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앤드류 임 극작가, 연극연출가
지난호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쿨 오브 롹(School of Rock)’을 볼만한 공연으로 추천해 드린 바 있다. 연극만이 가질 수 있는 재미를 듬뿍 선사한 좋은 예로서 말이다. 이번호에서는 다소 다른 추천을 해드리려 한다. 연극(뮤지컬)의-메세지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재미만을 만끽할 자신이 있다면 분명 볼만한 뮤지컬이 될 것을 확신하는 작품인데, 그것은 바로 ‘킨키 부츠(Kinky Boots)’다. 아시다시피 킨키(kinky)라는 단어는 본래 ‘잘 꼬이는’ 또는 ‘배배 꼬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보다 더 뒤틀려서 ‘변태적’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여지는 표현이 바로 이 kinky라는 영어 단어다. 그렇다고 킨키 부츠를 ‘변태 부츠’라고 하면 곤란하다. 뭔가 저속한 뉘앙스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킨키 부츠라는 말은 무릎까지 덮이는 긴 스타일의 여자 부츠를 의미하는 고유명사화된 말이다. 영화 ‘프리티 우먼(Pretty Woman)’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줄리아 로버츠가 신었던 그 부츠 스타일을 연상하시면 되겠다.
유래가 어떻든 또 부츠 스타일이 어떻든 킨키라는 단어가 주는 선정적인 뉘앙스는 굳이 다르게 포장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 뉘앙스처럼 뮤지컬 ‘킨키 부츠’ 역시 점잖은 관객들이 보기에는 선정적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늘씬한 여자배우들이 그야말로 비키니보다 더 신체를 노출시키는 야한 차림으로 노래하고 춤 추는데, 관능적인 이 배우들은 아름답다기 보다 선정적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무래도 더 적당할 듯하다. 주변에 앉은 남자 관객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숨을 멈추고 쳐다보는게 느껴질 정도다. 고상하게 뮤지컬 감상하면서 야한 차림의 여배우들의 관능적인 몸매와 각선미까지 대놓고 구경하시려면 이 공연을 보라. 다만 한가지는 미리 말씀 드린다. 이 늘씬한 여배우들은 ‘여장 남자’들이다.
뮤지컬 ‘킨키 부츠’의 플롯은 대략 이러하다. 찰리라는 인물이 아버지에게서 ‘프라이스 앤 선’ 신발 회사를 물려 받는다. 한때 큰 규모의 제화사였던 ‘프라이스 앤 선’은 오랜 세월 정통 신사화만 만드는 전통을 고집하며 유행이나 새로운 스타일을 거부하는데, 이 때문에 점차 판매가 줄고 끝내 자금난에까지 처하게 된다. 직원들을 하나둘씩 해고 하던 찰리는 로렌이라는 직원에게서 신사화만을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해야 한다는 충고를 듣는다. 로렌을 통해 로라를 만나 디자이너 직을 제안하면서 찰리는 여장 남자를 위한 부츠, 즉 킨키 부츠를 만들게 된다. 이후 로라와의 갈등, 헤어짐과 만남 등의 줄거리는 생략한다. 본 칼럼이 말하려는 바는 이 정도의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명쾌하다 못해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고정관념과편견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이다. 지극히 건강하고 발전적이며 건설적이다. 망해가면서도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외면한 채 전통적인 디자인의 신사화에만 매달리던 한 회사가 파격 그 이상의 시도로 여장 남자들을 위한 부츠를 만들면서 돌파구를 찾는 플롯의 전개는 이미 노골적으로 그 메세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작가는그 고정관념과 편견의 파괴 범위를 동성애의 문제로까지 매우 성공적으로 넓혀놓고 있다. 아니 편견과 고정관념의 상징으로 동성애자를 내세우고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시대의 흐름과 요구를 외면하고 전통과 고정관념만을 고집하며 ‘신사화’에만 집착하면 안되듯이 인간의 성정체성(gender) 또한 새롭게 인식되어야 한다는 웅변으로까지 보인다.
‘킨키 부츠’는 이같은 웅변에 가까운 메세지를 때로는 선정적으로 때로는 불편하리 만치 강렬하게 그러나 논리적이고 충분한 설득력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동성애에 대해 반대하거나 심지어는 혐오마저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킨키 부츠’의 설득력은 압도적이다. 로라가 찰리와 결별했다가 밀라노 패션 쇼에 구원자처럼 등장해, 킨키 부츠를 신은 채 화려한 춤을 선보이는 장면에서 평소 동성애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관객들조차도 압도 당했을 것이라 감히 예상한다. 필자도 그 중 하나였기에 하는 말이다.
연극이 갖는 선동적인 위력을 십분 활용해 동성애에 대한 편견에 대해 강렬하고 격렬하게 웅변한 뮤지컬 ‘킨키 부츠’. 작가가 말하고자는 하는 바가 이론의 여지가 있고 보편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있어도, 연극이 이처럼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예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해주는 작품이다.
자 이제, 동성애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연극만이 갖는 재미만을 만끽할 자신이 있으시다면, 반대자도 내 편으로 만들고 끝낼 만큼 강렬한 뮤지컬 ‘킨키 부츠’를 권하는 바이다.
앤드류 임(Andrew Lim)
극작가, 연극연출가, 평론가, 자유기고가극단 MAT 상임연출
중앙대학교와 동대학원 연극학과뉴욕대학교 대학원 극작 및 연극연출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