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20년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에드 로이스 연방하원의 보좌관으로 지내신, 그 시절의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의원님의 정치 철학은 어떤 것인지요?
A 저는 정계에서 일하거나 공직에 출마한다는 것을 꿈꾼 적이 한 번도 없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로이스 의원과 가까이 지내던 남편의 권유로, 정말 우연한 기회에 당시 캘리포니아주 주상원 의원이었던 로이스 의원의 보좌관으로 첫발을 내디뎠지요. 하원외교위원장을 지낸 로이스 의원은, 한국의 정치인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대표적인 친한파 의원이었고, 미국측 대표로 한미의원연맹 창설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한미 간의 협력사업은 물론이고 북한 문제에 관해서는 가장 먼저 앞장서는 미국 정치인이었습니다. 북한의 100불짜리 위조지폐 발행을 적발하고 중지했던 일을 비롯해서 탈북자 문제, 남북 안보 문제, 국군포로 실태 조사와 미국의회 증언, 북핵 문제 등을 공론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로이스 위원장은 한미 양국의 현안 문제를 다룰 때, 당신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도 늘 제 의견을 묻고, 또 제가 말한 것들을 전적으로 신뢰하였으며, 한국 문제에는 누구보다도 더 애정을 가지고 북한의 개방과 자유민주주의 체제 정착을 위해 노력한 분입니다.
굳이 저의 정치 철학을 말하라면, “If you don’t care who takes the credit, you can get a lot done!”입니다. 공치사를 하지 않고 어떤 실무적인 문제든지 앞장서서 다루면, 정당이나 이념을 떠나 국민들을 위해 많은 것을 할 수가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했어요. 사관학교 진학을 추천하고, 지역구 주민들의 민원들을 접수하여 비자 문제, 대학생 인턴십 등 문제들을 해결하고, 한미 자유 무역 협정 체결, 위안부 할머니 보상과 독도 소유권 분쟁 해결, 북한 인권 문제, 동양계 지역주민 자문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보좌관 때 한미 외교의 일선에서 많은 일들을 했는데요. 특히 연방정부와 관련된 민원들의 실무를 해결하기 위해 일할 때는, 내가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을 도와 줄 수 있었던 것이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일하였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때 도움을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때마다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곤 합니다.
Q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으로 회자되는 의원님, 2014년 주하원 의원으로 재직하셨을 때 일군 성과나 보람 있었던 활동에 대해서 나누어 주세요.
A 주하원 의원으로 “한인의 날” 결의안을 제청하고 통과시킨 일, 처음으로 주의사당 내에서 기도회를 주최하고 한국말로 빌딩이 떠나갈 듯한 큰 소리로 “주여 삼창”을 하면서 기도하고 설교하고 찬송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수십 명의 한인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이 주정부청사에서 한데 모인다는 것이 정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주하원의원으로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캘리포니아주 주립대학의 등록금을 동결시킨 것이었습니다. 세금 인상을 억제하고 홈리스 군인 가족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1백만 불의 예산을 발의하여 통과 시켰고요. 가정 폭력의 희생자들을 위한 보호 법안, 노인 대상 재정사기방지 법안을 제정하고 통과시켰지요. 소규모 사업가들을 위한 원스톱 웹사이트 운영과 함께, 민주당 의원과 공동으로 신규 사업자를 위해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주정부에서 주민들에게 제공하도록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