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의 틀을 깨는 설치 미술가 고태화

색감과 모양 때문일까? 그녀의 작품은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을 조금씩 넘나들고 있는 느낌을 준다. 어딘가 고통과 행복이 함께 공존할 것 같은 작품은 그 스케일에 놀라고 소재가 가벼운 종이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마치 무중력 공간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관객들과의 은밀한 소통의 다리가 되어준다. 죽는 순간까지도 작업을 놓지 않고 싶다고 말하는 개인 전시 10회 이상의 중견작가, 고태화 작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인터뷰, 글   허세나 에디터

고태화 작가님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고태화 작가입니다. 서울 대학교에서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2000년 메릴랜드 주립 대학에서 판화와 입체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뉴욕 브롱스의 Wave Hill, 브루클린의 BRIC/Media, 워싱턴 등 10회 이상의 개인전을 열었고 2017년 뉴욕 알 재단 현대 미술 공모에서 금상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 Elizabeth Foundation for the Arts, NARS Foundation, Johns Hopkins University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작품을 소개했어요. 최근 2019년 뉴저지 주 정부의 펠로우쉽 작가로 선정되었고 현재 Children’s Museum of Manhattan의 입주작가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서울대 석사를 하실 때부터 판화(Printmaking)를 전공하셨는데요, 판화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 특별한 매력이 있나요?

1993년, 제가 대학교 2학년이었을 때 선택 과목으로 판화를 듣게 되었어요. 그 당시 몇 교수님들이 미국에서 판화를 배우고 오셔서 그에 관한 수업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어요. 회화는 직접적으로 자신을 개입해 회화와 작가 간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교류되고 있어 마치 대중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부담이 있었어요. 판화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여러 과정 안에서 나 자신이 좀 여과되는 느낌이어서 회화보다 더 숨을 쉬게 해주는 매체였어요. 제가 어려서부터 성격이 급하고 꼼꼼하지 못 해 주변의 물건들을 잘 깨 먹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하나의 귀중한 물건을 가지는 것보다 여러 개의 똑같은 것을 갖는 걸 좋아해요. 판화는 같은 이미지를 몇 개라도 찍을 수 있으니 그런 점 또한 저에게는 매력이었고요. 작품을 만드는 일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판화는 노동 집약적이고 과정이 긴 작업이에요. 그래서 완성했을 때 그 뿌듯함이 더하고 과정을 통해 기대하지 않았던 설레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마치 문제를 풀어내는 듯한 성취감이 있는 매력적인 작업이에요.

작가님의 작품은 마치 판화와 설치미술이 공존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네, 방금 제 성격이 꼼꼼치 못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판화는 정말 디테일하고 정확해야 하는 매체예요. 여러 이미지를 같은 위치에 정확하게 맞춰야 하고 색을 섞는 것부터 시간과 약품의 농도조절까지 한 치의 실수가 없어야 예견한 결과가 나오거든요. 종이에는 손가락 자국 하나도 남기면 안 되는 섬세한 작업이에요. 그래서 저는 판화 수업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오죽하면 어느 교수님은 “ 너는 아무래도 판화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라고까지 하셨다니까요. 그래도 저는 판화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손가락 자국이 남거나 망친 부분을 가위로 다 잘라내 버리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제 판화 이미지들이 네모난 종이의 틀을 벗어날 수 있었고 갤러리 벽이 제 바탕화면이 되면서 기둥으로 또 천정으로 뻗어 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작품 밖에서 제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제 작품 “안”으로 초대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작품의 컨셉이 무엇인가요?

제 작품은 반대되는 두 가지가 만나면서 생기는 그 긴장의 경계지점과 몸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요. 예를 들자면 자연/인공, 연약/강인, 흡입/분출.. 이런 것들이요. 우리의 몸은 그런 많은 대조가 갈등하는 경계이고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 사회적, 정치적 관계들이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장소(site)라 할 수 있죠. 이러한 장소들을 상상 안에서 시각적인 어휘들을 가지고겹치고 조합하여 실타래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 저의 설치작업이에요. 문장을 만들 때 여러 단어를 조합하듯 여러 이미지를 전통적인 판화기법으로 제작하여 입체적으로 조합하면서 풍경으로 진화가 돼요. 최근 작업에는 꽃꽂이 형태를 수동적 반복 노동의 기법인 판화 (실크 스크린)을 이용해 honeycomb party ball이라는 종이 공예품의 형태와 결합했어요. 이 상상된 꽃꽂이에 파이프, 시멘트, 플라스틱과 같은 산업적 재료가 더해지면서 유기적인 식물과 인공적인 재료의 충돌이 일어나는 긴장감을 표현했어요. 현재 인간이 침범하여 변형시킨 자연의 구성요소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만든 작품이었죠.  

Photo by Jessica Talos

작업의 영감은 어디서 받으시나요?

작품의 영감은 여러 곳에서 받는데요, 처음은 어렸을 때 한참  개발이 되는 아파트 단지에 살았어요. 그때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된 땅은 비가 오면 늘 물이 고여있었는데 그 웅덩이는 제 상상이 펼쳐지는 놀이터였어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엄마를 방해하지 않으려 늘 방과 후에 나가 그 웅덩이에서 섬을 만들고 나뭇잎 배를 띄우고 벌레들을 잡아 그 배 위에 태우며 상상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어요. 또 아파트 단지 내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풀과 나뭇가지를 모아 작은 집을 만들고 석필로 온갖 그림을 그려 주차장 바닥을 꽉 채우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러한 시간이 설치미술을 하게 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작업의 최초 동기가 된 사건은 바로 9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였는데요, 내 아버지의 병환을 지켜보는 시간 동안 사람의 몸, 그리고 나약함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인간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의 작업을 계속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죠. 또 다른 하나는 유명한 미국 작가 Dr. Seuss의 1971년 책 “Lorex”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좋아해 제 두 딸이 어렸을 때 자주 읽어주었는데요, 그 안의 나무 형태라든지 인공적인 색감 등은 제가 다른 재료들을 쓰게 하는 영감을 주었어요. 

작업의 기간은 보통 얼마나 걸리시는지?

아무래도 제 작업이 노동집약적으로 생겨서 그런지 제작 기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제 작업의 과정은 판화를 찍는 시기, 입체를 만드는 시기, 구성물을 계획하고 조합하는 시기로 나뉘어요. 마치 단어들을 수집하듯 떠오르는 여러 개의 이미지들을 그리고 컴퓨터로 작업을 해서 실크 스크린이나 에칭 등의 판화기법으로 이미지를 찍어내요. 이게 평소에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이에요. 이미지들을 많이 만들어내면 이미지별로 정돈을 해놓아요. 다음 이 이미지들을 모아서 붙이거나 박음질하여 입체물을 만들죠. 전시할 장소가 정해지면 그 장소에 대한 건축 구조 및 공간을 연구하고 제 이미지들과 입체물을 공간에 맞게 조합하는 것이 마지막 과정이에요. 그러다 보니 작업 시간을 정확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아요.

Photo by Ken Goebel
Photo by Ken Goebel

작가님의 작품은 스케일이 큰 설치미술이 많으신데요, 큰 스케일의 작품을 하는 데서 오는 고충이 있으신가요?

전통적인 판화는 종이에 찍기 때문에 종이의 사이즈에 많이 얽매이게 돼요. 큰 스케일의 작업을 하는 이유는 그동안 판화가 가졌던 전통적인 한계를 깨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관객들이 제 작업 안으로 들어와 더 다이내믹한 경험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아직 충분히 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울 때도 많아요. 2000년도에 남편과 같이 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와서 이사를 많이 하면서 제 작업이 무겁고  짐이 되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접어지는 것, 차로 실을 수 있는 작품을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처럼 스케일이 크지만 접으면 트렁크로 들어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게 되었죠. 하지만 작업이 크면 클수록 많은 노동력과 시간 그리고 경제력을 요구하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다 보면 작가의 영역을 벗어나 비지니스와 경영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많이 있어요. 그저 만들고 표현하는 게 좋은 작가인데 갑자기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어야 하는 경우가 저에게 어렵다면 어려운 점이네요.

MAD, Lower East Side Print Shop, Children’s Museum of Man-hattan 등등 많은 입주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하셨는데요, 이것을 통해 얻으신 것이나 기억에 남는게 있나요?

 

입주작가를 이곳에서는 레지던시하고 하는데요, 레지던시는 각 기관이 작가들에게 작업공간을 제공하면서 사회와 소통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에요. 작가들은 그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심사를 받아 지원금을 받고 들어가는데 현재는 Children’s Museum of Manhattan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제공하는 작업실에 아이들이 찾아와 제 작업과정을 관찰하고 질문하고 피드백을 주기도 해요. 생각지도 못한 피드백과 신선한 아이디어는 다음 작품구상에 많이 도움이 돼요. 기억에 남는 레지던시는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Johns Hopkins University의 Evergreen Library and Museum이 기억이 나요. 한 달간 박물관에 머물면서 그 결과물로 Evergreen이라는 정통 있는 건축물의 입구에서부터 3층까지 연결되는 설치작업을 했던  많은걸 배운 시간이었어요. 또한 브롱스에 있는 웨이브 힐이라는 가든에서 했던 설치미술도 잊지 못해요. 그곳에서는 전시를 가졌던 다른 작가들을 연결해주어 또 다른 전시 기회를 마련해주는 등 작가들을 위한 훌륭한 지원이 있었던 곳이에요. 감사한 건 제가 참여한 모든 프로그램이 진심으로 작가들을 배려해 작업을 지속해 나갈 수 있게 했던 곳이었어요.

2017년 한인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유명한 알 제단(AHL Founda-tion)에서 대상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느낌이 어떠셨나요?

어느 직업이나 비슷하겠지만 특히 예술가들은 작업에만 몰두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요. 저 또한 아이들을 키우며 작업을 하고 있고 혼란과 의심, 절망과 갈등의 순간들이 작업마다 함께하는데요, 알 재단의 그랜트나 뉴저지주의 펠로우십은 그런 의심과 갈등에서 다시 작업의 밧줄을 놓지 않게 하는 큰 지지이자 용기가 되어주는 계기였어요. 서포트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좋은 소식을 통해 감사에 보답할 수 있었던 기쁜 순간이기도 했고요. 특히 2017년의 알 재단 대상은 저에게 의미가 깊은데요,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한인 작가들의 수보다 그  그 작가들을 지원하는 예술 재단이 많지 않아 이곳의 수상은 마치 친정 식구들의 응원을 받은 것처럼 많이 기뻤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미래에는 어떤 길을 걷고 있을 것 같으신가요?

작업을 하다 보면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는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요. 그래서 작업을 하면서도 얼른 다음 작업이 하고 싶어질 때가 많지요. 92세로 생을 마감한 작가 Agnes Martin도 마지막 그림을 91세까지 했다고 해요. 그렇게 끊임없이 작업하고 싶은 게 제 꿈이예요. 죽는 순간까지 작업을 놓지 않고 그 작업에 대학 책임감과 열정이 있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요.   

고태화 작가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석사를 마친 후 2000년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판화와 입체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뉴욕과 워싱턴 등 10회 이상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9년 뉴저지주 정부의 펠로우십 작가로 선정되었다. 현재 Children’s Museum of Manhattan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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