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지원 미술치료사
팬데믹이 시작되고 난 후 작년 6월부터 맘앤아이에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 한 지 벌써 일 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자가격리로 인해 엄마들이 겪을 어 려움을 나누고 위로하고자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그동안 교육, 예술, 상 담, 사회적 이슈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넘나들며 엄마로서의 나의 위치를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글쓰기 훈련을 했던 것 같다. 일 년이면 많은 것들이 달라져있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작년 이맘때 즈음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물론 학교로 돌아가는 아이들도 많아지고 백신을 맞는 사람들이 늘 어나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조심스럽고 제약이 있는 분위기 임 을 부인할 수 없다.
그동안 미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엄마들의 삶은 어땠을까? 고백하 건대, 팬데믹의 시작에서 바짝 긴장하고 ‘주변에 고립되어 어려운 이웃은 없을까’ 살피고 연대하고자 했던 마음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무료하고 답답 한 마음으로 변해갔던 것이 사실이다. 주변을 살피고자 했던 여유는 당장 하루 세 끼를 차리고, 첫째, 리모트 스쿨 적응을 돕고, 재택근무를 하는 아 빠의 서재로 도망가는 둘째 아이를 잡아 끌어내고 짬 내어 나의 업무를 처 리하느라 증발해 버리곤 했다. 식구들이 모두 집에 있는데 빨랫감은 왜 그 렇게 금방 쌓이고 장을 평소보다 훨씬 많이 보는데 먹을 것은 그렇게 금방 바닥이 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잠깐의 여유를 갖고자 둘째에게 패 드를 쥐여주고 나서 이내 가슴을 파고드는 근거 없는 죄책감에 나 자신을 유난히도 들들 볶았다. 요가라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하면 둘째가 달려와 다리를 잡아끌고 아이들 재우고 독서라도 하려고 하면 이내 눈꺼풀 이 내려앉았다. 야무지게 살림을 한 것도 아니고, 아이들의 교육을 신경 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계발에 올인하지도 못했으니 나의 일 년이 어딘 가에 저당잡힌 기분이 드는 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최근 뉴스에 미라클 모닝 이야기가 나왔다. 힘든 상황일수록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고 그것을 기록하고 sns에 포스팅을 하 는 현상에 대한 보도였다. 사람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을 하고, 글을 쓰 고, 독서를 하고, 공부를 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고 나서 하 루를 시작하면 나중에 조금 시간을 낭비하거나 꾸물거려도 아침에 디파짓 해놓은 성취감과 만족감이 자괴감을 막아준다는 내용이었다. 뉴스를 들여 다보고 있자니 부러움과 함께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동시에 ‘저 사 람들은 어디서 저런 의지가 나올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뉴스 보 도를 보고 있자니 이건 엄마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물론 미라클 모닝과 버 금가는 철저한 시간관리를 통한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는 멋진 엄마들이 있 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다행히도 뉴스는 그런 엄마들을 인터뷰하지 않았다.
세상이 슈퍼우먼이란 신화를 만들고 엄마의 위치에서 무엇 하나 놓치지 않 는 야무짐을 찬양할 때, 대부분의 엄마들은 동기부여 두 스푼에 나머지 팔 할을 자괴감으로 채운다는 것을 뉴스가 모를 리 없다. 내 시간을 갖기 위해 최대한 집안일을 잘 끝내고 재택이 끝난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서재로 숨어드는 그 순간조차도 엄마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껴야 한다.

부부가 모두 풀타임 잡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의식주와 아이들 학교에 대 한 모든 플래닝과 실질적인 관리는 언제나 여자에게 더 많은 책임으로 넘 어오는 것이 아직도 바뀌지 않은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전업 엄마들의 직 장은 집이다. 일이 끝나도 하루에 피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장소가 그들에 게는 없는 것만 같다.
지난 일 년 동안 이것을 철저하게 깨달았다. 스튜디오를 닫고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일 마치고 돌아오면 그렇게 반갑고 사랑스럽던 아이들도, 편 안하게 느껴지던 집도 매일의 고단함이 사라지지 않는 전쟁터가 되어버렸 다. 챙겨야 할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많은 엄마일수록 팬데믹은 치명적이 었으리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위로하고 응원했었어야 했다’ 고 나의 무기력함을 자책할 수가 없다.. 나 역시 전쟁터에서 가까스로 버티 고 있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같은 엄마들 을 위로하고 응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성찰해 보기도 한다.
이 글을 끝으로 우리 가족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게 되었다. 내가 운 영했던 Hope and Art Studio는 여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그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위한 정서적 지원 공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 난 몇 년간 그곳을 통해 나에게 ‘엄마라는 위치에서 견디고, 애쓰고, 미워하 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했던’ 많은 엄마들에게 이 글을 빌려 감사함 과 존경을 전하고 싶다. 행여나 나의 어쭙잖은 ‘전문성’으로 인해 내가 미라 클 모닝뉴스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느낀 분들이 계시다면 그분들에게도 심 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모성애와 슈퍼우먼의 신화는 없다. 우리는 모 두 저마다의 상황과 능력 안에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부디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돌보며 내가 지워지는 시간 을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조금 더 엄마에게 관대하고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돌봄의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귀찮고 버겁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내 가 뭉개지는 어둠의 시간 속에서 타인의 느린 걸음 또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돌봄의 시간, 나를 지워가는 시간, 그 침잠의 시간 속에서 우린 이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 – [엄마 되기의 민낯] 신나리 작가

•미술치료 석사 과정 졸업
• Chicago Children’s Advocacy Center 성폭행 피해 아동 치료
• 한국 GS Caltex Social Contribution Project와 서울문화재단 미술치료사
• 뉴저지 Center for Great Expectation 약물중독 엄마 치유
• 뉴저지 Hope and Art Studio 미술치료 스튜디오 설립
• 이중문화권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만들기와 상담 프로그램들을 진행 중 <마이 아메리칸 차일드> 팟캐스트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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