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이 거의 없는 동네에서 그것도 유러피안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다이너에서 김밥과 김치라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기존에 판매하고 있던 샌드위치, 페이스트리 류와 조금은 성향이 다르면서도 테이크아웃이 용이한 아이템을 구상하다가 김밥을 시도하게 됐어요.
김치는 2년 전 Marlow & Sons의 당시 헤드 셰프님이 메뉴에 올릴 김치를 만들어 보라고 권하셔서 그때부터 레시피를 개발하고 연구를 시작하게 됐는데 저도 사실 이곳의 주 고객층이 한인들이 아닌 윌리엄스버그 지역 거주자나 현지인이고 Modern American 장르의 음식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김치가 잘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데 뉴욕은 다른 문화권에 대한 포용력이 넓은 편이고 김치가 이미 건강식품으로 널리 알려진 상황이어서 기대 이상으로 동료들과 손님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예술가의 도시 뉴욕 한복판에서 김치 담그는 요리사, 어디 상상이나 할 법한 조합이던가? 나이 지긋한 모습에 한복 정도는 입고 등장해야 김치 전문가로 생각하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깬 아티스트 조소영 씨는 왜 김치를 담그는 것일까?
“김치에 애착이 가기 시작한 것은 시집오고 나서인 것 같아요. 평소 김치를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는데 미국에 오고 나서는 식탁 위에 김치가 같이 차려지는 게 좋았어요. 한국을 알게 모르게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의 정서를 담은 한 그릇의 식사를 하면 왠지 모를 위로가 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잖아요.
김치에 특별히 흥미를 가지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저장 음식 특유의 신비로운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에요. 저는 김치를 담글수록 이 음식은 요리사가 결과에 크게 간섭할 수 없는 흥미로운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재료의 양, 맛, 보관 환경에 따라 아주 미세한 차이로도 맛이 변하거든요.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매일매일 그 맛이 달라지잖아요 저에게는 자연의 생명력과 신비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2020년 봄부터 여름까지 현지 농가에서 키운 제철 채소를 가지고 김치를 담가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집에 직접 배달하는 ‘MAAT Kimchi’라는 제철 김치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보통 김치라고 하면 배추김치를 떠올리지만 그녀는 꽈리고추, 순무, 명이 등 다양한 제철 채소로 김치를 만들어 왔고 그 인연이 지금은 Marlow & Sons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MAAT Kimchi’ 프로젝트의 제철 김치를 맛본 외국 분들께서는 감사하게도 맛있게 드시고 좋은 평을 해주셨어요. 한식 레스토랑이나 로컬 슈퍼마켓에서 배추김치만 접하다가 아주 다양한 채소로 김치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을 특히 흥미롭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뉴욕에 와서 셰프 정도 하면 어디 유명한 요리학교 정도는 나왔나 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녀는 정식으로 요리학교에서 요리를 배운 적이 없다.
“요리 학교에 갈지 바로 실전으로 뛰어들지 고민하다가 이력서와 제가 만든 요리를 스타일링하고 사진으로 찍은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Marlow & Sons에 이메일을 보냈는데 감사하게도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요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요리에 있어서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관심을 갖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제 입에 가장 잘 맞는 한식에 가장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실험적이고 앞서가는 감각의 음식도 존경하지만 저는 친숙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어릴 적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그녀는 런던예술대학교 센트럴 세인트 마틴 패션스쿨에서 여성복을 전공하다가 더 포괄적이고 자유로운 형식의 예술 및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어서 런던예술대학교의 첼시 컬리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예술가로서 그녀는 이제 이곳 낯선 땅에서 자연에서 온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요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