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이지현이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글. 황은미 변호사 

 

 

이지현, 그녀의 웃음소리는 묘하다. 깊은 산속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맑으면서도 싸구려 술집에서 콸콸 부어낸 막걸리처럼 탁하다. 날이 선 듯한 부드러운 그녀의 웃음소리는 폭발하듯 거칠게 시작하여 이내 노련한 배우의 훈련된 울림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소리는 괜찮은 듯하다가도 괜찮지 않다. 이런 웃음소리가 말이 되고, 몸짓이 되어 무대 위에 형형색색 나타난다. 무대 위에서 시를 써 내려가는 듯 하는 연기자이자 연극 연출가이며 예술가인 Leejeeproject 공연 예술 창작 그룹 대표 이지현 씨를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리에게 묻는 안부
수많은 연극제로부터 초청받아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과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쩌다 보니, 미국 공연의 기회는 없었어요. 사실, 미주 한인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인, 정체성, 뿌리, 근원, 이런 화두들을 함께 고민해 보고 싶어요. 이야기(말)와 이미지, 움직임, 오브제가 자유롭게 뒤섞여 있는 형식으로 풀어내 보고 싶어요. 그래서, 이렇게 맘앤아이 독자분들께 먼저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리지프로젝트 대표, 예술가 이지현입니다. 잘들 지내고 있나요? 다들, 괜찮은 거죠(웃음)?

 

연기의 시작

초등학교 때 국어책을 말하듯 읽었더니, 선생님께서 연극을 해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그렇게 연기를 접하게 되었지만, 전공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에서 성극도 하고, 중학교 때는 3년 내내 선생님 권유로 연극반 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정말, 연기를 계속할 생각은 없었어요. 대학 풍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사회 문화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선배들의 권유로 극단을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그 극단은 소위 사회 문화 운동의 수단으로 연극을 보는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미학적 고민을 병행하는 집단이었어요. 그 지점이 저는 좋았습니다. 딱 일 년만 하려고 했어요(웃음). 그런데… 연극의 힘, 그러니까 사람들 때문에 계속하게 된 것 같아요.

 

당신의 정체성

나는 예술가입니다. 그리고 내가 예술가인 것이 나는 참 좋습니다. 창작 작업을 하는 동안에 나의 감각은 항상 깨어 있습니다. 감각들이 깨어날 때, 우리는 스스로 서게 되고, 스스로 서야 타인을 볼 수 있습니다. 맑게 깨어 있는 감각과 유연한 사고로 훈련된 나는 어느새 사람들을 늘 새롭게 만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늘 좋은 기운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을 갖는 것, 그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나는 내가, 예술가인 것이 참 좋습니다.

“시” 같은 연극

부자가 되는 법, 자기 계발서들로 가득한 서점에서 “나는 시 같은 연극을 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어요.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보다 “사람들”의 고립, 외로움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대중”이 원하는 자극적인 이야기보다 정제된 언어를 읊어 주는 것이 예술가인 나의 책임이며 의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 같은 연극을 계속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작품 수가 줄어도, 내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과 함께 작업하면 되지 않을까요? 돈 벌기는 글렀지만 “시”같은 연극을 나.는.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무대 밖 이지현 

배우는 무대에서 관객을 만납니다. 그 만남을 위해 배우에게 필요한 것은 소리, 움직임, 감각 훈련 같은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관객과 “잘” 만나기 위해서 연기자는 일상을 잘 살아내야 합니다. 예술가 이지현이 자연인 이지현과 구별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일상을 “아름답게” 살아내야 무대에서 관객과 “아름답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나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내가 나와 잘 만나지면, 다른 예술가들과의 작업 안에서도 잘 만나지고, 그 결과로 이루어 낸 창작의 언어로 관객과 만나게 됩니다. 

 

최고의 순간들 

연극을 시작할 즈음에 포스터 작업, 공연장 의자 깔기, 조명 작업… 소위 육체노동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고된 일들을 참 많이 했습니다. 한번은 무거운 조명기를 들고 12미터 높이까지 올라가야 했어요. 올라가면서 내가 뭘 하고 있나…속상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바람이 슈욱 불었어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정말 좋았거든요. 그 아름답고, 소중한 바람 한 점을 연극으로 “풀어내야지” 다짐하면서, 내가 그것을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예술가라는 사실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프랑스에서 갔을 때도 최고라 손꼽을 만한 순간이 있었어요. 처음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에 초청받았을 때 며칠이라도 미리 가서 연습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차에 파리 근교에 선배 예술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곳에 머물며 연습했습니다. 연습하기 전에 아침마다 달리기를 했습니다. 어느 날 달리다가 문득 섰는데 길 건너편에 “나를 닮은 아이”가 있었어요.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죠. 그 순간이 아직도 꿈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웃음). 그 여자아이를 만난 후 나의 연기는 달라졌고, 문득문득 아직도 그녀가 내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배고픈 예술가

늘 배고픈 것이 예술가의 삶이라지만, 열심히 배우 훈련하고, 작업하다 보니, 내가 배우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초청도 받아 “돈”을 벌게 되었어요. 일반 직장인 수입과 비교할 순 없지만, 일반인과 소비 방식도 달라서 걱정하시는 것만큼 많이 어렵지는(웃음) 않습니다. 물론, 집을 구하는 것처럼 목돈이 필요한 상황은 다릅니다. 얼마 전 이사하면서 전세 시세를 알아보다가… 세상과 저의 다른 지점을 느끼며, 나 잘못 살았나 싶은 생각도 잠시 했었습니다. 그래도, 이지현이 쉴 수 있는 집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것으로 힘을 내기로 했습니다.  

 

연극 “안부”

연극 “안부”는 광주 5.18 민주 항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날, 그곳에서, 그 현장을 겪고 고통 속에 40여 년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미안하여 안부조차 묻지 못했던 공장 노동자들. 꿈도, 정도, 눈물도 많았던 꽃다운 20대 여성들. “안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날의 기억과 상처를 홀로 삭히며 외롭게 살아온 그녀들에게 안부를 건네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5.18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함께 그녀들의 안부를 물어 달라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그날의 비극이 아니라 그 이후 세상과 “단절”된 채 세월을 버텨낸 우리 이웃들의 40여 년을 꽃, 꽃, 꽃으로 환하게 밝히고 싶었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피는 꽃, 그 꽃들이 무대 위에 가득 차야 했습니다. 햇살이 가득한 곳에서 꽃 같은 그들이 꽃과 함께, 다른 세대와 함께, 따뜻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화두

2017년, 저의 화두는 왜 “사람들이 괜찮지 않지?”였습니다. 제가 느끼고 바라본 사회는 괜찮지 않았습니다. 사회가 괜찮지 않다는 것은 구성원이 괜찮지 않은 것이잖아요. 그래서, “괜…찮…아…요…?”라고 물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고, 그 때문에 그 작품은 “그저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 공연 끝의 커튼콜 대신 배우들이 관객석에 말을 걸었습니다. 짜인 각본이 아니어서, 그때그때 관객과의 흐름에 따라 오늘은 뭐 했는지, 같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신나는 일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질문을 던졌는데, 되돌아온 답에 그날 그곳에 있던 관객들도, 배우들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배우: 다시 태어나면, 뭐로 태어날래요?

관객: 나… 돌… 나 너무 힘들어서, 그냥 가만히 있는… 돌 할래요. 돌로 태어날래요. 

배우: 어…

관객: ….

배우: 어… 우리, 어쨌든, 서로… 괜찮기로 해요… 꼭. 

 

“사람”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동시대를 살아가는 “당신(들)”, “우리(들)”의 외로움, 단절, 혼자만의 시간, 말 걸지 못함, 위로하지 못함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고전 작품을 하더라도 “이지현”의 관점과 작업 방식으로 재해석, 재형상화하여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목소리, 몸짓”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꼭, 괜찮은지 묻고 확인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집중과 몰입의 경험, 연극

누구에게나 집중과 몰입의 시간은 중요한 경험입니다. 사람마다 그 경험이 다르게 발현되겠지만, “버티고”, “껴안을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확실합니다. 연극은 집중과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 예술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연극을 보았으면 합니다. 누군가가 그립거나, 밉거나, 혼란스럽거나, 외롭거나, 답답하거나, 불안하거나…그럴 때 연극을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당신”과 연결된 사람, 자연, 사물, 시간, 공간들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버티고, 품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 괜찮아야 하니까요.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도 없이 선생님의 권유와 선배들의 설득으로 연극을 시작해 계속하게 되었단다.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그녀를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란다. 그녀의 이런 대답이 사랑스럽다 못해 고마운 이유는 그녀의 시선과 발걸음이 멈추는 곳에 타인의 아픔, 외로움 같은 것들이 있었고, 그것을 함께 고민한 그녀의 진심이 오롯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상 진지한 얼굴로 “관객과 잘 만나기 위해 일상을 잘 살아내야 합니다”라고도 말했다. 자연인 이지현의 일상은 반.드.시. 예술가 이지현의 아름다운 소리와 정교한 몸짓을 닮았을 것이다. 프랑스 근교에서 만났다는 여자아이는 허상일지 모른다. 그렇다 한들 12미터 높이 작업 발판으로 불어온 바람 한 점에 예술의 힘을 느끼고, 달리기하다 “만났다” 믿는 아이를 가슴 속에 품은 것도 그녀 자신이었다. 이사를 하며 큰돈이 필요한 “현실” 앞에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 이내 “힘을 내볼까?” 하며 털고 일어났다. 실의에 찬 자신을 응원하며 일으켜 세운 것 역시 이지현이었다. 배고프다는 그녀의 말이, 행복은 덜 고프다고 들리는 것은 왜일까? 배고프지 않은 우리들은… 과연 행복은 덜 고플까?   

 

예술가 이지현은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외로움에 말을 걸겠단다. 그것도, 시의 언어를 지닌 연극으로 하겠단다. 적은 사람이라도, 지금이 안된다면, 기다려서라도, 스스로는 해야겠단다. 5.18은 무겁고 어렵다. 이 무겁고 어려운 주제로 연극이라니. 꽃으로 가득 찬 무대에 4명의 배우, 꽃다운 그녀들이 재잘거리며, 웃으며, 안부를 묻는다. 그 모습이 연출자 이지현 씨의 웃음소리와 닮아있다. 괜찮지 않은 듯 괜찮은 그 웃음소리. 그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인터뷰 끝에 웃음소리보다 더욱 묘한 그녀의 눈빛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 듯했다. 괜찮으냐고. 그녀의 묻는 안부가 참 따뜻하다. 위로가 된다. 혹시, 당신이 그녀를 만나면, 잊지 말고 그녀도 괜찮은지 안부를 물어주기를… 그녀의 다음 작품이 뉴욕 뉴저지라면 어떨까?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