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웨일즈 풍 간직한 영국 시골 우리집

소교의 영국 시골마을 살이 / 가을편

정소교

도시를 떠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인 나는 영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영국 맨체스터 시티 센터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임신을 하고 입덧이 너무 심해 하루 메슥거리는 속을 달래지 못해 눈물로 연명해야 했다. 그러다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남편 친구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 피로연에서 큼직한 감자를 두 알이나 먹었는데 전혀 거부반응이 없었다. 자연에서 난 음식을 먹으니 그제야 멀쩡해지는 몸 상태에 놀라 도시의 소음과 매연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이 서고 말았다.

그 이후로 속속 절차를 밟아 우리 가족은 공기 맑고 물 좋은 시골 마을로 옮겼다. 한국에 살 때, 아파트 생활을 해서 그런지 명절이면 잠자리와 개구리가 많은 경주 할머니 댁으로 방문하는 일이 너무나 행복했기에 아이가 생기면 자연 속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그러다 결국, 뱃속 아기였던 딸의 격렬한 몸부림(?) 이 우리 가족의 시골행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 시골살이의 가장 큰 기쁨 중의 하나는 집 밖으로 나 가기만 하면 사시사철 변화하며 그때마다 다른 선 물을 안겨주는 자연, 그리고 그 자연 속을 살아가는 생명들을 벗하는 일이다.
여왕이 기차 타고 지나던 캐슬옆 작은 집

우리 가족이 정착한 곳은 200여 년 전에 지어진 펜린 캐슬(Penrhyn Castle)에 딸려있는 영국의 작은 마을이다. 우리 집을 포함해 인근 집들 대부분이 문화재로 등록돼 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곳이다. 영국 정부는 오래된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건물 외장 등, 건축 요소를 법으로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 이 마을은 투박한 돌, 아기자기 낮은 돌담 같은 웨일즈 특유의건축 양식을 200여 년 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남편은 너무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워서 보는 이에게 위화감을 주는 집은 피하고 싶다 했다. 200년전, 성 건축이나 보수에 쓸 목재를 다듬는 일꾼들의 숙소로 지어진 이 집이 그런 남편의 눈에 쏙 들어왔다. 소박하고 작은 집 뒤로 개구리와 도롱뇽이 사는 조그만 연못을 낀 길쭉한 정원이 있고, 정원 끝 완만한 언덕으로는 기찻길이 지나간다. 일년에 한 두 번 지나가는 고색 창연한 증기 기관차를 손꼽아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철길을 따라 빅토리아 여왕이 웨일즈로 기차 여행을 오갔다. 여왕에게 서민 가옥의 뒷모습 대신 아름다운 풍광만 보여주고 싶었던 성주, 펜린 경(Lord Penrhyn)의 충성심 덕에 집의 문이 기찻길을 향하도록 앞뒤가 뒤집어져 버렸다. 들어오는 입구가 뒷문이 되고 정원을 바라보는 곳이 앞문이 된요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오랜 역사가 얽힌 우리 집 매력 중 하나다. 오래 산 토박이들도 잘 모를 정도로 구석진 숲길에 숨은 작은 집이지만 사는 동안 손길 닿는 구석구석,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꾸미고 싶다. 이 집에 머무는 동안 지키고 싶은 나의 작은 예의이자 우리가 이 집을 만나고 느꼈던 기쁨을 나눌 먼 훗날의 누군가에게 작으나마 기분 좋은 선물을 남기고 싶어서다.

▲ 우리 가족이 정착한 곳은 200여 년 전에 지어진 펜린 캐슬(Penrhyn Castle)에 딸려있는 영 국의 작은 마을이다. 우리 집을 포함해 오래된 집들 대부분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을 정 도로 유서 깊은 곳이다.
▲ 여왕에게 서민 가옥의 뒷모습 대신 아름다운 풍광만 보여주고 싶었던 성 주의 충성심 때문에 우리 마을의 집들은 들어오는 입구가 뒷문이 되고 정 원을 바라보는 곳이 앞문이 된 요상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 또한 오랜 역사가 어린 부분이다
계절마다 자연이 주는 선물

시골 마을에 살면서 느끼는 좋은 점은 자연 속에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새벽 해가 떠오를 무렵부터 창 밖으로 들려오기 시작하는 새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되고 그 하루는 깜깜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과 함께 마무리 된다. 해 좋은 날 정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노라면 이따금씩 지나가는 기차소리와 마을의 오래된 교회에서 울려오는 종소리가 은은히 들린다. 비가 많이 내리고 나면 집 뒤를 돌아 흐르는 개울 물소리가 더 가까이 들린다.

계절이 바뀌면서 옷을 갈아입는 꽃과 나무들. 그때마다 선물처럼 얻는 갖가지 과일 열매들. 산책을 나서면 언제나 반겨주는 너른 들판의 양들과 말. 흐린 날이 많고 자주 비가 와서 악명 높은(?) 영국의 날씨는 오히려 시골 들판을 더욱 푸르고 생기 있게 만들어 주는 양분이다. 해가 짧은 긴 겨울 밤은 난롯가에 앉아 몸을 녹일 수 있는 낭만을 선물해 준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겨울을 견뎌내고 나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하는 들판의 꽃송이들과 갓 태어난 아기 양들이 봄 소식을 가져다 준다.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순환을 온 몸으로 느끼며 어여쁘게 자라는 딸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와 남편은 도시를 떠나 시골 행을 결심한 선택에 뿌듯함을 느낀다.

▲ 딸 루나는 하굣길에 보랏빛 담뿍 머금은 블루베리 따기를 좋아한다. 자연에서 우리집 부엌으로 날아 온 블루베리는 달콤한 잼이 된다.

 

정소교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자연에서 나는 음식을 먹어야 입덧이 가라앉는 바람에 자연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시골 행을 결심, 200년 전 웨일즈 풍을 그대로 간직해 문화재로 등재된 작은 시골 마을로 들어갔다. 새 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드넓은 들판에서 마음껏 뛰노는 딸을 키우며 남편과 오늘도 행복한 자연살이 중.

www.youtube.com/c/SOKYO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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