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현재로, 우연을 운명으로,
쿠바 한인 디아스포라 100년을 스크린에 부활시킨
영화 <헤로니모> 감독, 전후석을 만나다

인터뷰를 앞두고 찾아 본 영화 <헤로니모>의 소개 클립을 보며 전율이 일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현실이 돼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까. 오바마 대통령 시절이던 2014년, 미국은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했고, 그 이듬해 2015년 12월 전후석(Joseph Juhn)은 배낭여행차 쿠바를 방문했다. 그때 공항에 나온 한인 4세 택시 기사 패트리샤를 만나며 드라마처럼 시작된 이야기. 타계한 헤로니모(임은조) 선생의 딸이었던 그녀와 가족들을 만나며 전 감독은 그의 인생과 가족사 전반에 녹아 있는 쿠바 한인의 이민사와 숨겨진 역사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직업도 내려놓은 채 매달린 지 몇 해. 작년 11월 드디어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가 개봉했고, 그는 언론 홍보와 청와대 상영 등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올 초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미국과 유럽 등지의 해외 상영으로 또다시 뛰고 있다. 무엇이 그를 이 길로 이끌었고, 걷게 했는지 궁금했다.
인터뷰•글 손민정 에디터 | 사진 전후석 감독 제공

“쿠바를 다녀오고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어요. 2017년 코트라(Kotra)의 변호사직을 그만두고 영화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어요. 직업과 함께 병행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전념해서 1년 정도 제작하면 완성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쿠바를 다섯 번 다녀왔고 총 3년이 걸렸으니까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것은 맞지만 평생 감독을 할 생각은 아직 없고, 영화 하나 만들고 감독이라 불리는 것도 조금은 쑥스럽다고 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 돌아갔다가 고3 때 미국으로 다시 왔지요. 학부에서는 영상을 전공했는데, 이후 로스쿨을 가서 법학 공부를 하고 변호사가 되었어요. 쿠바 여행에서 만난 택시 기사 페트리샤는 100년 전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민하고 에네켄(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일제 시대 조국 독립을 지원하신 임천택 선생님의 손녀딸이자 헤로니모(임은조) 선생님의 딸이었습니다. 헤로니모 선생님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캐릭터였고, 또한 여기에 이런 드라마틱한 한인 이민사가 있었다니. 놀라웠지요. 이 스토리를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시작하게 되었어요.”
쿠바는 아메리카 지역에서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이다. 그곳에 한국인들의 이민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쿠바 이민의 역사는 100년 전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요. 1905년 대한제국 시절, 삶에 지친 한인들이 돈을 벌어 오겠다, 금의환향을 꿈꾸며 멕시코에 계약 노동자로 이주하게 되는데, 결국 그곳에서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되지요. 설상가상 조국은 한일합방이 되어 돌아올 수 없게 되고, 그 중 300여 명의 이민자들이 1921년 쿠바로 이주해 정착하게 됩니다. 헤로니모 선생님의 아버님도 그때 이주하셨고, 이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쌈짓돈을 모아 조국 독립운동을 지원하셨어요. 헤로니모 선생님은 쿠바 한인 중에선 처음으로 대학에 입학하여 피델 카스트로의 법대 동기가 되었고, 이후 피델과 체 게바라가 이끄는 쿠바 혁명에도 참여하셨어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쿠바 정부에 차관까지 오르는 등 주요 요직에 계셨지만, 은퇴 후에는 행복과 평등의 이념이라 생각하고 헌신했던 사회주의를 넘어 자신의 뿌리에 대해 고민하시고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에 엄청난 노력을 쏟으셨어요. 각지에 흩어져 있던 한인들을 찾아 한인회를 창설하고 한글 학교, 쿠바 한인 이민 기념비까지 세우는 등 한인 사회의 뿌리 찾기와 결집을 위해 애쓰셨습니다. 한국인이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정체성을 세우면서 행복과 의미를 찾으셨지요.”
영화는 듣기만 해도 엄청난 서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답게 방대한 양의 인터뷰, 사진, 영상 등을 사용하였고, 꼼꼼한 구성과 편집이 돋보인다. 헤로니모 임의 스토리와 가족, 쿠바 한인 이민사 100년과 함께 쿠바 사회주의 혁명, 한반도의 일제 시대와 독립 그리고 현대사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촘촘히 엮여져 있다. 숨가쁘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이역만리 쿠바 땅에서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드는 쿠바 한인 3~4세들과, 한복을 입고 이민 기념비를 세우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나올 즈음엔 가슴이 뜨겁고 먹먹해진다.






올 초 1월, 뉴저지 리지필드 AMC에서 상영된 <헤로니모>는 전석 매진되었다. 상영 후에는 전후석 감독의 Q&A 시간이 있었는데, 영화의 Co-Producer(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동생 전의석 변호사도 함께 했다. 뉴저지를 시작으로 보스턴, 미네소타, 필라델피아를 거쳐 취리히, 로마, 프랑크푸르트, 파리, 런던, 헬싱키 등 유럽에서 상영을 이어 갔고, 4월에는 실리콘밸리, 샌프란시스코, UC 버클리 등 미주 서부 지역과 동부에서도 다시 상영될 예정이다. <헤로니모>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상세한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영화는 크게는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사람들. 특정 민족이 자의나 타의에 의해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에 이동하여 사는 현상) 이야기입니다. 어찌 보면 조국에서는 잊혀진, 그러나 가슴속엔 조국을 새기고 사는 이민자들의 숨겨진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한반도 밖에 8백만 명의 디아스포라가 있습니다. 다수가 아닌 소수,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들은 결국 이민자로서 이중 정체성 또는 다중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데, 저 역시 그렇다 보니 우리는 어떤 목적의식, 어떤 사명의식을 갖고 살아야 할까? 그게 늘 궁금했어요. 미국뿐 아닌 브라질, 중국 등에 잠시 살면서 만났던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이것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는데, 우연히 쿠바에서 헤로니모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아, 이분은 디아스포라의 비밀, 정체성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분이었을 것 같다.”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러다 이 스토리가 한 개인의 역사를 넘어 지금 해외에 살고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상징적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어 더더욱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
“제가 직접적으로 그 차별을 겪은 것은 아니었지만, 저도 이민자이고 미국의 한인 1.5~2세대들은 누구나 한 번씩 고민해 보았을 거예요. 그리고 대학교 때 <LA 폭동 사건>을 배우게 되면서 미주 한인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것이 우리만이 아니고, 타국에 사는 디아스포라들도 똑같이 고민하고 있었어요. 생존이 절박하던 시대, 우리 국력이 약하던 시대에는 이민자로서 정체성보다 그 나라의 주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급하지요. 하지만 이젠 많이 달라졌거든요. 해가 바뀔수록 스포츠, 대중문화의 영향도 그렇고, 한국의 경제 성장과 지위…… 자신이 한인임을 자각하고 나타내는 레벨들이 달라지고 있어요. 디아스포라의 생명력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세워갈 수 있는 의식이 한민족 전체에게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어디에서 태어나도 유대인이고, 꼭 이스라엘에 살지 않아도 하나의 민족으로 뭉쳐져 있잖아요. 한 유대인 랍비에게 물으니 디아스포라의 본질이자 시작은 ‘고통’이지만, 그 고통의 결과물은 ‘혁신성’이라고 정의해 주었는데, 우리와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이것을 잘 세워갔으면 좋겠어요. 또 바람이라고 한다면, 본국에서도 해외 디아스포라를 잊지 않고 한민족으로 품어 주었으면 하는 점이에요. 해외 이민자들을 낯설고 거리감 있게 보는 시각들도 바뀌어 갔으면 좋겠고요. 우리가 먼저 우리 민족을 끌어안아야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타민족들과 이민자들도 존중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북한도 품고 통일에도 기여할 거라 생각해요. 한인이라는 뿌리를 바탕으로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끌어안는 디아스포라, 또 자민족적 이념을 넘어 휴머니즘을 품은 세계 시민적 디아스포라가 되어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따뜻하고 소수나 약자에 대한 긍휼함, 정의로운 마음이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그런 성향이 있었는지 물으니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지만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랐기에 분위기가 그러했다고.
“영화를 공부하면서도 다큐멘터리에 좀 더 끌렸어요. 사회 정의에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로스쿨을 갔고요. 둘 다 목적은 아니고 수단이었어요. 졸업 후엔 인권 변호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게 마음만 있다고 다 되지는 않더라고요. 저 대신 동생이 인권 변호사를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특별히 본인들의 생각이나 어떠한 것을 강요하신 적이 없으세요. 너희들이 믿는다고 생각하면 해 보라 말씀하시는 정도. 세속적인 부분도 없으시고 경쟁 구도로 내몰지도 않으셨지요. 아버지께서는 당신들은 감독이 아닌 관객으로 있었다고 표현하시는데, 자식들이 커 가며 해 나가는 것을 믿고 구경하는 것이 부모님의 역할이었다 하십니다. 그래서 아마 변호사를 그만두고 몇 년간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 영화를 한다 할 때도 꿋꿋이 지켜봐 주신 것 같아요. 저는 부모님의 그 교육 철학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헤로니모> 스틸컷들: 전 감독과 택시 기사 페트리샤, 헤로니모 선생님의 생전 모습 그리고 쿠바 한인 후손들






영화가 개봉되기 전 작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6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KBS에서 먼저 방영되었고, 개봉 이후에는 청와대에서도 상영되었다. 그때 문 대통령에게 아주 소중한 작업을 해 주었다는 과분한 평도 들었다. 본인은 어쩌면 열정 프로젝트처럼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런 큰 자리에 초대와 칭찬까지 받으니 너무 감사했다고. 무엇보다 헤로니모 선생님과 쿠바 이민자들의 역사, 그곳에서의 삶이 대통령께 알려졌다는 사실이 뿌듯했다고 한다. 관람평은 작년 개봉작들 중 가장 좋은 9.8. 관객들의 큰 감동과 호응이 뒷받침한 수치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졌다. 영화제 출품도 여러 곳에 되었다.
“지난 3년은 열정으로 걸어왔기에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이제 다시 불확실함의 앞에 놓여 있네요 하하.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저는 디아스포라 관련한 이슈들 관련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는 점이에요. 이번에는 다큐멘터리와 영화로 접근했지만, 어떤 장르와 어떤 방법으로든 이 주제의 일을 해 나갈 거예요. 관련한 단체의 일이 될 수도, 다시 변호사가 될 수도 있겠지요. 지금은 <헤로니모>를 지속적으로 알리는 작업과 동시에 책을 쓰고 있어요. 영화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여러 주제의 제안들도 많이 받고 있는데, 쿠바는 제가 여행을 갔다가 직접 그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 보게 된 우연이 마음에 와 닿으면서 현실화 시킨 거잖아요. 그래서 어떤 주제에 맞추어 작업하기보다 제 마음에 끌리고 공감이 가는 것들에 우선하고 싶어요. 아, 내년 3월 25일이 쿠바 한인 이민 100주년이기에, 재외동포재단과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쿠바가 공식적으로 한국과 수교가 안 되어 있어 어려움은 있지만, 이런저런 계획을 나누고 있지요. 영화는 모두 후원과 펀딩으로 제작했고 아직 흥행한 것도 아니기에 어려움은 있지만 수익이 나는 대로, 또 쿠바 한인들을 후원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점점 생겨나고 있어서, 그런 분들과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특히 그곳 청년들이 많이 힘든데, 교육이나 기타 방법들을 통해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쿠바 여행을 하던 한인 청년에게 다가왔던 우연 같은 필연. 누군가 마치 그날의 시간, 그 인연을 엮어준 것만 같다. 전 감독은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한 열정 하나로 이것을 만들었다 했지만, 이 영화는 애당초 그가 아니었으면 안 되는 거였다.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곳에 신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는 힘은 열정에서 나온다.” 그가 최근 알게 된 유대인계 독일 수녀님에게서 듣게 된 말이라고 한다. 묻힐 뻔한 역사에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바쳐 성실하고 감동적으로 재현해 낸 사람,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전 세계 디아스포라를 위해 나아갈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전후석 Joseph Hoo Juhn
US 샌디에이고에서 영화학을 전공하고 시러큐스 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뒤 뉴욕 코트라(Kotra)에서 지적 재산권 컨설턴트 변호사로 근무했다. 그 뒤 <헤로니모> 영화를 제작하여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11월 한국에서 개봉하여 미국, 유럽 등 스크리닝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단체/학교/기관 등 상영 요청 & 후원 관련 문의는 여기로 보내주세요 >> jeronimothemovie@gmail.com
@jeronimomovie / www.instagram.com/jeronimomovie/
맘앤아이 창간 20주년을 축하합니다!
“<헤로니모>를 작업하며 커뮤니티 내의 문화와 현황, 인물들과 행사들에 관한 보고와 정리가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지 깨달았습니다. 결국 돌아봤을 때 기록하지 않으면 모든 자료들은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그런 면에서 <맘앤아이>가 지난 20년간 미주 한인 공동체 내 여러 인물들과 이벤트, 문화와 역사를 기록하고 공유하며 여러 일원들에게 정체성을 일깨워 준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노고에 대표님을 비롯한 여러 관계자들에게 박수와 존경을 보냅니다. 저도 헤로니모 선생님과 쿠바 한인들의 삶을 통해 미국뿐 아닌 여러 나라의 교민들과 공유하며 우리의 정체성과 디아스포라를 소통하고 공론화할 수 있어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우리 모두 한반도와 한인들을 위해 다 함께 화합하고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전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