 깜짝 선물을 받았던, 고맙고 따뜻했던, 어머니 날이었어요.

 

Q. 기억에 남는 어머니와의 추억 또는 에피소드도 들려주세요.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아침마다 차로 등교를 시켜 주셨는데요. 차 안에서 그날그날 새벽 예배 때 만난 하나님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엄마가 항상 가지고 다니시던 기도 노트가 있었는데, 늘 그 노트를 가지고 다니시면서 오늘은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셨어요. 입시를 앞둔 딸에게 한 번도 부담을 주지 않으셨고, 어떤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방향성에 관해서만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런 엄마가 대단해 보였고, 한편 조급함 없이 저를 믿고 기다려 주는 엄마에게 무척 고마웠어요. 생각해 보면 그런 엄마 덕분에 결국 제가 정말 원하던 공부를 찾아서 하게 되었던 것 같고, 제가 원하던 회사에서 원하던 분야의 일도 하게 되는 행복한 경험들이 쌓였던 것 같아요. 엄마와 둘만의 특별한 추억이 또 하나 더 있는데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엄마와 둘이 한 달 반 동안 유럽 여행을 갔었어요. 그 당시, 다음 스텝의 커리어가 너무 중요하기도 했고, 주도적인 성격도 아닌지라 긴 여행을 계획하는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군 제대 후 먼저 3개월간 유럽 여행을 다녀왔던 지금의 남편인 남자친구가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엄마와 꼭 한 번 유럽 여행 가는 걸 강력하게 추천해 준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덕분에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를 돌아다니며 엄마와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많이 만든 것 같아요.

 

Q. 어머니는 재인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그냥 모든 게 다 고마운 분이에요. 머나먼 타지에서 두 아이를 이렇게 키울 수 있는 것도, 때때로 찾아오는 어려움과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던 힘든 시기를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엄마의 전폭적 지원과 기도, 그리고 사랑이 없었다면 정말 불가능했을 거라 생각해요. 엄마는 제가 참 닮고 싶은 분이에요. 아빠를 섬기는 모습, 그리고 오빠와 저를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양육하신 모습, 힘든 상황에 처한 주변 사람들을 주시하시며 돌보시는 모습, 그러면서도 엄마가 하고 싶어하시는 일들은 놓지 않고 늘 해 나가시는 모습 등 엄마의 그런 삶이 제게 늘 귀감이 되었던 것 같아요. 보이는 결과보다 늘 과정 중에 있는 저를 다독여 주셨고, 칭찬해 주셨고, 언제나 제 생각과 내면의 소리에 먼저 집중해 주셨던 엄마를 생각하면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마음의 부담과 고민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저보다 30년 정도 더 사시면서 깊게 쌓이게 된 그 지혜와 사랑을 본받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저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요. 나중에 제 딸이 커서 지금의 저처럼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해주면 전 정말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Q. 두 자녀를 둔 엄마로서 아이들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이들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병원에서 큰 아이와 둘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예요. 10개월간 뱃속에 품고, 진통 끝에 아이들을 마주한 그 순간,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감격이 밀려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일상 가운데 참 소중하고, 행복하게 느끼는 시간, 제가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요. 아이들이 잠들기 전, 불을 다 끄고 두 아이를 양옆에 두고 누워 함께하는 시간이에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돌아가면서 오늘 하루 감사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기도하는데, 이때가 아이들의 속마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시간이거든요. 두 아이가 재잘거리는 이 시간, 뽀뽀하고, 꼭 안아주고, 서로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은 아마 평생 기억될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타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인생에는 시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시즌이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타지에 살고 있는 이 시즌, 고군분투하며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이 시즌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다른 곳에 살게 될 수도, 다시 한국에 들어가게 될 수도, 또 자녀가 독립하여 부모의 품을 떠나는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 이 나이대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지금의 이 시즌을 최대한 많이 누리셨으면 좋겠어요. 타국에서 특별히 더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 예를 들면 맑은 공기, 언제든 갈 수 있는 주변의 수많은 공원, 방대한 자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문화적인 인프라 등 아주 사소하지만, 이곳에서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은 찾아보면 참 많아요. 그리고 타지에서 육아하다 보면 뭔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고, 그러다 보면 자신을 자책하는 일도 종종 생기는데,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미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 곁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부모는 온 우주와도 같이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전에 한 번 꼭 안아주고, 진심으로 건네는 단 한마디의 말, 그 짧은 대화의 순간으로도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느낄 거고, 그 사랑으로 잘 자랄 거라 믿어요. 엄마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든 자녀를 둔 엄마들, 오늘도 충분히 잘하셨고, 너무나 수고하셨어요. 모두 힘내시고 화이팅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