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글, 사진 한지혜(Elly Han)


지난 6개월간 연재 했던 나의 명랑 하고도 험란한 배우 이야기는 여기서 막을 내리려 한다. 마지막 스토리에서 오스카 상을 받는 감격스런 배우 성공기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사실 그것보다 현실 적인 결과로 막을 내리는게 더 훈훈하고 구수하지 않은가? 이야기는 비록 여기서 끝나지만, 나는 계속 나아갈것이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다시 이어쓸 수 있다면, 그때는 정말 멋진 성공기 였으면 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연재 하며 내가 느낀 것이 많다. 배우라는 직업은 한 작품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작품을 찾아나서는 미래 진행형의 직업인데, 글을 쓰며 내가 걸어온 길을 하나하나 돌이켜 볼수있는 기회를 갖을 수 있었다. 배우 친구들과 가장 행복 한 순간의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물론 무대위에 있을 때, 세트장에 있을때, 연기를 할 때가 행복한 순간이지만, 가장 짜릿한 순간은 오디션을 본 작품에 캐스팅됐다는 이 메일을 받았을 때라고 모두 동감했다. 왜냐하면 그 짜릿함과 행복은 결코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캐스팅된 작품은 길어야 한 두달 촬영 후, 끝나버린다. 우리는 자주 오지도 않는 그 행복을 다시 사냥하러 나가야 하는 운명의 직업이다. 근데 그런 나에게 지난 나의 길을 돌아보며 ‘아 내가 많은 작품을 했었고, 열심히 걸어 왔구나.’ 자신의 실패를 비난하기에 익숙한 나에게 지난 날의 성공을 돌이켜보고 잘했다고 등을 토닥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그 기회로 나는 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이미 글로벌 팬데믹에 들어섰다. 모든 것들이 멈췄듯이, 영화, 티비 프로덕션들도 촬영을 멈췄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배우들은 집에서도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한 두달은 그동안 바뻐서 보지 못했던 티비 쇼를 챙겨보며, 여유롭게 와인 한 잔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내려간 브로드웨이의 무대의 막은 오랫동안 다시 올라갈 것 같지 않았고, 많은 프로페셔널들이 한곳에서 힘을 모아 예술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세트장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소셜 디스턴싱 과 마스크 착용이 불가능한 직업이 몇이나 있을까?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배우라는 직업이었다.

아주 긴 공백 뒤로 몇몇 유명한 연극 극단이 화상으로 연극을 하기 시작했다. 티비 광고 들의 오디션이 화상으로 천천히 시작되었다. 티비 쇼의 오디션 들도 화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영화 오디션들은 셀프테입(셀프촬영)으로 바뀌었다. 오디션 장에 가 웨이팅 룸에서 다른 경쟁자들과 서로 눈빛을 주고 받는 것도, 카메라와 조명이 있는 방 안에 들어가서 긴장감을 감추며 리더(대본의 상대역을 읽어주는 사람)와 감정을 주고 받는 것도, 오디션을 잘 보고 기분좋게 열 블럭을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것도 이제는 없다. 박스 위에 랩탑을 올려 내 눈높이에 맞춰놓고 바로 옆 화장실에 가서 메이컵을 마치고, 상의만 이쁘게 갈아입고 하의는 추리닝을 그대로 입은 채 다시 내 방으로 들어와 링크를 클릭해 화상 웨이팅 룸에서 내 차례를 기다린 후 화면 속에 캐스팅 디랙터와 최대한 감정을 살려 연기를 시도한다. 요즘 모든 오디션의 과정이다. 내 방안에서 나 혼자 화면 속에 사람과 진실되게 연기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상대의 에너지를 느낄 수 없고, 나의 작은 표현까지 랩탑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은 야망에 불과했다. 팬데믹 가운데 운 좋게 두 개의 광고를 촬영했다. 하나는 나의 집에서 촬영팀이 보내준 카메라와 조명, 마이크로 내가  직접 세트장을 셋업을 한 다음 화상으로 감독이 지시하며 하는 촬영 이었고, 다른 하나의 촬영은 촬영 전 COVID 테스트를 마친 뒤 세트장에서 한 촬영이었다. 세트장의 바닥은 소셜 디스턴스를 가이드 하는 테입 범벅이고, 촬영 크루는 최소화 되어있었다. 촬영 직전 까지 마스크를 착용하며, 웃으며 수다떠는 시끌벅적한 예전의 세트장 대신 마치 도서관에 온것 같이 조용한 세트장에는 소통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마 언젠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배우들은 이 모든 과정들이 새롭고 어렵다. 사람들이 마주 앉아 가짜를 진짜로 실현해 내는 직업이 지금은 화면 속에 갖혀 앉아 아이 컨텍트 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채 연기에 임한다. 사람이 너무나 그리운 직업.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포기는 없다.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갈 수록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휴식을 줄 수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대공황 이후에 유명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듯 굶주리고 고독했던 예술가들의 깊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내가 다시 글로 찾아 뵙는 그 날에는 나 자신도 더 깊고 나아가 있기를. 지금까지 쭉 걸어왔던 지난 길 처럼.

글, 사진 한지혜(Elly Han)

상명대학교 연극과 졸업 후 한국 창 작뮤지컬 ‘뮤직 인 마이하트’, ‘당신이 잠든 사이’, ‘기쁜 우리 젊은 날’ ‘오즈 의 마법사’ 등의 출연했다.

2011년 남편과 뉴욕으로 유학 온 후 뉴욕 필름 아카데미 졸업하고 아마 존(Amazon), 에스티 라우더(Estee Lauder) 광고를 시작으로 TV Nexflix ’Unbelivable Kimmy Schmidt’ HBO의 ‘THE DEUCE’ 그리고 2021 년 HBO 개봉예정인 ‘THE FLIGHT ATTENDANT’ 등의 출연했으며, 영 화는 ‘Till we meet again’ 과 수많은 작품상을 휩쓴 단편영화 Stavit Allweis 의 Cooking with Connie의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 이외에 도 여러 영화작품에 출연했으며 2021년 개봉 예정인 첫 헐리우드 진 출작 ‘Supercool’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14년에는 평소에 즐기 던 여행과 글쓰기를 병행해 민음사의 ‘축제 여행자’로 여행 에세이를 출간 했다.

활동 정보는 www.imdb.com/name/nm5579181/,

instagram@ellypie0623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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