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가벼움이 주는 즐거운 위안
일러스트레이터 Rebob 심지아

 

그녀의 그림은 일단 예쁘다. 색을 꽉 채우지 않고 여백을 남겨둔 예쁜 그림을 보노라면 답답했던 일상의 무게가 조금 덜어지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느슨한 느낌이 좋아서요”라는 그녀의 대답도 여유롭다.. 사실 무언가를 꽉 채우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은 적당히 빼는 일이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여행을 가서 시간 낭비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늦잠을 자거나 커피숍에 일 없이 그냥 앉아 있거나… 여행 스타일도 그림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몰스킨 아트 플러스 노트에 수채화 붓과 팔레트에 굳힌 물감으로 슥슥 그려낸 그녀의 그림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상 속 풍경과 작가의 애정이 어린 작은 행복이 담겨 있다. 평범한 일상의 위안과 위로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요즘, 기분 좋은 따뜻함을 선사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심지아(필명 Rebob)씨를 만났다. 여유로운 그림과는 달리 열정의 도시 뉴욕에 풍덩 뛰어들어 하루 하루 생동감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는 매력적인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먼저 맘앤아이 독자분들께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4년 째 뉴욕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서 일학년 딸과 남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있고 글 쓰는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오전엔 그림을 그리지만 오후엔 아이의 애프터스쿨을 쫓아다니며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살고 있는 보통의 엄마들 중 한 명입니다.

주로 어떤 그림을 그리나요?

단편적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데요. 제 스스로 다양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지만 외주 작업을 받아 그린 그림들은 주로 음식이나 라이프 스타일 관련 그림이 많아요. 유학 전 한국에서는 한국화로 대학 1년을 다니고 2학년에 미국에 오면서 패션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꿨어요.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안 그림은 별로 그리지 않아 다시 그림을 시작할 때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을 꽤 했어요. 그 때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레스토랑도 그리고 음식도 그리다보니 네트워크가 생겨 이 분야의 그림 요청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제가 그리고 싶은 것들은 대체적으로 가볍고 편안하고 기분 좋아지는 것들입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때문에 우리는 무거움을 지향하고 견딜 수 없는 무거움 때문에 다시 가벼움을 갈망한다’는 말처럼 인생은 드라마 투성이고 모두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 같은 날들의 연속이잖아요. 정치적 메시지나 사회적 문제를 짚는 훌륭한 작품을 그리는 작가는 세상에 많으니 제 그림은 기분 좋은 것들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채로 남길 바래요. 매일 겪는 현실의 무거움, 어두움 등을 재현하는 대신 그것들을 견딜 수 없을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벼움, 즐거움 등을 그리는 게 좋아요. 고된 하루를 보낸 후 위로 같은 저녁 식사에 곁들인 반주로 약간의 취기가 오른 저녁 무렵에 고개 들어 바라보는 구름 같은 그런 그림이요.

부터 이벤트까지 다양한 곳에 작가님의 흥미로운 작업들이 많던데. 활동하신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출간된 책은 세 권이에요. 모두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처음부터 끝가지 채운 레시피 북이예요.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런던의 출판사 Poets and Punks에서 출간된 Anju and Banju(안주와 반주)라는 책이 있구요.

by Edit에서 출간한 Salad(샐러드) 책, 그리고 시드앤피드에서 나온 디저트 노트를 그렸습니다. 세 권 다 저명한 셰프님들이 레시피를 쓰셨고 저는 그 모든 레시피를 그림으로 그려 일러스트 레시피 북을 완성했어요.

‘하퍼스 바자’와 연재도 하고 파라다이스 그룹 매거진 ‘한웨’와 온라인 웹진 등의 작업을 했습니다. 또한, Shake Shack Korea, Pig in the Garden, Ballarini, Addir, Longines, Hamilton, Atelier cologne 등 요식업 브랜드나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 시계 브랜드, 의상 브랜드와 함께 다양한 협업을 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업들을 꼽아 본다면?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로부터 처음 그림 요청을 받았을 때 스팸 전화가 온 줄 알았어요. 경력이 거의 없을 때라 믿기 어려웠죠. 일단 그림을 그려보낸 후 잡지 나오는 날 서점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 잡지를 펼쳐 보고서야 실감이 났어요. 이후 하퍼스 바자에 연재도 하게 되고 지금은 독립한 에디터님과 좋은 친구가 되어 다른 작업도 많이 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밀턴 코리아에서 첫 브랜드 외주를 받고 당시 담당자였던 김수연 사장님(당시에는 부장님)이 론진의 지부장님이 되신 후 아티스트로 초대해 주셔서 론진 본사가 스폰서하는 롤랑가로스에 초대 받아 파리에 갔었어요. 공항 픽업부터 내내 극빈 대접을 받아서 그림 그리길 정말 잘했다 생각했어요(웃음).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정성을 다하는 브랜드의 애티튜드를 경험하며 유럽의 귀족 문화에 대한 감동도 받고 브랜딩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기업뿐 아니라 개인도 브랜딩이나 철학이 있어야 차별화가 가능하니까요. 또 SPC 그룹과 함께 한 ‘피그 인 더 가든’을 위한 그림들 중 하나를 코엑스점에 벽화로 그렸는데, 처음 해보는 경험인데 무척 재밌었어요. 새벽까지 작업해 정신 없는 와중에 GARDEN 철자가 틀렸었는데요. 담당 기업 상무님이 보러오셔서 오자를 지적하시며 “작가님 뉴욕서 오신 거 아니었어?”라고 하셨다는 후문이…(웃음)

작가님은 주변 경단녀(경력 단절녀)들에게 희망’으로 회자된다고 하던데. 결혼 출산 다시 일을 하게 되었던 당시 이야기를 부탁드려요.

제 케이스는 조금 남다를 수 있는데 99년에 유학 와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이후 뉴욕에서 일도 하고 한국에 돌아가 개인 브랜드도 운영했었는데요. 어린 나이에 여러모로 좀 힘들었어요. 제품의 생산, 판매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 같아요. 제 성향이 비즈니스와 맞지 않다는 것도 그 때 배웠어요. 학생들을 가르쳐보고 싶단 생각에 공부를 더 하려고 미국에 돌아왔고 그 사이 남편을 만났어요. 결혼 후 패션 업계로 돌아갈 생각도 없고 카페도 차리고 싶지만 확신이 없어 조금 더 고민하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둘이 먹고 살 만큼은 버니 괜찮다 해서 일을 안하고 있었는데요. 덜컥 임신도 하고 출산하고 보니 영 전업 엄마는 못하겠더라구요. 옛날에 ‘애 볼래 밭 맬래’하면 밭 맨다는 얘기가 농담이 아니었어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림을 다시 그리려니 백일 된 아기 데리고 그리다보니 진도가 너무 안 나갔어요.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고 전업으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니 남편이 처음에는 반대를 하더라고요. 지지부진하게해서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생각에 당시 친정 엄마한테 받은 비상금이 베이비시터 월급 두 달치는 되길래 일단 사람부터 구하고 봤어요. 세 달째부터는 월급을 못 벌면 머리카락이라도 잘라 내다판다는 각오로 온 종일 그림만 그리고 각종 사이트에 올리고 주변인들에게 알렸어요. 두번 째 달에 큰 프로젝트를 하나 맡고 석 달치 월급을 더 벌 수 있었어요. 그렇게 벌게 된 반년 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맡게 되어서 운 좋게도 계속해서 이모님 월급을 마련할 수 있었죠.

다시 일하고 싶지만 여러 이유로 망설이는 많은 엄마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시나요?

모든 사람에게 24시간 주 7일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것을 어디에 언제 투자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상황은 다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한테 소홀하게 될까봐, 지금처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없을까봐 망설이는데 그것이 본인 인생에서 더 중요하다면 일하는 걸 포기하는게 좋아요. 하지만 일하고 싶고 내 인생도 살고 싶으면 아이들과의 보내는 시간을 어느 정도 희생할 수밖에 없죠. 그 기준에서 결정을 내렸으면 내려놓은 건 돌아보지 말아야 어중간한 죄책감에 덜 시달릴 수 있어요. 아이들과의 시간을 좀 줄였다 해서 나쁘거나 이기적인 엄마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아이들의 모든 것을 직접 케어해주는 것에 중요도를 두느냐와 엄마가 경제적으로 기여하며 아이들의 사회 선배로 사는 것에 더 중요도를 두느냐는 개인의 선택이니까요. 요즘에도 ‘엄마’면서 ‘사회인’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많은 희생을 요구하죠. 그래서 더 시작이 어렵구요. 하지만 머뭇거리는 사이 애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필요로 하고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고 봐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의 경중을 결정해서 덜 중요한 것은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결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딸을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딸에게 존경 받는 ‘어른 여자 사회인’이 되는 것도 다른 것 못지않게 중요한 양육 방식의 일부라 생각해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으로 오셨어요. 특별히 이사를 결심했던 이유가 있으시다고요?

모두들 캘리포니아가 날씨도 좋고 모든 게 여유롭고 가족 살기에는 더 좋은 곳 아니냐고 할 때 저는 뉴욕으로 아이랑 이사를 가고 싶었어요. 물론 아이를 둔 엄마다 보니 동부가 공립 사립 구분 없이 교육면에서 좀 더 나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구요. 무엇보다 사계절을 다 겪으며 살고 싶었어요. 겨울 없이 오는 봄날이란 마치 참가 인원 모두가 메달을 따는 축구 경기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바둑판처럼 똑 떨어지게 정렬된 길을 차로 다니고, 일년 내내 날씨 좋은 곳에서 비슷비슷한 집에 살며 성적을 따지지 않는 환경 보다 길에서 눈 부릅뜨고 개똥을 피해 다니며 부자와 가난한 이가 같은 블럭에 살고 혹독한 겨울을 겪은 후 봄에 열광하는 삶을 사는게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 아이도 그렇게 키우고 싶었구요.

앞으로 맘앤아이 Growing up in Concrete forest를 통해 작가님이 들려주실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인생의 무거움을 견디는 방법은 가벼움뿐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이 가끔 “너는 놀고 먹으려고 사는 사람 같다”라고 하는데 실제로 제 궁극적인 삶의 목표이기도 해요.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랑 놀러가고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고 맛있는 걸 먹는게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들로 남는 것이라 믿습니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걸 할까, 좀 더 맛있게 먹을까, 그런 고민들을 늘상 하며 바로바로 실행하는 편인데 그런 이야기들을 해볼까해요.

끝으로 맘앤아이 독자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뉴욕은 아이들의 천국이예요. 서너 블록 마다 있는 놀이터, 집만 나서면 마주치는 동네 친구들, 아이들을 위한 시즌별 새로운 오페라, 발레, 전시, 뮤지컬. 교통 지옥에 시달리지 않고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부모와 함께하는 저녁 시간. 한 도시에서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전세계 음식, 언어, 문화. 이민자가 아닌 사람 찾기가 더 힘들어 소수 민족이나 이방인에 대한 생각을 가지지 않고는 자랄 수 없는 도시.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최대한 즐기고 인생을 사랑하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함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