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패션위크를 스무 번 빛낸
‘약속된 승리자(Sure Winner)’,

인터뷰 및 글 이수정 작가 , Storyteller

오페라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끌려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운명처럼패션 만났다. 패션의 본고장 이탈리아, 런던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실무 경험을 쌓았다. 난방이 곳에서 새워 일하다 동상에 걸리기도 했지만 서른 살에 독자적인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겠다는 꿈이 있었기에 가슴은 뜨거웠다. 2010, 뉴욕 패션위크 언론은 유나 양을약속된 승리자(Sure Winner)’ 대서특필했다. 이후로, 들어가기도하늘의 따기라는 뉴욕 패션위크에 20 연속 참가했다. ‘YUNA YANG’ 현재, 할리우드 굴지의 영화사, 세계 최고의 모델, 유명 셀럽들이 다투어 찾는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빛나는 이름을 가능케 유나 양의 스토리다.

유나 양/Yuna Yang  한국에서는 서양화과를 전공했고 이탈리아 밀라노의 명문 ‘인스티튜트 마랑고니(Instituto Marangoni)’에서 디자인 코스를 수학했다. 동양 문화와 서양 미학이 섞인 독특한 디자인으로 밀라노의 럭셔리 브랜드 디자이너 알비에로 마르티니(Alviero Martini)의 눈의 뜨였고 2002년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직접 디자인한 이브닝 드레스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후 런던으로 가 패션 명문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거쳐 실무 경험을 쌓고 유럽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뉴욕에서 ‘YUNA YANG’을 론칭했다. 2010년 FW 시즌, 뉴욕 패션위크에 데뷔했고 2012년, 맨해튼 매거진의 ‘5 라이징 스타 디자이너’, 모제 두바이 매거진의 ‘주목해야 할 5인의 인터내셔널 디자이너’에 선정되었다. 20세기 폭스사를 비롯, 메트갈라, 세계 유수의 백화점들과 다양한 문화협업을 진행하며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천직’이 될 패션을 운명처럼 만나다

서양화과 졸업을 앞두고 아티스트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작업하는 과정은 즐거웠지만 오랜 시간, 홀로 스튜디오에서 고뇌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 자신에게 맞을지 고민되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동경해 왔고 오페라가 좋았기에 밀라노로 어학연수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6개월로 작정한 이 단기 연수가 인생 항로를 완전히 바꿔 놓을 줄은 자신도 몰랐다.

이탈리아어를 배우러 다니던 어학원은 밀라노 중심부, ‘비아 브레라(Via Brera)’ 에 있었다. 매일 그 앞 에스프레소 바에서 늘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당시만 해도 밀라노에 젊은 동양 여성이 흔치 않아 쳐다보는 눈길들이 있었다. 어느 날, 커피를 주문하는데 한 이탈리안 할머니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무심코 ‘아티스트’라고 답했더니 할머니는 자신도 아티스트고 옷을 만든다며 자신의 작업실로 초대했다. 알고 보니, 이태리 명품브랜드, 발렌티노에서 30년 동안 일한 ‘장인’이었다. 태어나 처음, 유나 양의 눈 앞에 환상적인 꾸뛰르 공방이 펼쳐졌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양유나는 한 눈에 매료된 그 세계의 문을 주저 없이 열고 들어섰다.

이탈리아에서 패션 명문이라 손꼽히는 마랑고니에 입학한 것이다. 정규 3년 과정을 1년에 마치는 단기 코스였다. ‘패션’의 ‘패’자도 모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였다. 아직 언어도 불편했다. 그런데 마르첼라 강사가 스케치를 보더니 “‘어머 얘 천재인가 봐.”라고 했다. 그 한 마디가 그녀에게 길이 되어 주었다. 마링고니에서 공부하고 현장에서 일하면서 패션이 무엇인지 배웠다. 아트와 비즈니스의 결합. 파인아트와 달리 동시대의 이슈에 관심을 갖고 그 이슈들을 컬렉션을 통해 소통하는 직업.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기에 ‘협업’이 필수. 촉박한 컬렉션 일정 때문에 몇 년에 걸쳐 긴 호흡으로 작업할 수 있는 파인 아티스트가 부러울 때도 있지만 유나양은 새 시즌을 준비하며 심장 뛰는 자신을 발견한다.’ 패션(passion)’을 안고 뛰어들 천직, ‘패션(fashion)’을 만난 것이다. 

▲ 2013 봄·여름 쇼 유나 양과 협업한 남아공 출신 유명 록 밴드 ‘시빌 트와일라잇’
▼ 2016년 5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기금 마련을 위해 열리는 ‘패션계의 오 스카’라 불리는 ‘메트 갈라(Met Gala)’. 행사에서 양씨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 의 어머니 메이 머스크 의상을 디자인했다.
▲ 유나 양의 패션 브랜드 ‘YUNA YANG’은 할리우드의 수퍼스타들과 유명 셀럽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2017 패션위크 쇼를 마친 후 백스테이지에서 태슬라 창업 주의 어머니이자 특급모델인 메이 머스크와 다샤 플랑코 등 미국 셀러브리티들과)
▲ 유나 양은 늘 창조적 마인드로 심장이 뛰게 하는 컬렉션을 만들어내자는 신조를 갖고 있다. 또, 로컬 장인들과의 협업을 귀한 것이며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지켜내야 한다 고 믿는다.

런던을 거쳐, 드디어 뉴욕에 입성하다

중요한 순간에 늘 좋은 사람들이 정확한 조언을 해 주었다. 열 살 많은 선배 디자이너가 10년 후에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 무엇이냐 물어 ‘나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선배는 독립 브랜드 론칭이 목표라면 공부를 더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 말대로 유나 양은 영국으로 날아가 패션 명문, 세인트 마틴에서 공부하며 일을 병행했다.

세인트 마틴 여성복 코스는 저마다 그 나라에서 전도 유망한 천부적 소질의 디자이너들이 모여 있었다. 학생 신분이지만 서로 ‘디자이너’라고 호칭할 정도로 자부심도 대단했다. 다들 놀라울 정도로 실력이 좋아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었다.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마르첼라의 조언을 생각했다. “항상, 너보다 잘하는 디자이너도 있고 너보다 못하는 디자이너도 있을 거야. 하지만 네가 디자인한 너의 디자인은 세상에 단 하나야.” 그 말을 떠올리면 신기하게도 힘이 솟았다.

졸업 즈음, 여러 도시를 리서치 하던 중 맨하탄 한복판에 가먼트 디스트릭트가 있으니 큰 자금이나 인력이 없더라도 독립 패션 브랜드를 시작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에서 성공한 사람은 어디에서든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왕 도전할 거라면 뉴욕은 ‘터프’해서 더 매력적이었다. 

 

 

▲ ‘YUNA YANG’은 20세기 폭스사, 조지 루커스 필름 같은 할리우드 굴지의 영 화사와 세계 유수의 럭셔리 백화점들과 협업해 브랜드 가치를 키워 나갔다

뉴욕에서는 모든 게 또 새롭게 어려웠다. 일단, 인맥이 전혀 없었다. 오렌지 수트케이스에 샘플을 넣고 공방, 홍보회사, 쇼룸 등을 돌고 바이어들을 찾아 나섰다. 디자인은 좋은데 브랜드 이름이 낯설고 가격도 비싸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당신은 단 한 벌의 옷도 팔지 못할 겁니다.’라는 말도 들었다. 포기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왕 뉴욕까지 왔는데 뉴욕 패션위크에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올인’하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2010년, 뉴욕 패션위크에 참가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데뷔 쇼 이후 ‘패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WWD 표지에 소개되고 ‘약속된 승리자(Sure Winner)’라는 극찬을 들었다. 뉴욕 매거진, 맨하탄 매거진 등에서도 ‘주목 받는 디자이너’로 선정되었다. 그 뒤 10년이 흐르는 동안, ‘YUNA YANG’은 독립 하이엔드 디자이너 브랜드로 뉴욕 패션위크에 매 시즌, 도합 스무 번 참여하는 기록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0년 동안 뉴욕 패션위크에 계속 참여한다는 건 쉽지 않은 과정이었어요. 자본력, 네트워크, 모든 부분이 아쉬웠죠.  다행히 첫 시즌부터 거의 무료로 장소를 대여해 주는 등 후원해주신 분들의 도움으로 지속적으로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 한국에서도 엄현경, 이유리, 박주미, 황신혜 등 유나양의 디자인을 사랑하는 스타들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을 하기에 행복할 수 있다

▲ 밀라노, 런던을 거쳐 2010년, 뉴욕 패션위크에 참가했다. 데뷔 쇼 이후 WWD의 표지에 소개되고 ‘약속된 승리자(Sure Winner)’라는 극찬을 들었다.

‘댄싱 위드 스타’의 줄리안 허, 드라마 ‘비버리힐즈 90210’의 제시카 론지스, 그래미상 수상자인 캐리 언더우드, 전설적인 슈퍼모델 카롤 아트, 브리타니 스노우, ‘가쉽걸’의 브리타니 스노우, 앤 커리, 그리고 카다시안 패밀리. 한국의 황신혜, 김민정, 김혜리, 변정수, 배종옥 같은 수퍼스타들…. 유나 양의 디자인을 사랑하는 스타들은 그 이름을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글로벌 영화사인 20세기폭스 부사장 줄리아 페리도 유나 양을 찾아왔다. “옷을 만들 때 당신은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란 질문에 ‘여성(woman)’이라고 대답했다. 그 직후 폭스 사가 제작한 대작 ‘워터 포 엘리펀트(Water for Elephants)’와 ‘레드 테일스(Red Tales)’의 홍보 의상을 맡았다. 유나 양의 디자인이 이렇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나 양은 늘 창조적인 마인드로 심장이 뛰게 하는 컬렉션을 만들어내자는 신조를 갖고 있다. 또, 로컬 장인들과의 협업을 귀한 것이며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지켜내야 한다고 믿는다.

패션의 메카답게 뉴욕의 패션계는 ‘터프’하다. 하지만 십 여 년을 몸담아 오면서 이 세계에도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배웠다. 일할 때는 강렬하게, 그러나 ‘관계’의 따뜻함을 잊지 않기에 그녀의 디자인에는 그 모든 게 고스란히 스며 있다. ‘YUNA YANG’ 브랜드의 철학도 그런 마음과 깊게 닿아 있다. 사회 이슈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금보다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  그런 유나 양이기에 오늘도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자 고군분투하는 후진들에게 따뜻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패션이 어려운 분야이지만 세상에 어렵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도전하세요.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면 그만두어도 좋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행복한 일을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저 패션이 좋아서 이 일을 하면 제 심장이 뛰고 행복하니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심장이 뛰는 일을 하니 행복하다는 패션 디자이너 유나 양의 미소가 2021년 1월의 새해를 벅차고도 아름답게 밝혀주는 듯하다. ‘약속된 승리자’의 당당하고도 온화한 미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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