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그만 둘 쯤,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근데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석사를 하겠다는 모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다. 마침 그 때 난 여행 책을 집필하고 있었던 때라 어디로 떠나자고 하면 말이 떨이지기무섭게 짐부터 쌌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뉴욕으로 건너왔다. 오자마자 남편은 공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나는 주로 혼자 타임스퀘어 TKTS 부스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화려한 광고판들의 번쩍임을 응시하며 내 얼굴이 저 전광판에서 함께 번쩍이는 상상을 했다. 안될 일 없지 않은가. 연못에서 헤엄쳐 봤는데, 바다에서 헤엄치지 못하라는 법 없지 않은가. 그래서 바로 영화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무대 연기와 카메라 연기가 그 연기가 그 연기라고 생각되겠지만, 무대 연기를 오랫동안 했던 나는 카메라 프레임에서 자꾸 벗어나 교수님께 혼난 적이 셀 수도 없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스크린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새로운 연기법을 접했다. 가지고 있었던 것을 바꾸려니 고집만 생겨서 다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채웠다. 신기한 건 시작한 이후로 두근거림이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그 두근거림을 동력으로 여기서 10년을 걸어왔다.
영화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나는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빨리 세상으로 나가 타임 스퀘어 한복판에 내 얼굴을 올리고 싶었다. 예전에 뮤지컬을 하며 존경하는 선배가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결국 모든 예술가들의 생명은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과의 싸움을 견딜 수 있느냐에 달린 거야. 이제 곧, 올해는, 내년에는, 이 작품을 잘하면, 다음이나 일 것이라는 ‘Hope, 희망’과 끊임없는 자기비판 사이에서 싸울 수 있는 ‘Confidence, 자신감’만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생명(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