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벤들 Mark Bendul, 숨은 영웅의 기록

입양아에서 FBI 수사관까지, 자신의 상처로 타인의 희망이 되다
글_더 앰 매거진 편집부
4월의 봄기운이 완연해진 어느 금요일. 버겐 카운티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 온 민기 형사의 추천으로 한 사람을 소개받았다. “정말 멋진 스토리를 가진 분이 계세요.” 그 한마디에 끌려 알게 된 이름이 바로 마크 벤들(Mark Bendul)이었다. 그는 버겐 카운티에서 오래 몸담았던 경찰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텍사스로 이주해 조용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직접 만나지 못하고 Zoom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줌을 통해 처음 마주한 그의 모습은 예상보다 더 따뜻하고 인상적이었다. ‘형사’라는 직업이 주는 단단하고 무뚝뚝한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빛나는 미소와 따뜻한 눈빛을 지닌 사람이었다. 인터뷰는 하루 만에 끝낼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져, 결국 두 번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그의 이야기를 더 천천히 깊이 있게 따라갈 수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그의 이야기가 대화 내내 펼쳐졌고, 우리는 점점 더 그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의 여정은 단순한 한 개인의 인생사를 넘어선다. 1960년대 한국의 가난한 논밭 마을에서 태어나 입양 시스템의 마지막 기회를 붙잡고 미국 땅을 밟은 그는, 내면의 혼란과 외부의 편견 속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미 해군을 거쳐 FBI 조직범죄 수사팀의 수사관이라는 자리까지 이르렀다. 입양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수사관으로 날카로운 통찰을, 작가로서는 묵직한 인간적 울림을 전해온 그는, 지금 텍사스의 작은 도시에서 평온한 은퇴 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번 더 앰 매거진 인터뷰에서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속에 깃든 정체성의 탐색, 용기,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입양 시한을 앞둔 형제에게 찾아온 기적
마크가 세상과 처음 연결된 순간은 한 수녀의 도움 덕분이었다. 그가 아홉 살 때, 아버지는 포항의 도박장에서 살해되었고, 열두 살 때는 어머니가 평택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잃은 그는 동생과 함께 인천의 한 천주교 보육원에 맡겨졌고, 입양 가능 연령인 만 14세까지 남은 기간은 불과 몇 달밖에 없었다. 그때, 기적처럼 한 장의 사진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입양기관 ‘웰컴 하우스(Welcome House)’에서 발행한 잡지에 실린 형제의 사진을 본 뉴저지의 패트리샤 벤델 여사는, 말 그대로 ‘운명’을 느꼈다. 형제가 자기 아들이라는 확신이 섰다. 이미 친자녀 둘과 한국계 입양 딸 둘이 있었던 벤델 부부는 모든 것을 걸고 이 두 소년을 가족으로 맞기로 결심했다. 경제적 여건, 시간, 그리고 입양 절차가 거대한 벽처럼 버티고 있었지만, 빌 브래들리(Bill Bradley) 상원의원의 도움으로 모든 난관을 넘을 수 있었다. 마크가 미국에 도착한 날은 열네 살 생일을 2주 앞두고 있었다. JFK 공항에는 그를 마중 나온 새 가족과 함께 박수로 환영받는 이민자들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날 밤 마크와 동생은 부엌에서 플라스틱 볼링핀을 던지며 미국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그 순간은 형제의 삶을 바꾼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뉴저지에서의 새 삶, 정체성의 충돌
하지만 새로운 땅에서의 삶은 절대 쉽지 않았다. 언어와 문화는 낯설었고, 주변에는 자신과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일랜드-폴란드계 백인 가정에서 자란 마크는 때때로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가끔은 한국인이라는 게 싫었어요.” 그 정체성의 혼란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졌다. 그러나 미 해군 복무 시절, 일본에 배치되며 그는 다시 한국 문화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대신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긍심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의 내면에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약점이 아닌 독립적이고 강력한 자산으로 재탄생한 시기였다.



수사관의 길 위에서, 언어는 다리가 된다
해군에서 제대한 후, 그는 1995년 경찰 경력 없이 버겐 카운티 검찰청에 입사했다. 그는 바로 살인수사팀에 배치되었고, 13년간 수많은 강력 사건을 담당하며, 특히 한인 사회와 관련된 범죄 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갖고 있는 한국어 능력 덕분에, 모든 한인 관련 수사는 그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통역관의 역할을 넘어서 수사관으로서 냉철함과 피해자 가족에 대한 깊은 공감 능력으로 커뮤니티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다. 이후, FBI 조직범죄 수사팀에 합류해 아시아 범죄 조직 수사를 전담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심리학자 테레사 파넬리 박사와의 공조가 시작됐다. 이들의 공조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 집필이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GOT 586』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GOT 586』, 현실을 품은 픽션의 힘
『GOT 586』은 2008년 금융 위기를 배경으로, 사기, 이민, 정체성, 그리고 복수를 다룬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범죄 스릴러다. 사이판 출신 노동자들에게 발급된 ‘586’으로 시작하는 사회보장번호를 악용해 벌어지는 대규모 신분 사기 사건과 그 와중에 몰살당한 한 가족의 죽음을 파헤치는 한 형사의 이야기기 담겨있다. 이 소설은 마크와 파넬리 박사가 FBI에서 겪은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집필되었으며, 단순한 허구를 넘어선 리얼리티와 인간적인 울림을 담고 있다. 마크는 이 책을 통해 “이 이야기는 단지 한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민자 모두의 이야기이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한다. 한국 전자책 출간과 함께 국내 출판 및 영상화 작업도 준비 중이다.



은퇴 후 평온한 일상이 주는 깊은 울림
현재 마크는 아내와 함께 텍사스의 조용한 마을에서 창작과 사색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예가인 아내와는 소개팅으로 만났고, 두 사람은 자녀 없이 예술, 여행, 글쓰기, 골프 등 소소한 일상을 즐기고 있다. 마크는 “이런 삶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그 모든 역경 끝에 평온이 찾아왔다는 건, 선물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뉴욕과 뉴저지, 콜로라도 등지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과는 여전히 그룹 채팅방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가까이 지내고 있다. 마크는 오늘날 한인 커뮤니티가 이룬 변화를 보며 남다른 감회를 전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한국어가 가능한 경찰관 한 명도 귀했는데, 이제는 공공서비스 전반에서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한인 유권자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그래서 대표성을 확보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체성, 그리고 손을 내민다는 것의 의미
마크는 자신에게 다짐한다. “아직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선 모든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만 머물러선 미래를 볼 수 없으니까요.” 그는 자신처럼 두 문화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체성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만의 이야기이며, 두 개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건 여러분의 강점입니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치며 다음 메시지를 전했다. “손을 내밀어 주세요. 낯선 이의 손길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그 작은 친절 하나가, 누군가에겐 전부가 될 수 있어요.”
마크 벤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한다. 기회란, 아주 작고 희미한 틈새일지라도, 누군가가 믿고 손을 내밀 때 비로소 열린다는 것, 그리고 그 틈은 누군가에게는 인생 전체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마크 벤들은 단지 ‘입양아 출신 수사관’으로 불리기엔 부족하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어, 다른 이들에게 희망이 된 사람이다. 그의 목소리는 소설 『GOT 586』 속에 살아 있고, 그의 진심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오롯이 전해진다. 그의 이야기는 마크 벤들의 생애를 넘어, 정체성과 고통, 연대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