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삶, 교육, 그리고 언론인의 시각

저널리스트 조경진과의 특별한 대화
레시피 제공_J'adore
조경진 기자님은 한국에서 17년 넘게 기자로 활동하며 통찰력이 담긴 깊이 있는 기사를 보도해왔습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언론인의 시각으로, 이곳의 교육과 문화, 인상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한인 학생들의 방송반 KHBS(KPAC HighSchool Broadcasting System) 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글로벌 미디어 경험을 제공하는 등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는 저널리스트 조경진의 기자로서의 여정, 미국에서의 삶과 교육에 대한 생각 그리고 KHBS 방송반을 만들고 선생님이 된 사연 등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1. 조경진 기자님! 반갑습니다. 늘 인터뷰를 하던 입장에서 질문을 받는 기분은 어떠신지요?
새롭고 좋습니다. 더욱이 미국의 한인 사이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이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게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인터뷰 요청을 받고 궁금한 마음에 지난 25년 간의 맘앤아이의 출판물을 찾아봤어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소중한 이야기들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내용들이 참 좋더라고요. 제가 오늘 전하는 이야기도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함을 주고 울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2. 매우 오래 전 이야기가 될텐데요. 기자를 시작했던 계기와 지금까지의 여정은 어떠셨나요?
기자는 초등학교에 입학 전부터 가졌던 말 그대로 어릴적 꿈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어렸을 때 이렇게 분명한 꿈을 세웠다는 게 가끔은 신기하게 느껴지는데요.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학창시절은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참 즐겁게 보냈습니다. 교내방송도 하고, 축제 사회도 보고, 무엇보다 방송반 동료, 선후배와 소소한 추억을 함께 나눴던 기억이 제 학창시절을 참으로 풍요롭게 해줬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 조경진이 가졌던 그 꿈은 어느덧 목표가 됐고, 목표는 마침내 현실이 됐습니다. 그렇게 기자 생활을 하면서 ‘나는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하며 항상 감사했습니다. 원했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40대 중반의 나이가 됐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나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3.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현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몇 가지만 꼽아본다면 어떤게 있으실까요?
국무총리의 미국,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순방 동행 취재를 다니며 한국의 경쟁력을 느꼈던 순간, 외교부와 함께 한국의 글로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획 프로젝트를 연달아 했던 기억, 검찰과 법원을 출입하며 취재했던 사법농단 사태와 이른바 조국 사태,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과 안희정 전 지사의 재판 등등.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제게는 가장 짙은 기억으로 남은 세월호 사건, 전두환 씨 환수금 취재로 연희동 골목길에서 먹고 취재하고 기사썼던 시간, 소소하게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명동성당 앞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라이브 연결을 했던 기억. 생방송을 마치고 홀로 집으로 향하는데 배는 고프고. 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런데 나를 빼고 모든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여서 더없이 쓸쓸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4. 들어보니 기자는 몸도 머리도 모두 힘든 직업 중에 하나 같아요. 그럼에도 기자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으로 꼽아볼 수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 기자들이 이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실제로 기자는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이잖아요.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보다는 깐깐하고 날카롭다는 안 좋은 인상을 더 많이 남기고요. 저도 거친 취재 현장에서는 정말 귀에 담을 수 없는 소리도 많이 들어봤고, 기사가 나간 이후에도 항의며 협박이며 참 많은 일들을 겪었거든요. 그런 경험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나의 취재 활동과 기사 작성을 더 신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기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상처받고 지칠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돌아보면 이 긴 시간 한 가지 일만 하면서도 보람을 느끼고 지낼 수 있었던 건 제 경우에는 기자라는 직업은 ‘누구나 만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무언가 호기심을 갖고 있을 때 누구든지 만나볼 수 있고, 누구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가 있어요.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직업, 그게 기자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가 있어요. 그게 엄청난 매력이고 동시에 엄청난 무게와 책임감이 실리는 부분입니다.
5. 17년 동안 한우물을 파셨으면 그 안에서도 분명한 철학이 있을 것 같아요. 조경진 기자님이 생각하는 언론 철학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지금도 현직에 20년, 30년 넘게 활동하는 기라성 같은 선배 기자들이 수도 없이 계시는데 제가 언론 철학이라는 걸 감히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다만 기자 생활을 하면서 늘 가졌던 생각은 있습니다. 나는 ‘전달자’다. 그래서 더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했고요, 내용을 듣다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 있을 땐 더 쉽게 설명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또 관련된 두꺼운 책을 사다가 밤을 새워가면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요. 제가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은 한정된 영역에 불과했기 때문에, 기자로서 다양한 영역을 취재하면서 접하는 새로운 지식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만 따라갈 수가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깊이 있게 공부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을 지 몰라도 깊이 있는 취재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느 정도 이상은 내가 준비가 돼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이 쉴틈없이 던지는 이슈를 따라가면서 ‘전달자’ 역할을 해내려고 하다보니 이게 참 어려울 때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돌아보면 어떤 이슈에는 참 잘 대응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어떤 이슈는 내가 많이 부족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게 그러한 이슈들이 쌓이고 쌓여 또 어느 순간 과거의 내용을 끄집어내야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럴땐 또 조금 더 깊이 있는 기사를 써내려갈 수가 있게 되고, 그렇게 아주 더디지만 조금씩 견고해지는 과정 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당탕탕 미국생활
1. 조 기자님의 미국에서의 생활은 한국에서의 생활과는 매우 다를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일단은 너무 좋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미술사 수업을 함께 들었었어요. 목표는 기자였지만, 미술사 과목에 특별히 흥미를 느끼고 기회가 된다면 대학원에 진학해서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현실에 집중하다보니 그럴 여력이 사실상 없었고요. 여행을 다닐 때면 유명한 미술관에 가서 그 아쉬움을 달래곤 했는데요. 지금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정말 원없이 미술 작품을 관람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20분만 나가도 한국에서는 날을 잡아서 휴가 때 한 번 겨우 다녀와볼 수 있는 글로벌 미술관이 많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너무나 행복합니다. 같은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조금 알고 봤을 때 매번 느낌이 새롭거든요. 작가의 스케치 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작품들도 많은데요. 그런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또 미술 공부를 하면서 만난 분들과의 소통을 통해서도 제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 같아서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2. 짧지 않은 시간동안 미국에 거주하며 얻게된 새로운 시각이나 접근 방식이 있으실까요?
미국은 모든 절차들이 한국과 비교하면 다소 오래 걸리죠. 그래서 답답할 때가 있었는데요. 신기한 게 그 부분도 차츰 적응이 되더라고요. 전체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니 특별히 나만 불편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그럴지도 몰라요. 이제는 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 나름 괜찮구나, 라는 생각도 들어요.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서로 늘 돕는다는 겁니다. 몸이 아프거나 사고가 생겨서 발이 묶였을 때 서로의 자녀를 위해 라이드를 해주거나, 집에 음식을 가져다주거나 이러한 도움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지더라고요. 저도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있을 때 이곳에서 사귄 친구들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았는데요. 그렇게 도움을 받은 만큼 저도 무언가를 더 함께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이 느리게 흘러가는 미국 사회에서 지내는 것이 하루하루 새롭고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3. 지금 활동중인 분야에서 흥미를 느끼는 주제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미국에 와서 새로운 취미생활을 하나 만들었는데요. 바로 붓글씨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훌륭하신 선생님과 참 좋으신 글방 친구들을 만나게 됐고, 붓글씨를 시작하게 됐는데요. 지난해 12월에는 함께 전시회를 열면서 저도 작은 작품을 하나 출품하기도 했었어요. 너무도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붓글씨는 지금껏 제가 즐겨왔던 스키나 골프, 피아노 연주, 마라톤 같은 취미와는 결이 완전히 다른 분야인데요. 40대의 조경진에게는 참 잘 어울리는, 참 만족스러운 취미생활인 것 같아요. 먹을 갈고 글을 쓰는 시간은 온전히 명상하는 시간이라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참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이렇게 한국 전통의 취미를 하나 갖게 됐다는 게 참 신기하고, 이렇게 글방 친구들을 만나는 게 운명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좋습니다.
4. 현재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며 가장 고민이 되었던 부분과 동시에 가장 감사했던 부분은 무엇이 있으실까요? 두 문화 사이에서 자녀를 키우는데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아마도 10대 자녀와 미국에 오게 되는 부모들은 모두 저처럼 ‘내 아이가 이곳의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가장 염려할 것 같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잘 적응을 하지만 또 어떤 학생들은 적응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교육 환경, 학교 분위기, 선생님의 역할 그 모든게 다른점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이 새로운 환경이 인생에서 가장 큰 엄청난 도전이 될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미국에 오기 전에 남편과 아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던 것 같습니다. 미국에 가게 되면 달라지는 환경, 아들의 경우 학년이 어떻게 바뀌고, 가서 어떤 공부를 하게 되고, 한국 공부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등등. 우선 남편과 제가 먼저 꼼꼼하게 공부를 했었고 아들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설명해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아들이 실제로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더욱 엄청났던 것 같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나라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들이 이곳에서 사귄 좋은 친구들과 선후배들과의 관계를 보면서도 참 뿌듯하고, 다시 한 번 오기를 잘 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5. 미국에서 느끼는 가장 소소하지만 매력적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곳 생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조 기자님의 ‘힐링 포인트’가 궁금합니다.
날씨가 좋을 때에는 도시락을 싸서 가끔 하이라인 파크에 갑니다. 혼자서 책을 읽다가 출출하면 도시락을 먹는데요. 제 힐링 포인트입니다.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요. 가끔 주변 친구들에게 이 코스를 추천했는데요. 아직까지는 그곳에서 지인을 만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날이 추울 때에는 허드슨 강 주변에 차를 파킹해놓고, 그 안에서 음악을 듣습니다. 그때마다 ‘이제 정말 나에게 주어진 현실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꿈같아서, 믿기지가 않는데요. 한편으로는,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이 순간이 희미해지겠지’라는 생각을 하면 또 마음이 급해지기도 해요. 더 즐겨야지! 하고 말이죠.
6. 지금 미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향후 조경진 기자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나요?
알 수 없죠. 다만 제가 이 시간에 이곳에 와 있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이유는 하느님만이 알고 계실거라고 생각해요. 저를 훗날 어떻게 사용하실지도 그분이 계획하고 계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을 가열하고, 행복하게 지내보려고 합니다.
KHBS 방송반을 만들다
1. KHBS 방송반을 직접 만들고 운영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난 2024년에 설날 행사의 사회를 봤었습니다. 500여명 이 지역 한인들이 모여 치르는 큰 행사였는데요. 엄청났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한국에서 방송기자로 활동했기 때문에 우연한 기회에 요청이 들어왔고, 저도 재밌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당시에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 지, 순서는 어떻게 해볼지, 멘트는 어떻게 가져갈 지 등등 정리라면서 어렸을 때 방송반 활동하던 시절이 생각이 났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줄곧 프로들과 일을 했기 때문에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이었죠. 그래서 내년 행사는 내가 또 이 자리에 서기보다는 이곳의 학생들이 이런 경험을 누릴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올해가 된거죠. 올해도 KPAC에서 사회를 봐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제 이런 생각을 밝혔고, 많은 분들이 다양한 의견을 주셨습니다. 우려를 표하는 분들도 물론 계셨지만, 너무나 좋은 의견이라며 지지해주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KPAC이 학생들을 위한 학부모의 단체인 만큼, 주인공인 학생들을 위해 제대로 된 방송반을 만들어주어주고, 이를 잘 운영하면 결국은 KPAC의 활동 목적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신다면 날로 성장할 것이고 이것이 학생들에게 전부다 돌아가게 되는 시스템을 만들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우려하는 분들도 계셨기 때문에 저를 믿고 지켜봐달라고 당부했고, 곧바로 학생 앵커와 학생 PD 선발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앵커를 지원하는 학생에게는 동영상을 촬영해서 제출하도록 했고, PD학생들에게는 질문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쓰도록 했습니다. 선발된 12명의 학생들을 위해 큐시트와 스크립트를 짰고,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했습니다. 그렇게 KHBS는 시작됐습니다.

2. 방송반 선생님으로, KHBS 방송반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가치와 목표는 무엇인가요?
책임감이 첫 번째입니다. 내 역할의 크기가 크든 작든 전체 안에서는 똑같이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프로젝트에 따라 내 역할은 클 때도 있지만 작을 때도 있을 겁니다. 당장에 자만하고 우쭐대지 않아야 하고, 당장에 속상해하고 소심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책임감을 기반으로 합니다. 학생들은 KHBS 안에서 내가 선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을 배울 것입니다. 그게 제가 가장 알려주고 싶은 가치이자 목표입니다.
3. 학생들이 KHBS 활동을 통해서 어떤 것들을 배우기를 바라시는 지, 이것들이 앞으로 학생들의 미래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학부모님들께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기자생활 17년의 경험으로 아이들에게 판을 깔아 주겠다. 학생들에게는 KHBS는 너희들이 멋지게 놀 수 있는 놀이터라고 설명해줬습니다. 벌써부터 학생들은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습니다. 아이디어도 무궁무진합니다. 오히려 학생들은 우리들보다 생각이 빠르고 트렌드에 민감합니다. 기본적인 뼈대를 세우고 필요한 교육을 끊임없이 제공할 계획입니다.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다양한 콘텐츠가 완성될 것입니다. 학생들이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멋진 포트폴리오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배우게 되는 가치는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입니다.
4. 학생들 스스로의 의지에 대해 특별히 강조를 많이 해주고 계시는데요. 학생들의 활동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장은 실수를 하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눈빛은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요. 나의 노력과 고민의 순간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그 학생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2명의 학생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있고, 각자 갖고 있는 달란트가 다릅니다. 그래서 같은 과제가 주어져도 어떤 학생들은 수월하게 해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도 있습니다. 이때 저는 수월하게 끝낸 학생에게는 더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겁니다. 그렇지 못한 학생들의 경우에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 턱을 스스로 넘어본 학생은 그 이후부터는 훨씬 더 속도가 붙게 돼 있습니다. KHBS 학생들은 그 턱을 스스로 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저는 너무도 뿌듯하고, 앞으로 이 아이들이 과연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을 지 큰 기대를 품게 됩니다.
5. KHBS를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어려움과 도전 과제가 있었다면 무엇이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제 개인 시간의 상당 부분을 여기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장소가 마땅치 않아 연습 장소로도 저희 집의 문을 개방했습니다. 제가 해야하는 기존의 일들이 많기 때문에 KHBS를 시작하면서 여러가지로 체력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시스템입니다. KHBS는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조직이 될 겁니다. 그렇기 위해 지금 그 틀을 잘 잡아놔야 합니다. 저 한 사람으로 운영되는 조직이 아니라, 10년 후, 20년 후에도 이 조직이 초심을 잃지 않고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제가 학부모님들께 가장 강조한 부분도 이것입니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도움을 주시되, 누구 하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시각으로 해달라고 당부드리고 있습니다. 작은 손이라도 학부모님들이 모두가 참여해주시기를 또한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생각을 같이해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매우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6. 앞으로 KHBS는 어떤 활동들을 해나가게 될까요?
오는 12월에는 KHBS 2기 학생들 선발 공고를 낼 예정입니다. 내년 1월 설날 행사의 학생 앵커는 공개 오디션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때는 철저하게 실력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학생 4명이 앵커를 맡게 됩니다. 그때까지 1기 학생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내공을 쌓을 겁니다. 첫째로 학생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학생들 자율적으로는 기획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을 서서히 익히게 될겁니다. 학생들은 KHBS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통해 KHBS의 활동을 알리고, 다양한 콘텐츠를 여러분들께 선보이며 책임감있게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겁니다. 그야말로 기가막히게 멋진 놀이터가 되는겁니다. 학생들이 시간이 흘러 저와 같은 성인이 됐을 때 되돌아보면 흐믓하고 마음 따뜻해지는 추억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도울 생각입니다. 여러분들도 KHBS와 함께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언제든지 문을 두드려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조경진 기자와의 따뜻한 뒷이야기
인터뷰가 끝나고 조경진 기자님과 나눈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미니 다큐멘터리 같았습니다. KHBS 프로젝트에 대한 열정과, 미국에서의 삶 속에서 얻은 깨달음, 그리고 따뜻한 인간미가 담긴 대화들을 통해 그가 가진 진정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1. 카메라 앞과 뒤, 진정한 의미를 찾다
“Take 1, Roll 2…” 직접 촬영을 준비하며 기자님은 카메라 앞에서의 작업이 가진 특별한 의미를 이야기했습니다.
“이건 단순히 찍는 것이 아니에요. 학생들과 함께하는 이런 작업은 나와 우리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상징이죠.”
2. 미국 생활의 소소한 발견
“학교에서 부모가 채워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한국과는 다르죠. 하지만 그 빈틈을 학부모 단체들이 훌륭히 채우고 있어요. 특히 K-PAC 같은 단체들이 지역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3. KHBS, 아이들을 위한 지속 가능한 꿈의 장
조경진 기자는 KHBS 프로젝트가 단순히 방송반을 넘어,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터전이 되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1기, 2기, 3기… 이 아이들이 성장해서 서로를 이끌고 새로운 세대를 키워갈 때, 진짜 시스템이 완성되는 거죠. 부모로서의 역할은 초기에 필요하지만, 그 후엔 아이들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야 해요.”
4. K-문화의 확장과 가능성
팬데믹과 케이팝 열풍 이후, 한국 문화는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언어 장벽을 넘었어요. 앞으로는 방송, 정치,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기회가 더 많아질 겁니다. 이런 기반을 만들어주는 게 어른들의 역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