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가족,
트레버와 아카시아 그리고 베니이야기
노란 해바라기와 파란 장미가 담긴 화병을 든 사람이 거실을 향해 분주히 걸어가고 있다. 칵테일 바와 푸드테이블이 바쁘게 세팅된다. 집 안 가득 차오르는 기분 좋은 음식 냄새, 기글거리는 여자들 웃음소리, 분주히 열리고 닫히는 현관문, 펄럭이는 데코레이션. 누가봐도 여긴 잔치집이다. 오늘은 귀염둥이 베니(Bennie)가 한살이 되는 날. 스물두살 엄마, 아카시아(Acacia)와 스물두살 아빠, 트레버(Trevor) 그리고 한살박이 베니, 이 세사람은 한가족이다. 만혼과 비혼이 만연한 요즘같은 시대에 참 흔치 않은 일이다. 오백겁을 거쳐야 옷깃을 스칠 수 있고, 칠천겁은 스쳐야 부부가 된다는 데 베니가 세상에 와 한 가족이 되기까지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이 한 지점까지 서로 잇닿아있었던 걸까? 베니의 첫 생일에 트레버와 아카시아, 그리고 베니이야기가 못내 궁금하다.
February 20, 2016
아카시아는 이 날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트레버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트레버가 아카시아를 처음 본 날이다. 더 많이 기억한다는 것, 더 많이 사랑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좋을까? 첫 만남의 순간을 이야기하는 트레버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트레버와 아카시아는 병원의 한 Therapy program을 통해서 만났다. 당시 대학생이던 아카시아는 대학생 60% 이상이 앓고 지나간다던 College depression으로 상담치료를 받던 중이었고, 트레버도 비슷한 이유로 그 프로그램에 다니고 있었다. 말이 없고 무표정했던 아카시아를, 그럼에도 훤칠하게 키가 크고 별나게 예쁜 아카시아를 트레버가 놓쳤을 리 만무했다. 그즈음 아카시아 못지않게 트레버도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생후 4개월에 미국가정에 입양 되어 나름 훌륭하게 잘 자랐지만 성인이 되고 세상에 혼자 나와보니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남모르는 아픔으로 힘들어 하던 중에 그들은 서로 만났고, 사랑을 키웠고, 어느새 가정을 이루게되었다. 서로 바라보며 애틋한 미소를 나누는 그들이 왠지 여느 커플과는 달라 보인다.
아카시아, 트레버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아카시아:자상함이요. 배려 같은거. 나에 관한 아주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 따듯함, 사려깊음 이런 것들이 좋았어요. 그때 나는 무척 외롭고 힘들었는데 트레버가 나의 아픔에 큰 위로가 되어주었어요.
트레버는 아카시아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어요?
트레버:글쎄요, 정확히 뭐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뭔가 다른 느낌, 이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있었어요. 아카시아가 말이 없고 표정이 없었지만 저로하여금 계속 아카시아를 쳐다보게 만들었거든요. 아카시아가 뭔가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고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만난 두사람이 이제 베니의 엄마, 아빠가 되었어요. 기분이 어때요?
아카시아: 정확히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Parenting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매일매일이 새롭고 베니때문에 행복해요. 내 삶이 온통 베니에게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여자는 엄마가 된 다음에야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해요 그말?
아카시아: 맞아요. 동의해요 . 내가 엄마가 되고보니 엄마한테 제일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더라구요. 어려서는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말씀이나 행동들이 이제는 다 이해가 되요. 그래서 더 미안하고 더 많이 감사해요.
트레버는 남들하고는 좀 다른 삶을 살았다고 들었어요.
트레버: 네, 저는 한국사람이고 아버지 케빈(Kevin)과 엄마 조 앤(Jo Ann)은 아이리쉬입니다.태어난지 4개월이 되었을 때 지금의 제 부모님께서 저를 입양하셨어요.그래서 한국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한국말도 전혀 못하고 한국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어요. 저희 양부모님께서 한국아이만 다섯을 입양하셨는데, 누나와 제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한국어 선생님께 한글을 배우게 하셨어요. 그땐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아는게 없어요.
자랄 때 누나 ,동생들이랑 잘 지냈어요? 티격태격 다투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트레버: 형제자매가 다 입양아라 선입견을 갖고 보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희집도 여느 가정하고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싸울일엔 싸우고, 울고 그러면서도 또 같이 잘 지내고 그랬죠.
트레버가 생각하는 양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세요?
트레버:다른 부모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희 엄마 아버지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분들 같아요. 지혜로우시고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시는 분들이시죠. 가끔 두 분 사이에 갈등이 생겨도 늘 아이들이 우선 순위였고, 우리를 위해서는 두분의 갈등을 잠시 뒤로 물려놓곤 하셨어요.항상 최선을 다하셨구요.저희 어머니는 제가 맏아들이라 그런지 저를 많이 의지하시는데 그래서 그런지 저도 엄마, 아버지를 많이 생각합니다.
어릴적 추억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요?
트레버: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희 부모님들께서는 저희들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해주고 싶어하셨어요. 그래서 매년 여름이 되면 캠핑밴(RV)을 빌려 한달씩 여행을 하곤 했어요. 아마 제작년쯤 알래스카를 마지막으로 미국 50개 주를 모두 여행했어요. 각 주마다 특색을 공부하고 국립공원을 방문하며 정말 멋진 시간을 보냈어요. 많은 좋은 추억들이 있지만 그게 저에게는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아마 부모님께서 양육(Parenting)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셔서 트레버도 베니에게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은데, 오늘 베니 첫돌을 맞아 베니에게 특별히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트레버: 지난 일년동안 매일매일이 행복했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날들도 너무 기대가 되요. 베니에게 아빠가 늘 베니와 함께 할 것이며, 베니가 좀 더 자라면 아빠가 베니의 스포츠 감독이 되어주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아카시아: 저는 베니가 하는 모든 일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며, 늘 그 아이를 사랑하고 항상 돌봐줄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다섯 입양아의 엄마이자 베니의 할머니 조 앤(Jo Ann),사람들은 그녀를 천사라 부른다.
삶에는 ‘결’이라는것이 있다. 더러는 흡족하게 의미있는 날이 있고 때로는 어설프고 설익은, 그러나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펼쳐놓고 보면 어느 한 방향으로 흐르는 저만의 무늬같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조 앤은 자신의 삶에 새겨진 그 결이란 것을 ‘신의 섭리’라고 표현했다. 말하자면 그녀를 향한 신의 의지가 완성해 놓은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것이다. 독실한 캐톨릭 신자인 조앤은 그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다섯아이를 입양해 잘 성장시켰고, 지금도 처음처럼 그들을 한결같이 사랑하는 여전한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사랑하는 맏아들 트레버가 베니를 선물해 주었고, 그녀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New Beginning) 앞에 설레는 마음으로 서있다고 말한다. 커피를 건네는 조 앤의 표정이 무척 밝고 당당하다. 아이를 다섯명이나 입양했고, 더구나 그 모든 아이가 다 한국아이들이라는 사실이 왠지 한국사람인 나와도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섯아이를 입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데,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그건 그저 단순한 제 열정때문이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커서 뭐가 되고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엄마가 되고싶다고 말하곤 했어요. 저는 아이들을 너무 좋아해요. 케빈(Kevin)과 결혼을 하고 많은 아이를 낳아 큰 가족을 이루어 살고 싶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저는 아이를 갖지 못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입양을 하게되었죠. 다섯 아이 입양해서 다 키웠는데 지금도 일주일에 3일은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요.”
그런데 왜 다섯아이 모두를 한국에서 입양하셨는지요?
제가 16살 때 엄마하고 샤핑몰에 간 적이 있는데 어느 백인 여자가 동양아기를 안고있는 것을 보고 엄마에게 나도 이 다음에 동양아이를 꼭 입양하고싶다는 말을 했더니 엄마가 그러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어려서 그냥 해보는 말이겠거니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없자 케빈에게 동양아이를 입양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했어요. 그렇게 첫 아이새미( Samantha)를 입양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다음 입양이 이어졌죠. 꼭 한국아이여야 한다는 계획같은 것은 없었는데 첫 아이를 한국에서 데려와서 그랬는지 동생들도 모두 한국에서 입양해왔어요. 사실은 6명을 입양하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네째 해리(Harrison)와 다섯째 앤디(Andrew)가 쌍둥이인데 둘 다 조숙아였어요. 아이들이 발육이 느리고 여러 가지 장애가 있어서 다 자랄 때까지 품에서 내려놓질 못했어요. 키우는 동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아서 그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입양을 멈추게 되었죠.
정상적인 아이들도 입양하기 어려운 일일데 조숙아들을 데려와 잘 키워내셨다니 사람들이 조 앤을 왜 천사라 부르는지 짐작이 가네요. 그 쌍둥이들을 데려올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아이들이 조숙아라는 것이 제게는 특별한 일은 아니었어요. 만일 내가 임신을 해서 조숙아를 낳았다면 좀 달랐을까요? 저는 자녀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데 내가 낳았건 입양을 했건 그 아이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변함없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조숙아여서 특별히 갈등하거나 어려워하지는 않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다만 키우는 동안 제가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도 열심히 키웠고 아이들도 잘 자라주어서 감사해요.
아이들을 키울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어요?
아이를 양육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자녀가 입양아라고 특별히 다르진 않고요. 다만 입양을 하기 위해 치뤄야하는 절차가 있거든요. 먼저 서류가 아주 까다롭고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걸리는데, 제가 이미 입양을 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 조차 전혀 도움이 되질 않을 정도로 할 때마다 복잡하고 어렵더라구요. 게다가 연 중 수시로 집으로 검열을 나와 입양에 관한 법규들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체크하고 학대 사실이 있는지 철저히 조사하기 때문에 그런 검열이 귀찮을 정도여서 그게 조금 어려웠죠. 그래도 아이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외 양육에 관해서는 어느 가정이나 겪는 정도였어요.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한가지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아이들을 자기 나라가 아닌 미국으로 데려온 것이 늘 미안해서 이 아이들에게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빨리 가르쳐주고 싶었어요.그래서 해마다 한달씩 휴가를 내서 온가족이 미국 전역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2016년 알래스카를 마지막으로 50개 주를 모두 여행했어요. 그 순간이 제게는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어렸을 때 트레버는어떤 아이였어요?
트레버는 어려서부터 아주 조용하고 사려깊은 아이였어요. 생김새는 어려서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구요. 수줍음이 있었던 반면 운동을 좋아했죠. 엄마인 저에게 늘 사랑스런 아들이었지만 가만히 돌이켜보면 남자들을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종일 저와 같이 있다가도 저녁에 케빈이 돌아오면 케빈한테서 떨어지지 않았어요. 지금 베니가 꼭 그렇더라구요.
그렇게 품에 안고 키우던 트레버가 이제 아이아빠가 되었어요. 좋은 부모가 되도록 트레버와 아카시아에게 조언을 주신다면?
Parenting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보상이 큰 일도 없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 믿음으로 양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베니가 이제 한살이 되었는데, 아이는 한 가정을 결합해주는 아주 중요한 매개이자 부모로써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하는 존재입니다. 아이를 갖고 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매일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트레버나 아카시아도 아직은 어린 나이기 때문에 아이 양육 만큼 스스로도 성장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 가끔 데이트도 하면서 나이에 맞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그래야 저도 베니하고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겠어요?
베니의 돌잔치에는 백명 가까운 친지와 트레버, 아카시아 친구들이 참석해서 5시간 이 넘도록 파티를 벌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베니는 돌잡이에서 100불짜리 지폐를 거머쥐었다. ‘Money, Money’를 목이 터지게 외친 외할머니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돈을 잡은 베니는 작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분좋게 웃으며 ‘나도 세상을 다 안다구’ 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난생 처음보는 돌잡이 풍습이 신기한 듯 케빈과 조 앤을 비롯한 외국인 친지들은 수퍼볼을 볼 때보다 더 큰 함성을 질러대며 즐거워했다.
아이리쉬 할머니, 할아버지가 베니보다 더 어렸던 트레버를 미국으로 데려왔고, 잘 자란 청년 트레버는 아릿따운 아카시아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베니를 낳았다. 칠천겁의 시간을 넘어 그들은 가족이 되었고 오늘 그들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가족이란 비선택적, 비자발적 조합이며, 흔히 혈연관계로 정의되지만 베니의 가족을 설명하기에는 왠지 2% 부족하다. 어쩌면 조 앤의 말처럼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라면 설명이 어려울 것이다.이렇게 우리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새삼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하루였다. 트레버와 아카시아 그리고 조 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잔치 파티가 끝나자 아카시아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그녀가 네살즈음, 맘앤아이의 ‘베스트 스마일 어린이 콘테스트’에서 일등을 했던 적이 있다고. 그러고보면 아카시아와 맘앤아이의 인연은 거의 16-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상 모든 인연이 새삼 놀랍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