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크기만큼 행복하다고 믿는 휴머니스트 Clarinetist 최승호

뉴저지에서 처음 맞는 겨울, 따뜻한 날씨에만 익숙해 있던 나에게 매서운 추위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눈발은 갑자기 길에서 마주친 옛 친구처럼 반가우면서도 당혹스러웠다. 궂은 날씨가 서서히 익숙해질 무렵, 조심스레 운전해 그의 작업실에 다다랐다. 오랜만이다. 예술가를 만나는 일,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 시간의 속도를 자의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오늘 이 시간만큼은 좀 천천히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작업실 문을 두드렸고, 그의 세계에 발을 딛는 순간, 바깥의 혹독함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창밖의 배경이 되어 녹아버렸다. 

취재글,사진 : 맘앤아이 편집부

예술가 특히 뮤지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보편적인 선입견이나 기대감이 있다. 하나의 사물, 하나의 세계에 빠져 있는 오타쿠 같은 분위기에 개성이 뚜렷한 외모 그리고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에 독특하고 감수성 충만한 눈빛……. 클라리네티스트 최승호는 이 모든 것을 반전시킨다. 

따뜻했다. 작업실도, 그도. 전체를 살피고 배려하는 조화로움이 있었다. 그의 공간도, 그리고 그도. 감정에는 생각도 담겨 있었다. 예술과 음악이 전부인 삶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와 제자와 이웃이 그의 예술과 음악을 풍성하게 하는, 그런 삶이 그 안에 있었다. 예술가들이 많은 집안 분위기 속에서, 어머니는 아들이 플루트를 하기를 바랐단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보르네오라는 그 당시 한국에서 유명했던 가구를 선전하는 광고 속에서 멋지게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빠져들어, 어머니의 바람과는 다르게 최승호 뮤지션은 전공을 하기엔 조금 늦은 나이라고 할 수 있는 중학교 2학년 때 클라리넷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예술고에 진학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벨기에 왕립음악원에서 수학하고 일본 간사이의 어느 교수에게 잡 오퍼를 받게 되었는데, 그만 뉴저지에 사는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도미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것이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그렇게 미국에 와서 공부하며 성악을 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자녀 둘을 낳고, 기르며, 뉴저지와 뉴욕을 기반으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삶의 요약은, 음악가로서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에게서 느껴지는 반전의 요체는 과연 무엇일까.

저는 음악뿐 아니라 그림도 좋아했어요. 예술고를 다니니 그림을 전공하는 친구들의 작품을 많이 볼 수 있었지요. 어느 날 엄마가 주신 레슨비를 가지고 미술학원을 찾아 갔어요. 클라리넷 레슨을 받는 척하면서 그림을 배운 거죠. 벨기에에서 공부를 할 때 교회에서 봉사를 하면 그림을 가르쳐 주겠다는 분이 계셨어요. 봉사를 열심히 했죠. 그림을 배우려고요. 그분이 1년 동안 그림을 저에게 가르치시더니 어느 날 불러서 이러세요. “너는 마음 속에 그리고 싶은 것이 너무 많구나. 그래서 그림을 더 이상 그리지 않는 게 좋겠어. 대신 사진을 찍어 보는 게 어때?” 그림은 표현하는 데 기술적, 시간적 한계가 있는데 반해 사진은 마음이 내킬 때면, 표현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찍어 댈 수 있으니까요. 벨기에에 살 때부터였어요. 어디를 가든 저는 악기와 카메라를 늘 함께 가지고 다녔지요.

그렇다, 이 작업실은 그에게 음악을 하는 공간이면서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이기도 했다. 한 켠에는 지인들에게 기부 받아 2년에 걸쳐 수리를 한, 손때 묻은 세월의 흔적과 개인들의 역사를 품은 오디오들이 가득했다. 또 한 켠에는 프로 사진 작가의 스튜디오에나 볼 수 있는, 크기와 용도가 다른 사진기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돈을 받고 상업적인 작품을 찍어 주기도 하지만, 주로 주위 사람들 특히 뮤지션들 필요한 사진 작업을 그냥 해 줘요. 아시잖아요, 경제적으로 힘든 뮤지션들 많다는 거. 현실이 그래요. 솔리스트로 살아가는 거 참 어렵지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 더 힘들고요. 절대적인 연습 시간도 부족해지고, 그에 따른 생계도 어려워지고.

그의 기본 생활은 티칭이라고 했다. 레슨은 가장 큰 수입원이기도 하지만, 생계를 넘어 그의 삶의 근간이고, 원동력이고, 행복이라고 했다. 레슨에 특별히 집중하는 이유는 ‘클라리넷 앙상블’ 때문이란다. 티칭을 하며 운영하는 앙상블이 무려 일곱 팀이나 된다고 하니, 클라리네티스트여서 가르치고 앙상블을 운영해 갈 수 있는 것인지, 앙상블을 위해 클라리네티스트로 살아가는 건지 헷갈릴 정도이다. 독주가의 독보적인 아우라보다는 따뜻한 현실 감각이 묻어 있는 그의 분위기의 답은 여기에 있었다. 

 모두 가족과 같아요. 제가 Traumerei Clarinet Ensemble이라는 팀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데, Traum이라는 단어가 독일어로 ‘꿈’이에요. 저는 학생들과 함께 꿈을 꾸는 거예요. 꿈을 찾아 주기도 하고, 꿈을 이루어지게도 하고. 스승이지만 친구가 되기도 하고, 아빠가 되기도 하고. 클라리넷 전문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 혹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만 클라리넷을 배우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따뜻함을 나누려고 연주해요.

그러면서, 가르친 학생들이 대학에 가면 자신의 Helper가 기꺼이 되어 주고 함께 봉사를 다닌다고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목관악기의 활성화를 위해서 New York Youth Symphony Chamber Music의 코치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뉴욕 유스는 미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청소년 오케스트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의 지휘자 정명훈이 일찍이 지휘를 맡기도 했었다. Show Me The Heart 단체를 통해 병원에 장난감을 후원하는 행사를 하고, Norwood 소재 은혜 양로원에 아이들 클라리넷 앙상블 팀들을 데리고 연주를 통해서 봉사활동을 한단다. 선생님들 4명이 활동하는 Quartet Piri Ensemble은 음악적으로 도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 가서 연주 활동을 펼치는데, 프린스턴 대학, 뉴욕의 병원 등은 물론 최근에는 미국 대표로 초청되어 제주도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두세 달에 7~8회의 연주회를 하는 셈이에요. 작년 연말에는 아이들 앙상블 팀들이 양로원에 연주회를 다니느라 더 바빴지요. Quartet Piri Ensemble의 정기 연주회가 연초에 두 번 있었고요. 지난 1월 4일에 리키 김 씨의 아내로 알려진 뮤지컬배우 류승주, 백성은 뮤지션 들과 선교활동 모금을 위한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3~4월에는 제가 악장(Concert Master)을 맡고 있는 New York Wind Orchestra의 봄 연주회가 있고요. New York Youth Orchestra가 4월에 카네기홀에서 연주를 갖네요. 참, 아이들 앙상블 팀이 6월에는 한국에서 초청되어 콘서트를 가질 예정이에요. 말하고 보니 뭐가 참 많네요.

‘종횡무진 활동한다’는 표현보다 더 어울리는 말을 찾을 수 있을까. 잘나가는 뮤지션의 스케줄이 이 정도쯤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바도 아니었다. 그런데 “와, 정말 잘나가는 뮤지션은 달라. 정말 바쁘구나!” 이런 영혼 없는 탄사를 내뱉어야 하는 바쁨과는 본질적으로 좀 달랐다. 그 바쁨에는 선한 목적이 동반하고 있었기에.

클라리넷이 전부인 삶을 살아내는 것 같은 최승호 뮤지션, 하지만 그의 클라리넷에는 사랑과 우정과 가족애와 신앙이 있었고, 봉사와 교육과 나눔과 철학이 있었다. 그는 나눔의 크기만큼 행복하다고 믿는 휴머니스트였다.

Clarinetist 최승호

부산 예술고등학교와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Belgium Royal Concervatorium(벨기에 왕립음악원)에서 독주자 과정을 졸업하였으며 미국 뉴욕 주립대학(SUNY Purchase)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한양대학교와 뉴욕 주립대학 재학 시절 각 Concerto Competition에서 우승하였으며 벨기에 왕립 음악원에서는 Boeykens Clarinet Choir 악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일본 ‘간사이 클라리넷 소사이어티’의 초청 연주회를 가졌으며, 뉴욕 타임스에서 “이 시대를 이끌어갈 젊은 연주자들”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뉴욕 아르테미스 앙상블 클라리넷 수석 주자로 활약하였다. 

뉴욕과 뉴저지 지역을 중심으로 솔리스트로서 많은 독주 활동을 하는 동시에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분야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2011년 3월 인터내셔널 클라리넷 콰이어의 연주를 맨해튼에서 성공리에 개최하였고, 미국 Troy Univ.의 초청 연주를 하였으며, Montana에서 Clarinet Day 연주자로 초청되어 연주와 지휘를 맡았다. 클라리넷 앙상블에 특히 관심이 많은 그는 현재도 각 주의 여러 단체에서 초청되어 클라리넷 앙상블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Quartet Piri의 Bass Clarinet 연주와 Traumerei Clarinet Ensemble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New York Youth Symphony Chamber Music의 코치와  New York Wind Orchestra의 악장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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