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열외 시대 30년 잔근육으로 키운 리더십
파나소닉(Panasonic) 미주 본부 이명원(Megan Myungwon Lee) 부사장
최근 유럽의 한 매체는 새로운 10년(New Era)을 시작하는 2020년 올해가 본격적인 우먼 파워 시대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결코 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두텁고 견고한 남성 상위의 유리 천장에 쉼 없이 도전장을 던지며 지속적으로 균열을 만들어 왔던 여성 리더들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마침내 주어졌다는 의미다. 아마도 여성 리더들의 포기 없는 열정, 그리고 남성과 차별화된 여성 특유의 리더십이 획득한 마땅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4월 맘앤아이가 만난 파나소닉 사 이명원 부사장은 말 그대로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카리스마가 빛나는 여성 리더다. 성차별과 능력에 대한 인색한 평가가 만연한 사회적 시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외려 잔근육과 맷집을 키우는 기회로 삼았다는 그녀는 단아하고 차분한 외형에서도 느껴지듯, 오랜 기간 땅을 일구는 농군(Farmer)의 자세로 30년 자리를 겸손히 지켜 온 뿌리가 단단한 여성 리더다. 그녀의 단정한 말에서 묻어나는 리더로서의 깊은 사유와 삶의 지혜는 결코 짧지 않은 30년 시간의 무게를 그대로 느끼게 해 주었다.
맘앤아이 편집부
Q. 안녕하세요 부사장님, 반갑습니다. 간략히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이명원(Megan Myungwon Lee)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중학교3학년 무렵 일본 주재원으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3년을 살았고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이화여대 생활미술과를 마쳤습니다. 대학 졸업 후, 1987년에 LA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고, 이후 파니소닉에 입사해 지금까지 몸담고 있습니다. 현재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큰아들, 그리고 맨해튼에서 일하는 둘째 아들, 이렇게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구요.
Q. 파나소닉 사에서 꽤 오랫동안 일하신 것 같습니다.
A. 네, 그렇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대로 1987년LA로온 뒤 바로 입사했고, 일본어가 가능했기 때문에 사내 Legal Division의 Bilingual Secretary로 근무했어요. 이후 기획실로 옮겨 5년 정도를 더 일하다가 인사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때부터 저의 Professional Career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다 2001년에 다시 일본 본사로 들어가 4년을 일하고, 2004년부터 미주 본부 부사장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었고, 2012년에 일본 본사 인사부장으로 다시 가서 1년 정도 일하다 회사를 그만뒀었지요. 그런데 2015년에 회사로부터 다시 와 달라는 요청을 받고 현재까지 미주 본부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Q. 대학에서 전공한미술과는 유관한 일을 한다고 보기는 어려운데,미술학도로서의 꿈은 없었는지요?
A. 저는비교적 내성적이고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고, 어릴 적에는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미술을 공부했지만 학교를 졸업하면 당시 시대가 그랬듯이 결혼을 하고 남편을 잘 섬기며 아이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 주는 아주 전형적인 엄마가 되기를 원했지요. 파나소닉 입사 당시 제가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직후였는데, 그때 저를 도와주러 온 친정어머니께서 권유하셨어요. 바람도 쏘일 겸 나가서 파나소닉에 한번 인터뷰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렇게 바람 쐬러 나왔다가 지금까지 쭉 머물러 있네요.(웃음)
Q. 현재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A. 일을 하는 동안 저는 아랫사람을 컨트롤하는 게 힘들었고, 특히 여러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당시 제 보스에게 저의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를 했더니 그분이,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더 나은 위치와 나은 커리어를 쌓기가 어렵다고 조언하더군요. 제가 커리어에 집착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때 아마 제가 제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엄마로서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기회는 다 주고 싶었어요. 물론 자식들을 위해 희생만 하는 엄마가 되자는 건 아니에요. 다만 엄마로서의 마땅한 책임은 어떻게든 다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지니고 살았는데 그것이 일하면서 겪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힘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내가 다른 경우가 많잖아요? 그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가 쉽지 않고요. 제 경우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는 나의 사적인 공간에 두고,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남이 보는 나’에 대한 기대치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 왔던 것 같아요.
Q. 2016년 Tri-State Diversity Council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상(Most powerful and Influential Woman Award)을 수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부사장님 스스로가 생각하는 수상 이유를 든다면요?
A. TSDC 가 파나소닉이 프로모션하는 곳이라 받은 게 아닐까요?(웃음) 상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는데…. 글쎄요, 아시다시피 저는 일본 회사에서 일하는 한인 여성입니다. 제 자신이 이미 마이너리티로서의 여러 요소를 갖고 있고 평소에 이것을 몸소 체험하며 직장 생활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제가 직책이나 업무에 제 능력 밖의 욕심이나 성취를 추구하는 편은 아니지만 제 역량 안에서는 나름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여러 소수 인종이 가진 다양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요, 이러한 마이너리티나 여성 인재들은 미국은 물론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인적 자원이기 때문에 그들을 인정하고 훈련하고 발굴하는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미개발 자원을 가진 것과 같은 아주 생산적인 일이라는 것을 저는 믿거든요. 이런 인적 자원 개발 차원에서 제가 상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사를 담당하는 제 입장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제 업무였다고 생각합니다.
Q. 여성 리더가 사회나 기업체 내에서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요?
A. ‘여성 리더는 이렇고 남성 리더는 이렇다.’는 식의 스테레오타입은 좀 위험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여성 리더가 갖는 퀄리티는 분명히 있지요. 공감 능력, 인내하고 추진하는 은근과 끈기, 섬세한 업무 능력, 또 타인을 보듬어 주는 부드러움 등을 꼽을 수 있겠네요. 동양과 서양의 기업 문화가 다르다고 하잖아요. 흔히, 미국의 경우를 헌터(Hunter)라고 하고 동양은 파머(Farmer)라고 하는데, 여성 리더들은 파머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씨를 뿌리고 때를 기다리며 진중하게 노력하는 태도가 농부의 역할에 비견된다고 할 수 있지요. 여성 리더와 남성 리더의 차이나 다름을 상호간 인정하고 둘의 밸런스를 잘 유지할 때 시너지가 나고, 결국 그것이 기업에 큰 유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Q. 자신의 Career를 쌓아 오는 동안 가장 큰 장애물이 있었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A. 가끔 받는 질문인데요, 장애물이 많지요. 우선 고질적인 성차별이 있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 또한 평가절하되고요. 그런데 저는 그것이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조직 사회 안에서는 남성 리더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거든요. 그렇다 보니 그들은 늘 긴장되어 있고 삶이 더 치열해요. 반면 여성들은 그런 긴장감이 덜하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좀 더 여유롭게 다룰 수 있는 이점이 있어요. 더러 차별을 받다 보면 잔근육도 생기기 때문에 긴 안목을 갖고 성실히 일하면 반드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는 때가 오더라구요. 근본적으로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성이라고 해서 그 능력과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조직이나 기업의 손해니까요
Q. 평소 자기 계발을 위해서 어떤 것들을 하고 계신지요?
A. 제가 현모양처가되는 것이꿈이었다고 말했는데, 근본적인 이유를 잘 생각해 보면 저희 세 자매 중에서-저는 둘째입니다만– 제가 공부를 제일 못했어요. 엄마가 저에 대한 걱정이 많았고 “너는 커서 뭐가 될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지요. 부사장이 되고 나서 저희 회사에서 코치(Personal Coaching)를 받은 적이 있는데, 저의 의식 저변에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물론 제가 졸업한 이화여대에 대한 자랑스러움은 있지만,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성장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생각을 해 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재작년부터 콜롬비아 대학에서 라이프 코칭 과정(Columbia Certified Coaching Program)을 시작해서 이제 다 마쳤어요. 저녁 시간과 주말 강의가 많아 쉽지 않았는데 잘 끝낼 수 있어서 스스로도 대견하게 생각해요.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인데 스스로가 생각하는 콤플렉스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노력해서 극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이 자기 계발에 우선되는 과제일 수도 있거든요.
Q. 뉴왁뮤지엄(Newark Museum)에서 보드멤버로도 활동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A. 일이 많아서 사회활동을 잘하지는 못합니다. 사내 Cooperate Social Responsible에서 커뮤니티 여러 기관에보드 멤버로 활동하도록 추천을 하는데 저도 그 추천을 통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아마 제가 미술을 전공한 점을 고려했던 것 같아요.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 이기적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든 작든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귀한 일이고요. 기회가 된다면 무엇이든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두 아이를 키운 것인데요, 제게는 선물과도 같은 아이들이라 뭐든 다 해 주고 싶지만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까 그 마음을 멈춰야 할 때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저희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있다면 돕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Q. 일 외에 즐기는 취미생활이나 평소 여가는어떻게 보내고 계신지요?
A. 집에서 주로 그림을 그려요,한국드라마를 보면서.(웃음) 그림은 특별한 목적을 갖고 그린다기보다 스스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아요.
Q. 사회나 직장에서 리더를 꿈꾸는 젊은여성들에게, 또 맘앤아이 독자들에게격려와 조언을 나누어 주신다면요?
A. 저는 일본에서도 마이너리티였고지금도 그런 입장이라 제가 마이너리티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그점을 꼭 나쁘게, 혹은 불리한 의미로만 받아들이지는 않기를 바라요. 너무 외면적인 틀에 갇히지 말고 스스로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의식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의식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단단한 자아, 건강한 나를 갖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자신과 친밀하게 지내기를 권하고 싶어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제 자신과 자주 대화를 해요. “오늘 힘들었지? 수고했어!”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제 어깨를 툭툭 치면서 “고생했지? 애썼어!” 이렇게 위로하면서 자기 자신을 존중할 때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건강한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사랑하되, 스포일시키지 않도록 절제하며, 여성이기 이전에,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격체로서 건강하게 당당해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