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홍어 숫양파의 슬프고도 야한 이야기
글 황은미 변호사
도자기 굽는 시골에 손님이 찾아온다. 산나물이 억세진 5월 말, 6월이니 밭에서 이런저런 먹거리를 구해야 한다. 온갖 생선들이 산란을 위해 가까운 바다로 이동하는 절기이니 살 오른 생선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장에 가 본다. 물 좋은 활홍어, 참가자미, 멍게까지, 바다가 풍요로운 먹거리를 많이도 내놓았다. 며칠 뒤 오는 손님은 운이 참 좋다. 옛날부터 전라도에서는 “홍어 빠진 잔치는 잔치도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홍어를 좋아하고 즐겨 먹었다. 숙성 홍어도 맛있지만, 회로 먹는 활홍어의 맛도 일품이다. 쫄깃한 살점과 무른 뼈가 어우러져, 씹으면 씹을수록 감칠맛을 낸다. 활홍어, 참가자미, 멍게를 손님상 메뉴로 정했다. 도시에서는 마트에서 필요한 식재료를 쉽게 구하겠지만, 자연이 주는 대로 상을 차리는 시골은, 장에 가서야 그날의 메뉴가 정해진다. 손님상 메뉴는 정해졌으니, 손님이 오면 밭에 함께 가서 고추, 감자, 청상추, 꽃상추, 양파 등의 재료를 구해오면 되겠다. 자연이 선사한 맛있는 한 상을 오롯이 즐기기 위해 장에도 가고 밭에도 가보라. 24절기마다 다른 재료를 내어주는 자연을 배우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꽃상추
손님과 함께 쌈 재료를 구하러 밭으로 간다. 때마침, 보기 좋고, 먹기도 좋게 자란 꽃상추가 눈에 띈다. 잘 자란 꽃상추와 월동 상추를 뽑아 상을 차린다. 쌈을 먹을 때는 상추를 몇 장이고 겹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상추를 입안 가득하게 채워 먹는다. 그래야 상추의 아삭하고, 쌉싸래하면서도 달큼한 뒷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양파
양파는 암놈과 수놈이 있다. 양파는 익으면 옆으로 눕는데, 숫양파는 옆으로 눕지 않는다. “수놈(양파)은 꼿꼿하게 서있는다”라고 말하고 나니 뭔가 야한 느낌이 든다. 손님도 금새 웃는 것을 보니, 비슷한 연상이 되나 보다. 수놈은 알이 세로로 길고 맛이 맵다. 암양파는 익으면 옆으로 눕고, 동그랗고, 단단하고, 맛이 좋다. 암양파 두 알을 캐서 상 차릴 때 함께 낸다.
홍어
활홍어와 가자미를 먹기 좋게 썰어낸다. 연골어류인 홍어는 경골어류와 달리 뼈를 발라낼 필요가 없다. 뼈째 한 점 한 점 썰 때마다 활홍어의 살점이 칼에 붙었다가, 그 신선한 탱글탱글함이 칼날을 튕기고 떨어져 나간다. 입으로 맛을 보기 전에 눈으로 맛을 느끼는 듯, 손님은 벌써 맛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
홍어는 암놈이 크고 맛도 뛰어나서 수컷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암컷과 수컷은 생김새로 쉽게 구별되는데, 암컷은 꼬리 하나만 있고, 수컷은 꼬리와 양쪽으로 꼬리처럼 삐져나와 있는 두 개의 생식기가 있다. 그래서, 옛 어부들은 수컷 홍어를 잡으면 바로 생식기를 칼로 쳐 없애 버렸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비속어는 이런 사연에서 생긴 것이다. 맛없는 숫양파의 꼿꼿함과 홍어 수컷의 슬픈 거세 이야기에 손님도 웃고 나도 웃는다. 이야기와 웃음이 더해지니 반찬이 하나 더 늘어난 듯 손님상이 더욱 풍성해진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푸는 자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