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앤아이가 북케이스 가을 특집으로 時 두 편을 소개합니다. 선선해져가는 가을, 시의 선율을 통해 어수선했던 상반기를 잠시 내려놓고 잊고 있던 감성을 되찾아 볼 수 있기를 …….

손민정 에디터

인생 

최영미

달리는 열차에 앉아 창 밖을 더듬노라면

가까운 나무들은 휙휙 형체도 없이 도망가고

먼 산만 오롯이 풍경으로 잡힌다

해바른 창가에 기대앉으면

겨울을 물리친 강둑에 아물아물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시간은 레일 위에 미끄러져

한 쌍의 팽팽한 선일 뿐인데

인생길도 그런 것인가

더듬으면 달음치고

돌아서면 잡히는

흔들리는 유리창 머리 묻고 생각해본다

바퀴 소리 덜컹덜컹

총알처럼 가슴에 박히는데

그 속에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아직도 못다 한 우리의 시름이 있는

가까웠다 멀어지는 바깥세상은

졸리운 눈 속으로 얼키설키 감겨오는데

전선 위에 무심히 내려앉은

저걸, 하늘이라고 그러던가

1994년 출간되어 문학계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최영미 시인의 『서른,잔치는 끝났다(창비)』 에 실려 있는 시. 지금의 중년층 독자들에게 유명했던 이 시집은 2019년까지 59쇄를 찍으며 5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최영미 시인은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로 계속해서 여러 시집과 산문집, 소설 등을 발표했다.지난해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출판사)』을 출간하여 그녀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다시 만나고 있으며, SNS로도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사랑의 물리학 

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누구나

눈물 한 말 한숨 한 짐씩 짊어지고

밤하늘의 별들 사이를 헤매며 산다.

시인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시가 헤매는 우리 마음을 잡아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밤하늘의 저 별들이

내 슬픔을 가져갈지도 모른다.

_ 시인 김용택

2016~2017년 한국에서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도깨비>에 소개되어 유명해졌던 시와 시집이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 공유가 캐나다 퀘백의 한 공원에서 첫사랑의 감정을 이 시로 읊어낸 이후 곧 바로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는데, 시가 실린 드라마 속 책은 김용택 시인이 111편의 시를 엄선해 필사책(라이팅북)으로 펴낸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예담) 』이다. <사랑의 물리학>은 이 책의 맨 앞에 실려 있다. 이후 김인육 시인은 이 시가 실려 있던 기존 본인의 시집을 『사랑의 물리학(문학세계사) 』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하여 다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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