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ORY] 배우 한지혜_2부

글,사진 한지혜(Elly Han)

언어의 장벽을 기어 올라가다

영어를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런던에서 한 달 동안 진행된섬머 캠프에서 만난 독일 친구 콩레드 덕분이었다. 공부 잘하는 우리 반 친구 따라나섰던 생애 첫 해외 영어 캠프였지만 난 영어 한마디 알아듣지 못하고 친구도 만들지 못해 겉돌고 있을 때 수영장에서 콩레드를 처음 만났다. 수영장에서 같이 공놀이 하자는 그의 제안에 우리는 날마다 함께 수영장에서 놀며 친구가 됐다. 하지만 난 캠프 마지막 날 밤 얼굴이 홍당무가 된 콩레드가 진지하게 길고 긴 문장으로 나에게 건넨 고백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렇게 실망한 콩레드의 뒤돌아 서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내가 진짜 영어 하나는 기똥차게 하리라.

그렇게 시작된 나의 영어 실력은 이 후로 오르막 길을 탔다. 남들이 “ 너 영어 좀 하는구나?”라고 할 때까지 영어 공부도 꾸준히 하고, 회화도 꾸준히 했다. 외국 친구들과도 농담도 따먹으며 의사소통을 하는데 문제없으니, 우리가 뉴욕으로 간다고 했을 때, 그곳에서 내가 배우를 한다고 했을 때 그의 대한 두려움은 들지 않았다 .

그런데 빙산의 일각만 보고 큰 코 다친다는 게 바로 이럴 때 쓰이는 말인가 보다.

뉴욕에 와서 삶을 꾸리며 난 영어라는 장벽에 다시 부딪혔다. 살아가며 의사소통을 하는 영어는 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타국에서 삶을 살아가는데 영어라는 것은 결코 언어가 아니었다. 영어는 문화였고, 표현이었다. 내가 영어 단어들을 몇 개 알았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뜻에 담긴 문화와 표현을 이해하고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근데 나는 배우다. 이야기를 해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건 절망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배우로서 하나의 장점이 있다면 바로 우리는 그 절망이 익숙하다는 것.

대부분 오디션 노티스는 하루 전날 에이젼트에게 받는다. 운이 좋으면 하루 전날 오전에 받고, 대부분 오후에 받는데, 대본의 분량은 당연히 역할의 크기에 따라 다르다. 역할이 큰 오디션이 오면 차오르는 기쁨과 동시에 그날 밤새 연습해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내가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서가 아니다. 나는 그만큼 그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어는 내 모국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외국인이 이국 땅에서 이국어로 연기를 잘하려면 남들보다 덜 자야 한다. 비록 퉁퉁 부은 얼굴로 오디션을 보러 갈지언정.

이번 오디션은 네트워크 티브이에서 방영되는 미드(미국 드라마)의 꽤 큰 게스트 스타 역할이었다. 게스트 스타 역할은 한 에피소드의 사건을 일어나게 하거나,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요 인물이다. 비록 한 에피소드 지만 다른 주인공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역할이기 때문에 큰 역할에 속한다. 순진한 수녀, 알고 보니 테러리스트였던 반전을 가지고 있던 흥미로운 역할이었다. 어느 때처럼,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장 수녀다운 옷을 차려입고 당당하게 오디션 장으로 나섰다. 대본이 두 씬이었는데, 하나는 아주 드라마틱하게 눈물을 쏟아부어야 하는 씬이었다. 참고로,난 눈물연기를 참 잘한다.(우리 남편은 아직도 속는다.) 작은 오디션 방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했다. 모든 감정, 진실을 담아 장렬히 연기했다. 연기가 끝나고 캐스팅 디렉터의 얼굴을 보았다. 오예, 만족한 표정이다. 나의 볼에는 눈에서 막 흘러내린 눈물이 아직도 흐르고 있다. 캐스팅 디렉터가 티슈를 뽑아 건넨다. “Great Job, Elly!” 마음이 설렌다. 그리고 말한다.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이 캐릭터에 맞게 일부러 엑센트를 넣은 거죠?” “혹시, 미국 네이티브 엑센트로 다시 해 볼 수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막 닦은 눈물이 다시 흐르려고 한다. “네에???!!!”

오디션 장을 나왔다. 당연히 나는 원어민 발음으로 완벽하게 연기를 할수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얘기했고 최선을 다했다. 원래는 최선을 다하고, 내 연기에 만족한 오디션을 보고 나오면 발걸음이 가볍고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왠지 내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캐스팅 디렉터가 나에게 원어민 발음을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여기서 배우를 시작 한 이후로, 나는 미드에 작은 역할들을 따냈고, 광고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그 역할들은 모두 많은 대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역할 들이었기 때문에 나의 엑센트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레주메가 쌓이니 이제 제법 큰 역할들의 오디션 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역할이 커지니, 대사가 많아지고 대사가 많아지니 나의 엑센트가 튀는 것이다. 내가 경쟁하는 다른 동양인 배우들은 80-90% 이상이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때 이민을 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30살에 미국으로 온 내가 그들이 하는 영어를 따라가기는 벅찼다.

일주일에 한번 엑센트 레슨을 받았다. 나의 스승 찰스. 나의 구세주, 나의 구세주인 이유는 내 엑센트가 갑자기 마법처럼 없어져서가 아니다.내가 엑센트가 있는 이유는 내 구강 구조가 말을 시작하는 3세 이후로 한국말을 잘할 수 있게끔 근육이 그렇게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다. 그래서 줄곧 내가 잘하지 못하는 발음들, 그리고 내가 하는 발음들을 녹음해서 다시 들을 때 나는 죽을 만큼 나의 엑센트가 듣기 싫었는데, 찰스로 인해 나는 나의 엑센트를 받아들이고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결코 하지 못하는 것을 쫓아 내가 가진 것을 거부하기보다, 내가 가진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또한 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나는 원어민처럼 쏼라 쏼라 구슬처럼 흐르는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겠지만,나는 나만의 특색 있는 배우가 되면 된다는 용기를 찰스가 심어주었다 

예전 같았으면 오디션에서 원어민 발음을 할 수 있냐는 질문에 나는 나의 열정과 자존심이 앞서 “Yes”라고 하고 결국 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고 나의 엑센트를 실패의 이유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No, but I can try to reduce my accent. And i will do my best.”라고 말할수 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에이전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역할의 Final picks(최종 결정 후보)에 들어가 촬영 날짜가 가능한지 연락이 온 것이다.결국 그 역할은 다른 사람에게 갔지만, 나는 그때 깨달았다. 엑센트가 있어도, 내 영어가 비록 퍼펙트하지 않아도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것. 왜냐하면, 나의 영어는 흐릿한 콩레드의 뒷모습과 수없이 샌 밤들의 이야기가 담긴 나만 할 수 있는 나만의 표현이니까.

글, 사진 한지혜(Elly Han)

상명대학교 연극과 졸업 후 한국 창작 뮤지컬 ‘뮤직 인 마이 하트’,’당신이 잠든 사이’, ‘기쁜 우리 젊은 날’ ‘오즈의 마법사’ 등의 출연했다.

2011년 남편과 뉴욕으로 유학 온 후 뉴욕 필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아마존(Amazon),에스티 라우더(Estee Lauder) 광고를 시작으로 TV Netflix ’Unbelievable Kimmy Schmidt’ HBO의 ‘THE DEUCE’ 그리고 2021년 HBO 개봉 예정인 ‘THE FLIGHT ATTENDANT’에 출연했으며, 영화는 ‘Till we meet again’과 수많은 작품상을 휩쓴 단편영화 Stavit Allweis의 Cooking with Connie의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 이외에도 여러 영화 작품에 출연했으며 2021년 개봉 예정인 첫 할리우드 진출작 ‘Supercool’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14년에는 평소에 즐기던 여행과 글쓰기를 병행해 민음사의 ‘축제 여행자’로 여행 에세이를 출간했다.활동 정보는 www.imdb.com/name/nm5579181/,

Instagram@ellypie0623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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