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남성 최초 ABT 수석 무용수로 날아 오른 발레리노 안주원
세계적인 발레단인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merican Ballet Theatre, 이하 ABT)의 서머 시즌 공연이 2 년 만에 재개된다. 코로나로 인해 직접 볼 수 없었던 뉴욕의 대표적 발레 공연이 링컨 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다시 오르는 것이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지난 2020년 한국인 남성 최초, ABT 수석 무용수로 승급된 발레리노 안주원씨가 ‘돈키호테’(6월 15일/18일)의 바실리오역과 ‘백조의 호수’(7월 6일)의 지그프리트 왕자역으로 주역을 맡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입단 6년 만, 솔로이스트가 된지 1년 만에 초고속 승급으로 수석 무용수 자리에 우뚝 선 발레리노 안주원씨가 맘앤아이 스튜디오를 찾았다.
ABT 최초의 한국인 남성 수석 무용수가 되신 걸 축하합니다. 수석 무용수란 무엇인가요?
ABT의 무용수는 군무(여러 사람이 무리를 지어 추는 춤)를 추는 ‘코르 드 발레’와 독무(혼자서 추는 춤)를 추는 ‘솔로이스트’ 그리고 공연의 주역을 맡는 최고 무용수인 ‘수석 무용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주인공을 맡는 사람들을 수석 무용수라고 하는데요. 영어로는 Principal Dancer , 주연 무용수라고도 합니다. 저는 수석 무용수가 된 지 얼마 안되어서 주인공 역할도 겸하는 무용수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주인공만 하진 않고 군무나 조연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한국인 최초로 ABT의 수석 무용수가 된 발레리나 서희씨와 함께 저는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남자 발레리노로는 처음으로 ABT의 수석 무용수가 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4년 ABT에 입단한 안주원 씨의 활약이 두드러진 건 2018년 무렵부터였던 것 같아요. ABT의 봄 시즌 공연 ‘라 바야데르’의 주역으로 무대에 서시더니, 2019년 9월 솔로이스트로 승급하며 ‘해적’ 등 여러 작품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셨는데요. 한창 주목을 받던 때 코로나가 터지면서 공연을 통해 뵐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솔로이스트에 오른 지 정확히 1년 만에 수석 무용수 승급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당시 기분은 어떠셨나요?
한창 열심히 활동하다 코로나로 공연이 중단되면서 한국에 들어가 있었는데요. 공연이 없어서 승급 발표도 없을 줄 알았는데 집에서 줌 미팅을 통해 수석 무용수가 되었다는 발표를 들었어요. 당시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얼떨떨하고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어머니도 깜짝 놀라시며 많이 좋아하셨고, 아버지는 수고했다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저희 가족이 감정 표현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요. 그런 어머니 아버지의 성격을 알기에 말씀은 많이 안하셨지만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 어렸을 때 발레 학원과 집과의 거리가 멀었어요.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오고 가고 하시느라 매일 왕복 3시간씩 운전을 하시며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더 기뻐하셨던 것 같아요.
수석 무용수가 되고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극장에 가면 쓸 수 있는 방이 생겼어요. 저 혼자만 쓰는 건 아니고 두 세 명이 함께 쓰기는 하지만 공연용 단독 대기실 같은 게 생긴 것이 달라진 점이구요. 물론 월급도 올랐습니다. 월급이 오른 것에 비해 세금을 거의 절반 정도 떼고 받으니 사실 드라마틱하게 체감되진 않아요. 생활이 많이 달라지진 않았어요(웃음). 복지 같은 경우는 단원들이 모두 차별 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요. 이건 저희 발레단의 장점 같아요.
ABT는 러시아의 마린스키와 볼쇼이, 영국의 로열 발레, 프랑스 파리 국립 오페라 발레 등과 함께 세계 최고 발레단으로 꼽히는데요. 미국 최고의 발레단이라고 할 수 있는 ABT의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다른 발레단에서 활동해보지 않아 단순 비교를 할 순 없지만, 인종에 대한 차별이 확실히 없는 편인 것 같습니다. 뉴욕을 기반으로 한 발레단이라 더욱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 같아요. 동양인이라서 뉴욕에서 차별을 받은 경험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발레리노로서 본인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발레단에는 여러 역할이 있습니다. 왕자 역할도 있고 노예 역할도 있는데요. 저는 한 역할에 치중된 이미지라기보다 여러 역할을 두루두루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춤 선이 큰편이고 남성적이어서 주변에서는 제 춤이 시원하다고 평가해주시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점프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자신 있는 동작이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꿈이 발레리노였나요? 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발레리노에게 물어봤을 때 본인이 하고 싶어 시작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저도 제가 발레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이모가 발레 학원을 운영했는데 여동생이 학원에서 수업을 받는 동안 저는 사무실 한 켠에 앉아 티비를 보고 기다리고는 했었거든요. 이모가 ‘그러지 말고 너도 몸이라도 풀어봐’라고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발레를 하면 입어야 하는 타이즈가 입기 싫어서 1년 동안 타이즈를 안 입었던 기억이 나요. 이렇게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발레는 아니었지만 막상 해보니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동시에 발레를 좋아하는 마음을 좀 숨기고 싶어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시 발레 학원에 저 말고 남학생 두 명이 더 있었는데요. 그 친구들이 있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한 발로 서서 회전하는 ‘피루엣’을 하며 서로 경쟁도 하고, 수업 후에도 친구들과 남아 연습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 안주원씨는 어떤 어린이었나요?
말을 잘 안 듣는 말썽꾸러기였어요. 활동적이고 운동하는 걸 좋아해서 엄청 뛰어다녔구요. 노는 게 좋아서 밥도 잘 안 먹을 정도였어요. 고집도 센 성격이었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면 잘 안했어요. 지금도 하기 싫은 건 안하는 성격이에요. 다행히 부모님은 항상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발레를 전공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언제였나요?
한국 예술 종합 학교(한예종)에 무용 전공으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내가 무용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등 학교는 선화 예고를 다녔는데요. 그 때만 해도 무용수가 직업이 될 줄은 몰랐어요. 그냥 좋아서 했었어요. 그런데 대학 입시를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한예종에 들어가면서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무용수가 되겠구나’라고 느꼈어요.
2012년 한국 예술 종합 학교에 입학 후, 2012년 불가리아 바르나 국제 발레 콩쿠르 3위, 2013년 뉴욕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GAP) 시니어 부문 금상을 수상하며 ABT에 입단하셨어요. 이 때가 만 19살 이었죠? 처음 뉴욕에 와서 어땠나요?
한국에서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뉴욕으로 왔어요. 대학생이 되면서 내가 어른이 된 줄 알았는데 막상 뉴욕에 와서 혼자 살아보니 힘든 점이 많았어요. 집을 떠나 생활한 게 처음이었거든요. 밥도 빨래도 안 해봐서 그 과정을 배우는데 오래 걸렸어요. 특히 제일 큰 문제가 밥이었는데요. 요리를 했는데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맛이 없어서 당시에 살이 많이 빠졌어요. 그래도 뉴욕이라는 도시는 참 좋았어요. 거리에 나가면 곳곳에서 공연을 하고 지하철에서 노래를 부르고, 특이한 옷차림에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영화 같아서 ‘이게 진짜 뉴욕이구나’하며 다녔던 것 같아요. 뉴욕은 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는 게 참 좋아요. 저는 옷을 잘 못입는데요. 옷을 막 입고 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뉴욕이 참 좋습니다(웃음).
ABT 발레단은 언제 쉬나요? 쉬는 날은 어떻게 보내세요?
저희 발레단은 일요일과 월요일에 쉬어요. 쉬는 날은 주로 집에 있습니다. 현재 일본인 룸메이트와 함께 지내는데요. 같이 집에서 요리를 해서 먹거나 티비를 보면서 쉬는 편이에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 짐(gym)에 가서 운동도 하고 최근에는 골프도 종종 치면서 보내고 있어요.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호기심에 외식도 자주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거의 집에 있는 걸 좋아해요.
식단 조절, 체중 조절은 어떻게 하시나요?
식단이나 체중 조절을 따로 하지 않아요. 맛있게 먹고 열심히 연습하고 운동도 합니다.
발레리노 안주원의 이상형은?
성격이 털털한 스타일을 좋아해요. 발레리노라는 직업 특성상 여성 무용수와 공연 중 스킨십이 자주 있어요. 제 여자친구는 예전에 무용을 했었는데요. 같은 무용수끼리는 공연 중 스킨십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가끔 키스신도 있는데요. 발레리노들을 대변해서 말씀드리자면, 공연 중 키스신은 정말 너무 힘들다는 생각밖에 안들어요.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텐데요. 가장 열심히 연습했던 때는 언제였나요?
고 3때가 가장 열심히 했던 시기예요.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밤 늦은 새벽까지 연습을 했어요. 나가야 하는 대회도 많아서 순수 하루 무용 시간만 여덟 시간에서 10시간에 달했어요. 그런데 그 때는 무용을 하는 모든 친구들이 그렇게 했어요. 다들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예정된 공연 소식도 전해 주세요.
ABT의 올 여름 시즌 공연이 6월 13일부터 7월 16일까지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립니다. 저는 ‘돈키호테’(6월15일/18일)에서 남자 주인공인 가난한 이발사 바실리오역과 ‘백조의 호수’(7월6일)의 지그프리트 왕자역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입니다. 많이 보러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맘앤아이를 보고 공연에 왔다고 말씀해 주시면 제가 좋은 굿즈(기념품)라도 챙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한 마디 남기신다면.
제가 발레를 하면서 힘들다고 투정도 많이 부렸던 것 같아요. 제가 흔들릴 때마다 부모님께서는 옆에서 묵묵히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어요. 제가 포기하고 싶을 때도 ‘니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고 안되면 다른 길을 찾아보자’고 하셨는데 그래서 제가 더 잘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지금까지 믿고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