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귀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 6년간 메이플(반려묘) 이 집안 식구로 지내면서 처음 있는 일이라 온 가족에 비상이 걸렸다. 매일 아침 일찍 메이플 아침을 챙겨주시는 할머니가 용의 선상에 올랐다. “어머니, 뒷마당 문 열어 놓으셨어요?” “할머니, 메이플 어디 갔어요?” 아들, 며느리, 손자에게 연이어 날 선 질문으로 집중포화를 맞은 할머니 얼굴에 어이없는 분노가 역력하였다.

“난 문 열어 놓은 적 없다.” 단호한 한마디를 남기시고 방으로 서둘러 들어가 버린 할머니의 뒷모습에 억울함이 묻어났다. 온 식구가 수색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다행히 메이플을 발견했다. 이 녀석이 왜 뒷마당 문 바깥쪽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지는 미스터리였다. 녀석의 점프력이면 충분히 넘을 수도 있을 텐데 왜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을까. 같은 일이 3일째 반복되자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도대체 왜? 녀석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반갑게 할머니를 맞이한 메이플은 밥을 먹으려다 갑자기 소스라치듯 놀라며 튀어 달아났다. 수수께끼가 풀렸다. 노후된 집을 재건축하려는 이웃집에서 최근 며칠 동안 이른 아침 중장비를 동원해서 가옥을 부수느라 엄청난 소음이 있었다. 인간 청력의 5배를 가진 고양이 귀에 천지진동 수준의 공포의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단순한 공사판 소리가 고양이 삶 전체를 뒤집어 버렸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 은행이었다. 마침 투자이민 오는 분들이 많았던 시기라 수퍼 리치 고객 유치를 위해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비영어권 신규직을 많이 채용한 덕에 운 좋게 취업이 되었다. 기본 밀리언$ 이상 예치한 프리미엄 고객들을 관리하는 부서였다. 한중일 영어권 5명이 한 팀이 되어 귀하신 고객분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팀 내 분위기는 꽤 좋은 편이었다. 각자 맡은 고객들의 국적이 다 달라서 그 흔한 사내 경쟁 같은 것도 없었다. 틈만 나면 팀원 간 이야기 꽃을 피웠고 밥도 같이 먹고, 누구 생일이 되면 매니저는 자기 집에 모두 초대해서 파티를 열어 주었다. 그런데, 나와 띠동갑쯤 되는 젊은 팀원 하나가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한참 지난 후에나 알게 되었다. 자기가 팀원들을 피했던 것은 우리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를 듣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우리가 너무나도 즐거워했던 이야기의 주메뉴는, vip 고객들에 대한 “뒷담화” 였다. 나라별로 부자들이 얼마나 진상짓을 하는지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올렸다. 얼마나 재미 있는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그때마다 젊은 친구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던 것이다. 자신이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고객들인데, 감사는 커녕 그들을 “씹는” 자리에 함께 한다는 것이 도저히 허락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리 즐겁고 재미있는 대화라 할지라도 영혼을 더럽히는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며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젊은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유학 중 첫 아이가 태어났다. 공부 좀 한다고 늘 몸이 피곤함을 느꼈다. 두시간마다 우유 달라 울어 재끼는 갓난아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전방 군 복무 때 경계근무를 위해 밤에 한번 일어나는 것이 군사훈련보다 힘들었던 기억이었는데, 새벽에 두세 번을 깨야 하는 초보 아빠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녹초가 되었다. 24시간 아이를 돌보는 일이 아내에게 힘든 게 분명한데, 오히려 나는 밤새 깨지 않고 편히 자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임산부의 몸 안엔 많은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특히 뇌의 한 부분인 amygdala의 활동과 oxytocin 같은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면서 산모의 오감 능력이 증가한다. 아이의 모습, 움직임, 소리, 냄새 등 아이의 어떤 것이라도, 엄마의 특수 레이더에 다 잡힌다. 나처럼 무딘 아빠들이 쿨쿨 자는 동안 아이의 숨소리마저 놓치지 않는 엄마들에겐 아이의 울음 소리는 고양이 귀에 천둥소리 같은 것이다. 엄마의 섬세한 귀가 없었다면 한 생명이 잉태되어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게 가능할까 싶다. 고대 이스라엘은 여호와라는 유일신을 믿었는데 인간의 언어로 소통하는 신이라는 점에서 특별했다. 우리가 알아듣는 말로 대화하는 신, 상상만 해도 놀랍지 아니한가?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예레미야 5:21)

말을 안 듣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신의 한탄이다. 약속의 땅에 나라를 만들어 주고 백성 삼아준 신의 말씀보다, 자기 귀에 듣기 좋은 말만을 들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나라가 둘로 갈라지고 망하고 말았다. 그들이 무엇을 듣는가가 나라의 존폐를 결정한 셈이 되었다. 최근 앞길이 창창한 젊은 스포츠 선수 둘이 한 달 남짓 사이를 두고 연이어세상을 떠났다. 넘치는 에너지로 살아야 할 운동선수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들의 생명을 앗아간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에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은 것이었다. 듣는 귀가 없어서 사람들이 죽어간다.

지난주에 지인 한 분이 수술을 했다. 아는 친구들에게 그분이 이렇게 카톡을 보냈다. 수술 통보는 저에게 죽으라는 소리로 까지 들려서 코로나로 인하여 수술이 연기되어서도 정신적으로 무너진 상태였어요 그러는 과정에 늘 평범하지 않은 삶과 직장은 저에게는 삶의 의미를 못 찾게 했던 시간이 었고요 ~ 그런데 늘 그랬던 거 같아요 늘 버티었던 거 내가 늘 눈감고 최악을 생각할 때 떠올랐던 거는 이상하게 여러분들이었어요 ~ 수술대 올라가서도 무서워 울면서도 여러분들이 준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던 거 같아요. 다시 한번 기도로 응원으로 사랑을 보내준 여러분께 너무 고맙다고 말할게요. 들어주는 귀가 있어서 한 친구가 살아났다. 사람이 살아나는 것보다 세상에 더 귀중한 일이 있을까?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라는 노래가사가 있다. 자신이 창조한 인간에게 귀 기울이는 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가르칠 때 가끔 이런 말을 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세상에 귀 없는 자가 어디 있나. 하지만, “들을 귀”는 참 드물고 귀한 모양이다. 엄마의 귀, 창조 주의 귀,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귀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살아있다. 나는 영혼을 더럽히는 쓰레기 같은 소리들을 너무 많이 들으며 살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들어야 할 이웃의 신음소리에 귀를 닫고 살지 않았나 돌이켜 본다. 자신도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들을 귀”들이 많으면 좋겠다.

글 주진규 목사

 

•맨하탄 GCC (Gospel Centered Church,복음으로 하나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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