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의 캘리포니아주 첫 여성 하원의원이자 39지구 연방하원 후보
영 김 Young Kim
한 세기가 넘는 이민의 역사를 지나 오는 동안 한인 이민사회에서 정치인의 배출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은행에서 합병과 매입 분야에서 일했던 한 여성 회계 전문인이, 우연한 기회에 주 상원의원의 보좌관으로 발탁되어 23년 일한 뒤 2014년 공화당의 강력한 추천으로 공천되어 민주당 현역의원을 누르고 주하원 의원으로 당선된다. 한미 외교와 지역주민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해 온 그녀가 이제 2020년 연방하원에 출마하며 선거에 재도전한다. 궁금한 그녀의 지난 스토리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들어 본다
Q 맘앤아이 독자들을 위해 김 전 의원님의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A 저는 현재 캘리포니아주에서 연방하원 39지구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입니다. 지난 2018년 예선에서, 전체 17명의 후보들 중에서 1위로 본선에 진출했고 개표 당일에도 9천표 차이로 상대 후보를 리드했으나, 마지막에 민주당의 몰표가 쏟아져서 1.6%라는 근소한 차이로 연방하원에 낙선했습니다. 연방하원에 출마하기 전에는, 2014년에 캘리포니아주 65지구 주하원 의원으로 당선돼 일했고요. 주하원 의원에 출마하기 전에는, 제가 현재 출마한 지역에서 26년 동안 연방하원 의원을 지낸 에드 로이스 전 연방하원 외교위원장의 정책 및 지역구 담당 스태프로서 20년 이상 일했습니다.
로이스 의원은, 한미 의원들 간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위해 ‘한미의원연맹’을 발족시켰고, 저는 미국측 실무간사를 맡아 한미무역협정, 일본군 위안부 문제 공론화, 탈북자와 북핵문제, 독도영유권 문제 등 많은 한미 간의 실무를 다루었습니다.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남가주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고요. 가족으로는, 한미연합회 전국회장을 지낸 남편과 1남3녀가 있으며, 3명은결혼하였습니다.
Q 20년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에드 로이스 연방하원의 보좌관으로 지내신, 그 시절의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의원님의 정치 철학은 어떤 것인지요?
A 저는 정계에서 일하거나 공직에 출마한다는 것을 꿈꾼 적이 한 번도 없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로이스 의원과 가까이 지내던 남편의 권유로, 정말 우연한 기회에 당시 캘리포니아주 주상원 의원이었던 로이스 의원의 보좌관으로 첫발을 내디뎠지요. 하원외교위원장을 지낸 로이스 의원은, 한국의 정치인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대표적인 친한파 의원이었고, 미국측 대표로 한미의원연맹 창설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한미 간의 협력사업은 물론이고 북한 문제에 관해서는 가장 먼저 앞장서는 미국 정치인이었습니다. 북한의 100불짜리 위조지폐 발행을 적발하고 중지했던 일을 비롯해서 탈북자 문제, 남북 안보 문제, 국군포로 실태 조사와 미국의회 증언, 북핵 문제 등을 공론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로이스 위원장은 한미 양국의 현안 문제를 다룰 때, 당신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도 늘 제 의견을 묻고, 또 제가 말한 것들을 전적으로 신뢰하였으며, 한국 문제에는 누구보다도 더 애정을 가지고 북한의 개방과 자유민주주의 체제 정착을 위해 노력한 분입니다.
굳이 저의 정치 철학을 말하라면, “If you don’t care who takes the credit, you can get a lot done!”입니다. 공치사를 하지 않고 어떤 실무적인 문제든지 앞장서서 다루면, 정당이나 이념을 떠나 국민들을 위해 많은 것을 할 수가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했어요. 사관학교 진학을 추천하고, 지역구 주민들의 민원들을 접수하여 비자 문제, 대학생 인턴십 등 문제들을 해결하고, 한미 자유 무역 협정 체결, 위안부 할머니 보상과 독도 소유권 분쟁 해결, 북한 인권 문제, 동양계 지역주민 자문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보좌관 때 한미 외교의 일선에서 많은 일들을 했는데요. 특히 연방정부와 관련된 민원들의 실무를 해결하기 위해 일할 때는, 내가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을 도와 줄 수 있었던 것이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일하였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때 도움을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때마다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곤 합니다.
Q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으로 회자되는 의원님, 2014년 주하원 의원으로 재직하셨을 때 일군 성과나 보람 있었던 활동에 대해서 나누어 주세요.
A 주하원 의원으로 “한인의 날” 결의안을 제청하고 통과시킨 일, 처음으로 주의사당 내에서 기도회를 주최하고 한국말로 빌딩이 떠나갈 듯한 큰 소리로 “주여 삼창”을 하면서 기도하고 설교하고 찬송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수십 명의 한인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이 주정부청사에서 한데 모인다는 것이 정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주하원의원으로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캘리포니아주 주립대학의 등록금을 동결시킨 것이었습니다. 세금 인상을 억제하고 홈리스 군인 가족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1백만 불의 예산을 발의하여 통과 시켰고요. 가정 폭력의 희생자들을 위한 보호 법안, 노인 대상 재정사기방지 법안을 제정하고 통과시켰지요. 소규모 사업가들을 위한 원스톱 웹사이트 운영과 함께, 민주당 의원과 공동으로 신규 사업자를 위해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주정부에서 주민들에게 제공하도록 하였습니다.
Q 오랜 세월 많은 일들을 지역과 주민들을 위해 헌신하셨군요. 그러면 정치인으로서뿐 아니라 아내로서, 엄마로서 역할도 많이 바쁘실 것 같은데요, 전 의원님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남편이나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겠어요?
A 저는 가정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정계에서 일하며 많이 바빴지만 엄마의 역할을 게을리한 적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가정이나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몫이 전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저는 아내가 혼자서 아이들을 기르거나 가정을 전적으로 책임지기는 어려우며, 남편과 함께 좋은 팀이 되어야 바람직한 가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남편은 미래지향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사람이고, 사회활동을 많이 하면서도 가족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러 면에서 저의 멘토이고 또 한인사회가 필요로 했던 선각자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은 저와 비슷한 시기인 75년에 이민 와서 미군에 자원 입대한 뒤 6개월간 훈련을 받고는 하와이에 위치한 미육군 25사단에서 헬리콥터 정비병으로 3년을 복무했어요. 제대 후에는 남가주대학(USC)에 정치학을 전공하며 사회활동을 시작하였고, 신문사에서 청소년과 교육 담당 기자로서 미국에서의 자녀교육에 관해 부모님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80년대 초 라디오코리아가 창립되었을 때 최초로 시사 토크쇼도 진행한 바 있는 준 언론인입니다. 2005년부터 15년 이상 매주 월요일마다 ‘찰스 김 칼럼’을 라디오코리아 전파를 통해 방송하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합니다. 80년과 90년대 초에 한인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남편은 1.5세대라는 말을 처음 만든 장본인이고,대표적인 1.5세로 한인 이민사회의 나아갈 길에 대해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1.5세들의 단체인 ‘한미연합회’를 창설했고요. 전국 회장을 지내며 10여 개의 지부도 조직한 조직 전문가입니다. 그밖에 한미박물관, 한인청소년회관, 한인건강정보센터, 한인가정상담소 등의 단체들을 창설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80년대 말에 세리토스 시의원에 출마한 경험을 바탕으로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한인 후보들의 선거를 거의 대부분 자문하거나 선거 본부장을 맡았지요. 이러한 선거 전문가로서 남편은, 제가 앞에서 뛸 수 있도록 든든한 바람막이 역할과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에는 4명의 자녀들이 있어요. 첫째 딸은 UCI를 졸업한 후 퍼블리시스트로 일하며 샌 루이스 오비스포에서 District Attorney Office에서 검사로 일하는 남편과 살고 있고, 워싱턴 DC에 거주하는 둘째 딸은 연방정부 내무부의 홍보 분야에서 일하고 남편은 학교 Special Education 교사 겸 레슬링 코치랍니다. 외아들인 셋째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커피 전문가가 됐어요. 프로페셔널 사진가와 암벽 등반 코치로도 일하고요. 지난 해에 결혼해서 현재 신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며느리와 시애틀에서 살고 있습니다. 막내인 딸도 커피 전문가로, 한 커피 전문체인의 리저널 매니저로일하고 있습니다. 손자손녀가 없어서 아직 “할머니”는 아닙니다. 🙂
Q 정말 다복한 가족이시네요. 그러면 전 의원님 가족이 이민 와서 어릴 적 이야기나 대학시절은 어떠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이 있다면 그것도 나누어 주세요.
A 저는 부모님을 따라서 괌으로 이민 왔으며 괌에서 중학교, 하와이에서 고등학교 그리고 미국 본토로 건너와서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부터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았어요. 위로 언니들과 오빠가 많은 집의 막내딸이라 부모님도 어쩌면 지치셨을 거예요. 저는 어릴 때부터 거의 독립생활을 한 셈이지요. 하지만 제가 앞날을 개척해 나가는 데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괌에 살 때, 어머니와 주말마다 비치에서 깡통을 주으러 다녔어요. 그땐 왜 줍는지도 몰랐지만 나중에야 (recycling해서 모은) 그 돈이 어머님이 다니던 교회 건축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 때는 기숙사에서 살면서 학교 생활에 충실했고, 인턴십을 비롯한 과외 활동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한인학생회에서는 매해 제일 못생긴 남학생 갑돌이와 제일 인기 있는 여학생 갑순이를 선발하여, 둘이 데이트하라고 상금을 주는 재미있는 행사를 했는데, 제가 갑순이로 뽑혔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데이트는 안 나가고 상금만 챙겼지요. 하하.
Q 이미 오래 전부터 인기 만발이셨군요. 가주에서 공화당으로는 주하원이 된 첫 한인 여성이시지요? 여성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불리한 점과 장점인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또, 미래에 정치인을 꿈꾸는 한인 2세 및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맞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알프레드 송 주니어라는 분이 한인은 물론 소수민족으로는 최초로 주하원과 상원에 당선된 바 있지만, 공화당으로는 제가 첫 번째 여성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입니다. 여성 정치인으로 유·불리한 점을 말씀하셨지만, 저는 아예 여성, 남성 정치인으로 분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나 소수민족이라고 불리한 점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주민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패배하는 사람은 반드시 변명할 거리를 찾습니다. 불리한 상황이라 졌다고 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덜 준비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올바른 투자,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치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VICTIM MENTALITY(피해자 근성)에서 벗어나, 자기 스스로 개척자라는 사명감으로 가지고 자기 길을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변명하는 사람은 패배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많이 배우고, 경험하고, 항상 준비된 마음으로 활동하다 보면, “Take the leap of faith and just do it!”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Q 올해 4월 연방하원 선거를 앞두고 계시는데요. 출마하는 동기와, 당선되신다면 임기 동안 어떤 일들을 펼칠 계획이신지요.
A 저희 캘리포니아주에서는 3월 3일에 예비 선거가 있는데, 공화당에서는 제가 단독 후보예요. 그래서 11월 선거로 곧장 갑니다. 그래서 선거 자금을 모으는 데도 전념하고 있어요. 제가 연방하원 의원에 당선된다면, 저와 같은 여성들에게 큰 힘이 되고 싶습니다. 당선이 되든 안되든, 제가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여성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당 선 된다면, 그 동안 끊어졌던 ‘한미의원연맹’을 재건해서 한미 간의 현안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는 가운데, 협조할 수 있는 것은 협조하며 대화와 협력으로 든든한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당락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Q 정치 이외에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계획이나 소망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A 좋은 엄마와 아내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삶은 길지가 않고, 가족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청교도들이 세운 미국을 부정하고 미국을 비기독교 국가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를 정말 두 눈을 부릅뜨고 말리고 싶어요.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고, 엄마 뱃속의 태아들을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는데도 아무 때나 유산을 시킬 수 있게 만든 것과 같은 비윤리적인 법들을 개정하고 싶습니다. 마약 사용을 중지하도록, 또 무책임한 임신 중절도 줄어들 수 있도록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