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위해 태평양을 건넌 정재은 셰프 이야기
글: 맘앤아이 편집부
뉴욕의 유명 요리 학교인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출신으로 미 주류 사회에서 차세대 Top Chef로 주목받고 있는 정재은 셰프는, 2019년 미국 내 해외 출신 최고 요리사(Nation’s Top Foreign-born Chef)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러 방송과 온라인 매체 등에 초대되었으며, 도미니크 크렌, 마이클 솔로모노프 등과 함께 요리책 ‘A Place At The Table’도 출간하였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심하다 요리사가 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최고의 셰프 정재은, 그녀의 도전을 인터뷰하고자 맨해튼의 KJUN 레스토랑을 찾았다.
Q. 맘앤아이 독자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정재은입니다. 한국에서 2009년 뉴욕으로 요리 유학을 온 이래로 오늘까지 요리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지금은 미드타운 머레이힐에서 작년 9월 오픈한 레스토랑 KJUN(Korean+Cajun)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서울서 번역가로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다 돌연 뉴욕 CIA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려서부터 외국에서의 생활과 외국어에 늘 관심이 있었어요. 그리고 음식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리 배가 부르더라도 새로운 음식을 보면 맛보고 싶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큰 행복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2년 동안 방황을 했었는데, 결국 부모님 뜻에 따라 직장 생활을 2~3년 정도 했어요.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저는 제 꿈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무언가 큰 도전이나 노력을 할 때라 여겨졌습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해서 대학원에 갈까, 선생님이 되어볼까,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생각했는데요. 그 어떤 것도 제 가슴을 뛰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식당 일을 도와드렸는데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인 것만 같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요리를 배울 수 있었지만, 전 세계인이 모여있는 뉴욕으로 가는 도전을 택하고 싶었어요. 그때는 한국이 너무 좁게 느껴졌어요.
Q. 뉴욕 생활이 ‘Sex and The City’에서 본 것과는 달랐다고 표현하셨던데요. 뉴욕에 와서 힘들었던 점도 들려주세요.
뉴욕에 왔던 2009년에 저는 29살이었습니다. 당시 뉴욕엔 아는 사람도 없고, 요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어요. 첫 학비를 스스로 마련해서 납입한 후, 홍콩 경유 JFK 행 비행기 안에 있던 저의 주머니에는 딱 2천 불이 있었습니다. 곧 닥칠 미래가 너무 깜깜했고, 막연하고, 불안해서 비행 내내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학교생활은 나쁘지 않았지만, 식당에 가거나 유흥한 적은 없었어요. 그때는 스타벅스 커피 마시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남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참 부러웠고, 그래서 슬펐던 기억이 있어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스타벅스 커피는 희한하게 잘 안 사게 되네요.
Q. 셰프님한테는 뉴올리언스로의 짧은 여행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들었어요. 케이준 요리와 남부의 전통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평생을 서울서 살았던 저는 맨해튼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어요. 요리를 배우고자 온 것은 맞지만, 더 큰 세상에서 다른 경험을 하기 위해 미국에 왔으니, 어딘가 멋진 곳을 찾아 푹 빠져보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여행으로 간 뉴올리언스에 발을 디뎠을 때 제가 찾던 곳이라고 느꼈어요. 요리도 멋있게 보이려는 가식적인 요리가 아닌, 소박하고 진실한 요리라 느껴져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재즈가 탄생한 도시인 만큼 곳곳에서 언제나 멋진 음악이 흘러나왔고, 사람들도 우리나라의 남도 사람들처럼 구수하고 정이 많았습니다. 음식을 손님에게 내올 때 상다리가 부러질 듯 대접하는 모습도 전라남도의 문화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양념 맛이 강한 것도, 밥 요리가 많은 것도 너무 달랐지만, 제 눈엔 비슷하게 보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깊이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Q. 2011년 미국의 전설적인 셰프 리아 체이스와 함께 일하시게 되었는데요. 그 시간이 셰프님의 요리 철학이 성립된 시기라고 들었습니다.
미국의 많은 대통령이 리아 체이스 셰프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오바마 대통령이 식사하러 오셨는데, 음식 맛도 안보고 소금부터 치는 대통령의 모습에, 맛도 안 보고 소금부터 치느냐며 호통을 치셨을 만큼 요리사로서의 자신감도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뉴올리언스의 전통 요리를 배울 엄청난 기회이기도 했지만, 미국에 살면서 동양인이자 여자인 셰프로 불리는 것에 늘 기가 죽어있었던 게 사실인데, 리아 셰프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셰프로서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Q. 2014년 다시 뉴욕으로 오셨어요. 뉴욕으로 오신 이유와 KJUN을 오픈하기까지의 뉴욕 스토리를 들려주세요.
뉴올리언스는 저에게 두 번째 고향이라 할 만큼 특별한 곳입니다. 요리를 배우고, 요리사로 성장하고, 많은 꿈을 꾸며, 하루를 차곡차곡 빡빡하게 채웠던 기억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뉴올리언스는 너무 작은 도시였고, 음식의 특성이 강한 만큼 다양한 문화나 요리 경험을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또 저 자신이 점점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며, 위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전을 꿈꾸며 미국에 왔는데, 생활에 너무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모습에 위기감을 느꼈어요. ‘뜨거운 맛을 좀 봐야겠다’, ‘혼 좀 나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뉴욕은 모든 분야에서 경쟁이 치열하고 힘든 도시인만큼 변화가 필요한 제게 뉴욕은 새로운 전환점이 될 거라 생각됐습니다. 당시 뉴욕의 요리사라면 거쳐야 할 레스토랑 중 하나가 Rockefeller에 있는 OCEANA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다시 요리사로 시작해서, 시푸드를 마스터하기 위해 그다음 해에는 Le Bernardin에서 2년 넘게 요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팬데믹 이전까지 NoMad Restaurant과 Cafe Boulud에서 부주방장(Sous Chef)으로 근무했습니다. 이후 다가온 팬데믹은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외출 자체가 어려워 일할 곳도 없었습니다. 미래가 막막했던 시기였어요. 뉴올리언스는 제게 특별한 곳이었고 고향처럼 늘 잊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음식도 늘 그리웠어요. 뉴욕으로 돌아온 몇 년은 한국보다 뉴올리언스가 더 그리웠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Korean & Cajun 요리를 조금씩 만들게 되었어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던 시기에, 잠시 변화를 주고 싶어 팝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름과 로고도 제가 만들고, 법인도 세우고, 몇 달 동안 혼자 새벽까지 치킨도 수십 번 튀겨보면서 많은 시간을 혼자 보냈어요. 팝업 오픈도 하기 전에 Eater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고, 팝업은 성공적으로 맨해튼의 Upper East Side, East Village, Lower East Side, West Village 등에서 1년 정도 진행했습니다. 그러던 중 BRAVO TV의 TOP CHEF로부터 제의를 받고 출연하게 되면서, 식당을 오픈해달라는 많은 요구를 받았어요. 그간 팝업을 통해 알게 된 손님들이 직접 장소도 알아봐 주시고, 페인트칠도 같이해주시고, 여러 가지로 주위의 많은 도움을 받아, 작년 9월 KJUN을 오픈할 수 있었습니다.
Q. 뉴올리언스의 음식처럼 뉴욕 음식도 특징이 있을까요?
뉴욕의 음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서울 음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없듯이, 뉴욕만의 음식은 없지만 이곳에서는 전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지요. 이민자들의 도시인 만큼 다양한 음식들이 넘쳐나는 곳이 뉴욕이고, 그것이 뉴욕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Q. 셰프님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아서 요리를 시작하셨잖아요. 지금도 드시는 것이 좋나요? 아니면 요리를 해주시는 것이 좋나요?
요리를 하는 것은 제 창작의 표현이고,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은 제 생활의 기쁨입니다. 요리를 하는 것도, 그리고 먹는 것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합니다.
Q. ‘온라인 한식 요리 특강’도 하셨는데, 한식을 가정에서 맛있게 먹는 비법을 맘앤아이 독자들에게 전수해 주세요.
모든 요리의 성공 여부는 재료의 퀄리티와 기본에 충실하려는 노력에 있다고 생각해요. 요리의 기본은 “간” 즉 seasoning입니다. 요리하시면서, 맛을 자주 보시고, 미각을 단련시키세요.
Q. 정재은 셰프님처럼 요리사가 되기 위해 도전하시는 분들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쉽게 시작해 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야 하고, 또 사랑하는 이들의 생일과 같은 기념일을 챙기기 어려운 직업이거든요. 요리를 취미로 좋아하는 것과 전문직으로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기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일단 시작하시면 멈추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꾸준히 자신의 영역과 재능을 넓히려고 노력하신다면 반드시 성공의 기회는 찾아올 겁니다.
Q. 친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면서 느꼈던 행복감을 이제 KJUN의 손님들을 보며 느끼실 테니, 어쩌면 꿈을 이루셨다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 계획도 궁금합니다.
올해의 계획은 KJUN을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식당으로 자리 잡게 하는 거고요. 다른 계획은 저의 이민 이야기와 그와 관련된 요리를 소개하는 요리책을 내는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맘앤아이 공식 질문입니다. 나에게 요리란?
나에게 요리란 ‘Legacy’입니다, 제 음식을 드신 손님 한 분 한 분이 저에겐 제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