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경계가 필요하다

김현 박사, 심리학자가 전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법

글 | 더 앰 매거진 편집팀

“진정한 정신 건강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임상심리학자 김현 박사의 이 말은, 무거운 질문에 대한 놀라울 만큼 간결한 대답이자,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놓치고 사는 삶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다. 컬럼비아 대학교 소속 연구원으로 불면증과 감정 장애를 전문으로 다루는 그녀는, 현장에서의 임상 경험과 실험실에서의 연구를 동시에 병행하고 있어, ‘치료하는 과학자’로 불린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IMF로 이민을 택했던 개인적 여정, 그리고 이민 1.5세대로서 마주한 정신 건강에 대한 인식의 간극은 그녀가 ‘마음’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 마음의 주의를 머무르게 하세요
“우리가 너무 과거에 집중하면 우울해지고, 미래에 몰입하면 불안이 커져요. 결국 진정한 마음의 건강이란 지금 눈앞에 놓인 현실에 나의 주의를 머무르게 하는 것입니다.” 김 박사는 현대 심리학이 강조하는 ‘마음챙김(mindfulness)’ 개념을 소개했다. 감각기관을 통해 현재 나의 내면 상태를 인지하고, 생각을 판단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그 핵심이다. “A wandering mind is an unhappy mind(헤매는 마음은 불행한 마음이다)”라는 표현처럼,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불안을 키우는 마음의 습관을 벗어나기 위한 훈련이기도 하다. 그녀는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제시했다. 심호흡하며 눈앞의 사물을 하나하나 인식하거나, 공기가 폐를 드나드는 감각에 집중하는 등 일상의 순간들을 활용한 마음챙김 실천이 그 예다. Calm, Headspace 같은 명상 앱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우리가 ‘잠을 못 자는 이유’, 단순한 피로가 아닙니다
김 박사의 전문 분야 중 하나인 불면증(insomnia)은 단순히 ‘잠을 못 자는’ 문제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잠을 방해하는 심리적 환경입니다. 누구나 일시적 불면을 겪을 수 있지만, 3개월 이상 지속되고 일상 기능에 영향을 준다면 이는 ‘만성 불면증’으로 봐야 하죠.” 불면증은 단순한 수면 부족이 아닌 감정적, 신체적, 심리적 요인이 복합된 결과다. 낮 동안의 과도한 졸림, 감정 기복, 면역력 저하, 무기력감 등을 유발해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린다. 김 박사는 “수면 문제는 종종 정신건강 악화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며, 심리 전문가나 수면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멈추고 숨 쉬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초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가, 사회, 교육, 그 어떤 것도 예측이 어렵죠. 그래서 사람들은 더 불안해지고, 그 불안 요소를 줄이려고 모든 걸 통제하려 하죠. 하지만 그 과정이 오히려 번아웃을 부르게 됩니다.” 김 박사는 사람들이 ‘안정’을 추구하는 과정이 과도한 노동으로 이어지고, 타인과의 경쟁에 집착하며, 결국 심리적 탈진으로 연결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번아웃은 심리적 우울과 불안, 육체적 피로와 과로가 반복되는 악순환에서 온다. “불확실함을 피하려는 노력 자체가 오히려 나를 무너뜨릴 수 있어요. 지금, 이 현실을 수용하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뇌를 통해 심리를 보다, 신경과학이 바꾼 심리치료
김 박사는 신경과학의 발전이 심리치료 방식에 가져온 혁신을 언급했다. 뇌의 활성 변화를 분석함으로써 감정 반응의 메커니즘을 더욱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맞춤형 심리치료 개발에 실마리를 제공했다. “어떤 자극이 어떤 감정과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이제는 뇌 수준에서 추적할 수 있게 됐어요. 치료 정밀도도 높아지고, 개인별 접근이 가능해졌습니다.” 미국 심리학회가 권고하는 치료 지침 역시 ‘과학적 근거 기반’ 치료를 강조하며, 이는 치료의 신뢰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SNS가 만드는 단일한 자아상, 그 속에서 무너지는 우리
김 박사는 SNS로 비롯된 심리적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특히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에는, 편집되고 포장된 이미지의 세계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현실 감각을 잃고, 그로 인해 자신을 과도하게 평가절하하는 사례가 많기 떄문이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나의 진짜 목소리를 외부의 소음과 구별할 줄 알아야 해요. 그게 바로 바운더리입니다.” 그녀의 저서 《바운더리》는 SNS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한 자아 보호 방법 안내서다. 그녀는 독자들에게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오프라인에서 진짜 사람들과 연결되는 경험을 더 많이 하라”고 조언한다.

책이 탄생한 이유, “이건 더 미룰 수 없었어요”
코로나 기간에 김 박사는 SNS에 넘쳐나는 잘못된 정보들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이 혼란을 겪고 있는 현실을 보며 저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정보가 절실한데, 너무 왜곡된 내용이 많았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책으로 이어졌죠.” 원래는 수면에 관한 책을 쓰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바운더리’라는 주제로 전혀 다른 방향의 책이 완성됐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본인의 글 대부분이 경계 짓기와 감정 정리에 대한 내용이라는 걸 깨닫고 집필을 결심했다. 육아 중에도 카페에서 짬을 내어 글을 쓰는 그 시간이, 오히려 그녀에게는 힐링이자 자기돌봄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은, 내 감정을 다루는 법을 보여주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심리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질문에 김 박사는 이렇게 답했다. “자녀가 심리적 위기를 겪지 않게 하려면, 부모가 먼저 자신의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또한 저는 “제가 힘들 때 아이들에게 ‘엄마 지금 잠깐 쉬고 올게.’라고 말해요. 그렇게 내 마음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자기 감정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심리 교육은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닌, 일상에서의 지속적 대화와 공감에서 비롯된다. “아이에게 ‘말해, 이해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부모가 스스로 바운더리를 지키고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훨씬 강력해요.”

정신건강, 감추지 말고, 공유하세요
“미국에서는 테라피 받는 걸 자존감이 높고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전히 치료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남아 있죠.” 김 박사는 “공부한 사람도, 박사도 힘들다”며, 자신의 우울, 불안, 그리고 유년기 감정 문제 등을 솔직히 나누었다. 그녀는 정신건강 문제를 정상적인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즉 Normalize 하는 문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정신 건강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고, 누구나 한 번쯤은 흔들릴 수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사실을 감추지 않고, 스스로 돌볼 용기를 갖는 거죠.”

다음 여정, 연구로 커뮤니티에 되돌려주는 삶
김 박사는 내년부터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와 함께, 심리 치료의 접근성 개선을 위한 연구를 시작할 예정이다. 심리적 도움이 필요하지만, 치료에 대한 장벽(낙인, 비용, 접근성)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인들에게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목표다.
마치며

김현 박사의 이야기는 단순한 심리학자의 인터뷰 그 이상이다. 이민자로서의 삶, 엄마로서의 고민, 연구자로서의 성취,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선택이 고스란히 담긴 한 사람의 고백이자 선언이다. 그녀가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마음의 건강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인정하고, 그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연습에서 시작됩니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