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로맨스, 잠, 탈출, 행복의 나라, 그리고 노안
인터뷰/글_황은미 변호사
당신이 천만 관객 영화의 주연 배우라고 상상해 보자. 어느 날 당신에게 10여 년 전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알게 된 후배가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그 후배는 당신에게 자신이 일하는 잡지사와 단독 인터뷰를 부탁한다. 당신은 어떻게 응하겠는가? 영화제 참석차 뉴욕에 온 당신. 길을 가고 있는데 한국인 한 명이 다가와 팬이라고 밝힌다. 그 팬은 자신이 일하는 식당에 꼭 와달라고 부탁한다. 팬의 간절한 부탁에 알았다고 대답한 당신. 당신은 팬과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영화 ‘기생충’으로 천만 관객 배우 타이틀을 가진 이선균은 10년 만에 연락해 온 후배의 부탁에 맘앤아이 스튜디오로 찾아와 인터뷰에 응했다. 또한 그는 맨해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팬의 부탁에 열 명이 넘는 그의 지인들을 팬이 근무하는 식당으로 초대해 약속을 지켰다. 스칠 수 있는 인연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는 이선균은 정말 멋있었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멋진 턱시도를 차려입고 손을 흔들며 촬영 세례를 받는 것보다 훨씬 더. ‘킬링 로맨스’부터 곧 개봉될 영화까지 그의 최근 출연작들과 자연인 이선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지난 7월 14일부터 30일까지 열린 뉴욕 아시안 영화제의 개막을 ‘킬링 로맨스’가 장식했습니다. ‘킬링 로맨스’는‘남자 사용 설명서’로 잘 알려진 이원석 감독과 배우 이하늬, 공명, 배유람과의 호흡이 돋보인 영화인데요. 작품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본인에게는 어떤 작품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킬링 로맨스’는 이하늬 씨가 연기한 톱스타 여래가 복잡한 상황을 피해 도망가듯 여행을 간 ‘콸라 섬’에서 제가 연기한 조나단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면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전혀 다른 현실을 맞이하면서 벌어지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무거운 작품들을 많이 해왔었기 때문에 이번 영화가 제게는 약간의 해방감을 주었습니다. 감독님과 조나단이라는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 배우들과 장면들을 함께 고민하면서 자유롭고 재미있게 작업했습니다. 정말 좋은 사람들과 많이 웃으면서 신나게 작업한 작품이었습니다.
Q. ‘킬링 로맨스’를 어떤 분들에게 권하고 싶으세요?
물론, ‘많은’ 분에게 권하고 싶습니다(웃음). 특히 일상생활에서 지치거나, 지속적인 업무로 인해 피로를 느끼는 분들에게 ‘킬링 로맨스’를 추천합니다. 이 영화를 보시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마음껏 웃으시면 좋겠어요.
Q.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원 졸업 후 뮤지컬 ‘록키 호로 픽쳐 쇼’에 출연하셨습니다. 그 작품에서의 인연으로 시트콤 ‘세친구’로 연기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는데요. 이후 ‘하얀거탑’, ‘커피프린스 1호점’, ‘파스타’, ‘골든타임’, ‘나의 아저씨’ 등의 드라마뿐 아니라 ‘째째한 로맨스’, ‘화차’, ‘끝까지 간다’, ‘기생충’ 등 40여 편의 영화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으로 한국에서 천만 관객 주연으로 자리하게 되셨는데요. ‘기생충’은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 영화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기생충’ 출연 이후 달라진 점이나 한국 배우로서 고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세계인의 사랑과 인정을 받은 ‘기생충’에 배우로 참여하게 된 건 정말 큰 행운이며, 또한 영광이라 여깁니다. ‘기생충’ 이후 한국 영화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감독들과 제작자에게 작업 제안도 비공식적으로 몇 차례 있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배우로서 한국 문화 예술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이러한 K-Culture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구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현실적인 고민과 지속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배우인 저를 비롯한 많은 영화 예술인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출연하신 세 편의 영화가 현재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9월 6일에 저와 배우 정유미 씨가 주연한 유재선 감독의 ‘잠’이 개봉합니다. 올해 칸 국제 영화제 비평가 주간과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좋은 반응을 받은 미스터리 공포 영화입니다. 영화 ‘잠’은 신혼부부인 ‘수진(정유미)’과 ‘현수(이선균)’가 밤마다 현수의 수면 중 이상 행동으로 겪게 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어가는 이야기예요. ‘잠’으로 첫 장편 영화 데뷔를 한 유재선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제자로 여러 작품의 연출부를 거치며 실력을 쌓아왔습니다. 많은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만큼 관객분들도 이 작품을 즐기실 것으로 기대됩니다. 두 번째 개봉을 기다리는 영화는 김태곤 감독의 ‘탈출: Project Silence’입니다. 이 영화는 2023년 칸 영화제 비경쟁 심야 상영 부문에 초청되어 세계 최초로 상영되었는데요. 함께 출연한 배우 주지훈, 김희원 씨와 함께 영화제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극 중에서 청와대 국가 안보실 소속 행정관이자, 딸을 둔 아버지 차정원이란 인물로 등장합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일어나는 연쇄 추돌 사고를 시작으로 예기치 못한 연쇄 재난 상황이 펼쳐지는데요. 이런 위험한 재난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한 인물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재난 블록버스터입니다. 마지막으로 개봉을 기다리는 영화는 ‘행복의 나라(가제)’입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7년의 밤’의 추창민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조정석, 유재명 씨와 함께 작업했습니다. 이 작품은 현대사를 뒤흔든 사건 속에 휘말리게 된 군인과 그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변호사의 치열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저는 ‘강직한 군인 박태주’역으’로 등장합니다.
Q. 백 세 시대는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고, 작금의 중년이라면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데요. 이미 해오던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는 있을지, 자연인 이선균도 이런 ‘중년’의 고민이 있을까요?
당연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배우라는 일을, 영화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매일 합니다. 많은 분께 사랑받고 인정받으면서 분에 넘치는 좋은 기회들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 역시 100% 미래가 보장된 것은 아니니까요. 아이들은 자라고, 저는 나이가 드는데…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노안이 심해져서…더 고민입니다(웃음). 연기를 시작한 이후 ‘어떤 배우가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계속해 왔는데요. 그 질문에 대한 고민 역시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좋은 기회들에 감사하면서도 더 좋은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Q.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하시나요? 요즘 심취해 있는 취미가 있으신지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함께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요. 함께 운동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농구, 야구는 같이하는 것도 좋아하고, 보러 가는 것도 좋아합니다. 요즘은 최근에 시작한 골프에 빠져 있어요. 너무 재밌는데… 골프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웃음). 자꾸 잘 치고 싶거든요(웃음).
배우 이선균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것도 많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기울이는 술 한 잔으로 일상의 피로를 달랜다. 한 잔이 아니라 여러 잔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환경을 잘 만들어 주기 위해 열중하지만, 여느 부모처럼 늘 불안하다. 그래서 주로 아내의 의견을 따른다. 노안이 심해져 글자가 잘 보이지 않지만, 안경을 썼다가 올리며 글자를 확인하는 모습을 아직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불편하지만, 아닌 척 버티고 있는 중년이다. ‘운이 좋아서’ 좋은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다며, 진심으로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그의 겸손함은 천만 관객 배우 타이틀의 화려함에 가려졌는지도 모른다. ‘제게 영화는 저의 과거, 현재, 미래 같아요. 제게 주어진 감사한 일이죠. 10년 뒤에도 지금처럼 인터뷰하고, 연기하고 있을 것 같아요(웃음).’ 영화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