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임규진 (Q Lim)

이룰 수 없는 꿈은 품지 않은 꿈입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사상 최초로 주역 맡은현역 
‘한국인’ 뮤지컬 배우 임규진(Q Lim)
 
대학을 졸업하고 3개월만에, 미국 뮤지컬 무대에 섰다. 그것도 주역이었다. 졸업 3년만에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한국인 성악가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출연한 예는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임규진(Q Lim)이 뮤지컬의 본향,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는 순간 이루어진 역사가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사상 최초로 오리지널 캐스팅 커버역에 발탁된 한국인(Korean)-. 스무 살에 미국에 온 이후, 단발 캐스팅에 그치지 않고 토니상에 빛나는 거장 감독, 작곡자들과 꾸준히 작품을 이어가는 한국인 ‘현역’ 뮤지컬 배우, 임규진-. ‘이룰 수 없는 꿈은 품지않은 꿈’이라 믿는 그녀의 ‘꿈’에 관한 스토리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사상 최초로 오리지널 캐스팅 커버역에 발탁된 한국인(Korean)-. 임규진은 단발 캐스팅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활동하는 '현역' 한국인 뮤지컬 배우다

발레, 잃어버린 꿈

어느 날 어린 규진은 엄마 손에 이끌려 발레학원을 찾았다. 변두리동네에 산다고 놀림받던 규진은 그 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발레복을 입고 어여쁘게 춤을 추는 규진에게 친구들도, 선생님도박수와 찬사를 보냈다. 발레는 규진을, 변두리 동네 아이가 아닌,그냥 임규진, 아니, ‘천사같은’ 임규진으로 만들어 주었다.규진은 발레리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는, 뮤지컬 ’42번가’를보고 나와 엄마에게 물었다. 뮤지컬 배우는 어떤 사람들인가요,하고. 엄마는 뮤지컬 배우를 하려면 춤 말고도 노래, 연기도 잘 해야한다고 했다. 발레리나가 될 터인 규진에게 뮤지컬 배우는 자신과별 상관없어 보였다. 그런데 중학생 때 그만, 발목을 다쳤다. 규진이 더 이상 발레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꿈도, 미래도 사라진 것 같았다. 고 3이 되어 대학 전공과목을 정해야 하는데 가고 싶은 학과가 없었다. 막막하기만 하던 중에 운명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가 있었다. 뮤지컬, ’42번가’의 한 장면이었다.

“이제는 춤을 출 수도 없게 된 마당에 춤은 물론이고, 제가 해 본 적없는 노래, 연기도 필수인 뮤지컬 배우가 웬말인지…. 저도 이유를모르겠어요(웃음). 제 인생에서 어느 하나에 집중할 곳이 없어져서였을까요? 무대로 집중되는 수많은 관객들의 시선이 다르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그 속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제 모습이 보였어요. 너무나도 열정적이고, 행복해 보였어요!”

규진에게 다시 꿈이, 미래가 생겼다.

임규진(Q Lim)

한국 서울에서 태어나 스무 살 때 뉴욕의 파이브 타운스 칼리지(Five Town College)에 입학, 아메이칸 뮤지컬 앤 드라마틱 아카데미(American Musical And Dramatic Academy)에 편입한 이후 뮤지컬 전공으로 조기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뮤지컬 ‘판타스틱(Fantastice)’의 주인공, 루이자 역으로 데뷔했고, 해마다 열리는 ‘브로드웨이의 떠오르는 스타들(Broadway’s Rising Stars)’에서 AMDA 대표 솔로이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디즈니 뮤지컬에서 재스민, 뮬란, 포카혼타스 등 여주인공을 두루 거쳤고 대학을 졸업한 지 3년째 되는 2015년, ‘왕과 나’의 ‘텁팀(Tuptim)’역으로 한국인으로서는 20년만에 브로드웨이에 입성했고, 이후 ‘미스 사이공’의 ‘미미(Mimi)’역 등 브로드웨이 메이저 뮤지컬에서 오리지널캐스팅, 커버 및 앙상블을 맡아 다양한 작품을 거쳤다. 지금도 브로드웨이 거장 감독, 작곡자들과 꾸준히 활동 중이다. 현재, 전에 배우였고 지금은 성우인 한국계 미국인 남편 대니얼과 뉴욕에서 살고 있다.

‘왕과 나’의 주역 중 하나인 ‘텁팀’ 공주 커버 역에 발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뮤지컬은 해 본 적 없던 스무 살 유학생이 대학 졸업 후 3년만에 이룬 감격이었다

다시 꾸는 꿈, 브로드웨이 뮤지컬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유학을 온 규진은 보이스 레슨을 받으러 가기 위해 고단한 몸과 마음을 맨해튼 지하철에 실었다. 저마다 다른 얼굴과 피부색을 한 사람들의 무심한 표정들. 그 틈에서 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지하철이라 전화는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 발신번호는 브로드웨이 캐스팅 회사, 텔시 앤 컴퍼니(Telsy &Company). 메시지를 남긴 이는 ‘왕과 나(King And I)’의캐스팅 담당, 애비(Abby)였다. 전화를 달라는 간단한 내용이었지만 규진은 남편에게도 메시지를 보내 같이 들었다.남편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화를 걸어보라고 조언했다. 규진은 전철을 내려 조용한 골목길로 들어가 전화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는 동안, 크게 심호흡을 했다.

“You booked the show as the original cast! You’ve gotselected for Tiptom! Congratulations!”

규진은 다리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간절히 원했지만 기대하지는 못했다. 콜백 오디션을 몇 번 거치면서도 쟁쟁한 경쟁자들에 비해 자신은 한참 경력이 모자라 보였다. 게다가 규진은 유일한 외국인에, 아직 배우 협회 소속도 아닌 처지였다. 그제야 감격에 겨운 눈물이 솟구쳤다. 남편, 대니얼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성우지만, 한때는 역시 배우였던지라 자신이 캐스팅된 듯 기뻐하는 남편의 목소리 위로 지난 날이 빠르게 되감아졌다.

 

‘뉴욕’이란 높은 벽, 험준한 산

고등학교 때 제일 좋아하던 과목이 영어였다. 그만큼 영어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뉴욕으로 유학 와서 첫 수업 시간, 규진은 충격적인 현실에 맞닥뜨렸다. 일단, 뮤지컬과 학생 중에 외국인은 규진 혼자였다. 그들은 규진의 영어를 거의알아듣지 못했고 자꾸 조롱하듯 웃었다. 뮤지컬 본토인 뉴욕에서 친구도 사귀며 견문을 넓혀보려던 계획은 무색해졌다. 친구는커녕, 규진을 가까이하려는 이조차 없었다.

수업을 위해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작품이 있었다. 조명, 세트, 의상, 오디오, 소품 등으로 파트를 구분해 저마다 역할이 주어졌다. 규진은 ‘소품’을 맡겠다고 했다. 필요한 물품을 구해오거나창고에서 가져오면 되니 영어를 못해도 될 것 같아서였다. 선배들이필요한 소품 목록을 종이에 적어 건넸다.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 인터넷도 잘 안 되는 창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규진은 그걸 번역하느라 끙끙거려야 했다. 언어가 안 되니 연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상대역을 맡은 학생들이 난감하다 못해 좌절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하루 종일 얼굴이 뜨끈거렸다. 그런 규진이걱정된 학과장이 그녀를 오피스에 불렀다. 그 곳에 가면 규진은 펑펑울었다. 교과서를 펴면 한 페이지 읽는데 몇 시간 걸리니 또 펑펑 울었다. 그러나 달아나고 싶지는 않았다. 벽이 있다면 문을 찾고, 산이있다면 넘고 싶었다. 스무 살 규진에게, 뮤지컬은 유일한 꿈이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가능해진다

다행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남들보다 몇 곱절 노력하면될 일이었다. 결심이 서고, 규진은 그 때부터 영어만 썼다. 한국의부모님과 이메일로 연락하고 전화 통화는 하지 않았다. 친언니하고도 영어로만 이야기했다. 보컬 레슨은 녹음해서 무한 반복하며연습했다. 대본 읽는 시간이 그나마 쉬는 시간이었다. 점심시간에는 발음 공부를 했고, 취침시간에는 그 날 수업을 복습했다. 공부하면서 잠을 자고, 꿈도 꾸었다.

그렇게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된 ‘노력’은 어느덧 ‘무기’가 되어 있었다. 미국 뮤지컬 드라마 아카데미(American Musical andDramatic Academy)를 졸업하자마자 규진은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뮤지컬 ‘판타스틱스(Fantastics)’의 여주인공에 발탁되었다. 해마다 열리는 ‘브로드웨이의 떠오르는 스타들(Broadway’sRising Stars)’에서 AMDA 대표 솔로이스트로 무대에 섰다. 디즈니 크루즈 라인에 합류해 재스민, 뮬란, 포카혼타스 등 타이틀 롤을 두루 거쳤다. 그리고 졸업 후 3년만에, 전 세계 뮤지컬 배우의드림 스테이지, 브로드웨이의 꿈을 이뤄냈다.

 

“돌아보면, 참 많은 게 불가능했던 상황이었어요. 언어는 물론, 발레만 했을 뿐 노래와 연기도 처음부터 배워야 했으니까요. 게다가’왕과 나’에 기적적으로 캐스팅되고도 비자문제로 오리지널 캐스트는 포기해야 하는 사태가 생겼죠. 영주권이 있으면 바로 워크 퍼밋이 나온다고 해서 당시, 결혼을 약속했던 지금의 남편과 5달러짜리 웨딩드레스와 1달러짜리 반지를 사서 시청에 가서 급히 결혼식을 올렸어요. 하지만 링컨센터는 무조건 영주권이 그 시점에서있어야 계약이 된다는 거예요. 어떻게 얻은 캐스팅인데 싶어 너무속상했죠. 당시,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레스토랑에 그만둔다고 했다가 되돌아가야 했어요. 영주권은 그 후에야 얻었는데, 제가 원래 캐스팅된 역에 마침 기적처럼 다시 자리가 난 거예요. 처음부터 지레, ‘안 된다’라고만 여겼다면 전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겠죠!”

대니얼과 결혼식을 두 번 했다. '왕과 나'에 캐스팅되고 비자문제가 빚어지자 5달러짜리 웨딩드레스, 1달러짜리 반지를 사서 시청에 가 급히 올린 결혼식이 첫번째. 정신없던 그 결혼식이 지금은 소중하고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한국인 입양아로 미국인 부모 밑에서 미국인으로 자란 남편과는 동양계 배우들과 공연하는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그들 사이에서 ‘스타’였던 남편은신참배우 임규진에게 말을 걸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새로운 도전, 보다 넓은 ‘소통’을 꿈꾸며

판데믹으로 인해, 브로드웨이가 유례없는 휴지기에 들어갔다. ‘왕과 나’를 4년 간 이어오던 규진도 공백이 생겼다. 예술계가 다같이 힘든 시기지만 규진은 자신의 삶에 또 다른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바로, ‘티칭(teaching)’이다. ‘이방인’으로서 높은 산을 넘은 넘은만큼, 규진은 지금 그 산을 눈 앞에 두고 있거나 넘고 있는 이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다. SNS를 통해 들어온 질문들을 보다가 생각이 닿았다. 십여년 전에 규진이 했던 질문과 하나 다를 게없었다. 브로드웨이를 다루는 한국의 기사나 자료가 안타깝게도 오류가 많았다. 뮤지컬 배우 지망생들을 보다 생생하고 실제적인 정보로 돕고자 하는마음이 새로운 꿈의 발판이 되어 주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사상 최초의 한국인 배우, 임규진의 새로운 꿈-. ‘뮤지컬’과 ‘영어’를 키워드로 한 ‘소통’이다. 그를 위한 행보로, 그만의 남다른 경험을토대로 유튜브 채널, ‘큐 방 티브이(Q Bang TV)’를 오픈했다. ‘큐 방 티브이’에는 뮤지컬 정보 외에 영어 발음도 다루고 노래하는 영상도 올리며 뮤지컬 지망생 및 뮤지컬을 사랑하는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리고 노래와 발성에 과학 이론을 접목시킨 에스틸 매니저 프로그램(Estill Manager Program) 지도자 과정을 밟으며 본격적인 ‘티칭’이 가능하도록 자격과 실력을 갖춰 나가는중이다. 그리고 한국계 미국인 장애인 단체를 위해 드라마 워크샵 프로그램을만들면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뮤지컬을 통해 소통하는 모습에 특별한 체험을 했다. 또한, 뉴욕을 기반으로 ‘한국배우모임’을 결성해, 같은 뜻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면서 콘서트 및 자선활동을 통한 대중 소통에도 매진할 생각이다.

“’소통’을 통해, 그간 제가 해 온 경험들이 ‘고난’에서 멈추지 않고 ‘보람’이란 가치로 피어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제가 실수하면서 ‘뼈저리게’ 얻은 깨달음이 이제는 제게 오히려 유용한 컨텐츠가 되어 준 셈이죠. 앞으로 당연히 뮤지컬 배우로서 오디션에도 계속 도전하겠지만 이번 판데믹으로 온라인의 효능과 영향력을실감했기에 앞으로 온라인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나누면서 뮤지컬 배우, 그 이상의 삶에 도전하고 확대시켜가고 싶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배우였다가 지금은 성우로 활동하는 대니얼과 함께 노래하 는 영상을 유튜브에 자주 올린다. 그와 노래할 때면 듀엣이 아 니라 솔로가 되는 특별한 기분이 든다


임규진만이 가진 남다른 경험을 토대로 뮤지컬, 영어 발음 교정을 주요 콘텐츠로 하는 유튜브 채널, ‘큐 방 티브이(Q Bang TV)’를 오픈했다

 

브로드웨이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 만 브로드웨이 밖 무대, 더 큰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소 통하고 싶다. 외롭고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브로드웨이 무대 에 올라선 ‘한국인’ 뮤지컬 배우, 임규진에게 지금부터 소중 한 키워드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 내미는’ 소통이다

이수정 _ 스토리 큐레이터 ‘이야기(story)’를 찾고 찾은 이야기를 글로 쓰고, 구성하고, 전하는 사람. 단편소설 「소 리의 군무 (群舞)』로 재외동포문학상을, 수 필 「쓸어주고 싶은, 등』 으로 재미수필가 협 회상을 받았다. 2019년에 공감 스토리북 『 내 편, 돼줄래요?』를 출간하고 따뜻한 ‘내 편’ 이야기를 찾아 다닌다.

Share This

Share on facebook
Share on pinterest
Share on twitter
Share on linkedin
Share on email

Mom&i

창간 20주년을 맞이한 북동부 최대의 한인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Mom&i

Mom&i

Comments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