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쥔 것을 놓아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터뷰 및 글 이수정_작가/스토리 큐레이터 사진 Serendipity Snap
하나의 도시락에서 시작되었다. 아이들 소풍 가는 날, 일하는 엄마들의 손을 덜어주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작고 예쁜 도시락은 곧 대기업에 납품되는 단체 도시락으로 커졌다. 서울 압구정동에 ‘파티드라마’라는 브랜드를 내걸게 되었다. ‘맛있는 수제 도시락’, ‘성공한 엄마 CEO’ 등으로 언론에 소개되면서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노하우를 전수받고자 찾아왔다. 그런데 성공으로 가까워질수록 아쉬움을 커졌다. ‘배움’으로만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아 손에 쥔 명성과 성공을 뒤로 하고 뉴욕으로 왔다. 더 큰 것을 쥘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다만, 노력하면 새로운 것을 얻으리라는 믿음은 있었다. 그 믿음으로 CIA의 혹독한 과정을 마치고, 뉴욕에 파티캐더링 전문 브랜드, ‘파티드라마’를 런칭했다. 파티드라마 오너세프, 김지연씨의 스토리다.
김지연/Esther Kim
한국에서 뉴욕으로 진출한 파티캐더링 전문 브랜드, 파티드라마 오너 쉐프. 취미로 만들기 시작한 도시락이 입소문을 타면서 2014년, 한국에서 도시락 및 수제청 제조업체인 ‘파티드라마’를 설립했다. KBS 교양 프로그램에 ‘엄마는 CEO’, ‘수제 도시락 샌드위치 맛집’등의 타이틀로 출연하고 다수의 매체에 ‘성공 기업인’으로 소개되었다.2017년, 뉴욕으로 유학을 와서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Culinary Art)에 입학, 장 조지 레스토랑에서 엑스턴십을 거쳤다. 2020년, 뉴욕에 파티 캐더링 전문 브랜드 ‘파티드라마’를 오픈하고 업스케일 파티 음식과 직접 만든 수제청 및 수제소스를 소개하고 있다. 현재,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함께 뉴욕 퀸즈에서 살고 있다.
어려서는 그림 그리는 게 마냥 좋았다.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그림으로 살아나니 좋았고, 그림을 그리면 선생님들께 칭찬을 들어 또 좋았다. 출전하는 미술대회마다 큰 상을 받았다. 중학교에 올라갈 즈음 담임 선생님이 예술 중학교에 지원해 보길 권하셨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않아 미술학원은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기에, 시험장에 가서 석고상을 처음 보았다. 수 십 자루의 붓을 들고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 틈에서 달랑 붓 한 자루로 입시 시험을 치렀다. 예상했듯, 시험에 떨어졌다. 하지만 ‘실패’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입시 실기시험 낙방이 꼭 미적 재능이 없다고 단정하는 게 아님을, 어려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세상이 미처 알아봐 주지 않아도, 스스로 믿어주는 재능-. ‘파티드라마(Party Drama)’란 파티 캐터링 브랜드로 뉴욕에 입성한 김지연 세프의 커리어는 바로 그런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그 믿음은 자신감의 근간이 되어 주었고, 어떤 난관 앞에서든 무릎 꿇지 않게 해 주었다. 지금껏 꿋꿋이 지켜온 이 삶의 자세는 어쩌면 어머니에게서 왔는지도 모른다. 키가 작은 어머니는 두 딸의 키만큼은 크게 키우고 싶어하셨다. 키 크는 음식이라면 뭐든 구해 먹여 주셨다. 라면을 몰래 사골 국물에 끓여 철 모르는 딸들의 투정을 듣기도 하셨다.어머니는 ‘노력하면’ 키도 크게 할 수 있다고 믿는 분이셨고 그 믿음 덕분에 딸을 평균 키를 한참 웃도는 170 센티미터까지 자라게 해 주셨다.
▲ 뉴욕에 입성한 파티드라마는 파티 캐터링과 ‘앳 홈(At Home)’ 패키지로 업스케일 파티음식과 프리미엄 요리를 제공한다.
▲ CIA 에서 ‘배움’의 경험을 채운 지금은 자신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셰프복을 당당하게 입을 수 있게 됬다.
◀ 김지연 세프는 요리할 때는 모든 과정에 마음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그 마음 그대로,업스케일 파티음식과 프리미엄 요리를 제공하는 ‘파티드라마’를 뉴욕에 실어왔다.
키를 자라게 해 주는 것 외에도 어머니의 요리는 특별했다. 어머니는 오븐이 없어도,당시 흔치 않던 피자를 프라이팬에 맛나게 구워주셨고,손이 많이 가 여느 집에서는 엄두 못 낼 한과를 간식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집을 나설 때면 늘 도시락을 손에 쥐어 주셨다. 친구의 어머니가 병환으로 입원했을 때 친구의 점심을 염려하며 어머니는 도시락을 하나 더 챙겨주셨다. “힘들 때는 엄마 밥이 최고지. 지금, 친구 마음이 얼마나 힘들겠니?” 당신도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 있으면서, 점심을 굶게 생긴 딸의 친구를 위해 정성껏 도시락을 싸던 어머니의 손끝을, 김지연 세프는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브랜드가 된 소풍 도시락, 파티드라마
어머니의 도시락은 아쉬운 게 많았던 어린 시절, 예민한 사춘기 시절을 힘들지 않게 지나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김지연 세프는 유난히 도시락 싸는 게 좋았다. 결혼해 주부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평소 만들어 먹는 음식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주변인들이 보고서 아이 도시락, 가족 모임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냐고 청해 왔다. 요리하는 일을 비즈니스로 생각해 본 적 없기에 망설였다. 그런데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 소풍 가는날, 죄인이 된다는 말을 듣고 결심이 섰다. 장사나 사업이란 게 만만하지 않으리란 각오도 챙겼다. 그래서 음식 만들 재료와 도구들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를 재우고 밤 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노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형 시장이 그나마 집에서 가까워 고마울 따름이었다. 남편과 아이가 잠든 밤에는 행여 깰까 발꿈치를 들고 도시락을 쌌다 .
도시락은 이내 맛있다고 입소문을 탔다. 적은 자본으로 시작했기에 9평 작은 카페에서 휴대버너를 놓고 요리하다 주문이 폭주하면서 용기를 냈다. 압구정동에 ‘파티드라마’ 매장을 오픈했다. 방송으로도 소개되었고 파티드라마의 수제 도시락 창업 강좌를 듣기 위해 전국에서, 국외에서 수강생들이 물밀듯이 찾아왔다. ‘요리’를 다루는 만큼,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대형 강좌는 내키지 않아 인원 수를 제한했다. 그러자 수강생들은 몇 달 앞서 수업료를 내기까지 하며 기다려 주었다. 뿌듯한 만큼 책임감과 사명감은 커졌다.
그와 함께, 가르치는 사람이 되면서 생각지 않게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커져갔다. 600여명의 웨딩 캐더링을 진행하다가 결정적인 깨달음을 만났다. 30년 경력을 앞세운 외부 뷔페팀을 고용해 한식을 맡겼다. 오랜 경력에 걸맞는 고액의 보수를 지불했지만 배울 점이 없었다. 600명이 먹을 음식이라도 단 한 명을 위한 음식처럼, 맛있고 보기 좋게 만들 수는 없을까? 머릿속에 넘쳐나는 질문은 더 많아졌다. 그러나 그 질문에 답을 해 줄 ‘스승’이 없었다. 스승을 만나기 위해 ‘CIA’를 선택할 때 망설임은 없었다.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란 명성도 있었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딸에게 뉴욕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 동안 쌓은 명성과 성공을 미련 없이 뒤로하고 2017년,공부를 시작하기엔 ‘적지 않다’하는 37세 나이에 뉴욕 행 비행기에 올랐다
요리학교의 하버드, CIA에서 배우고 채우다
많게는 열 다섯 살 차이 나는 어린 학생들 틈에서 나이 많은 게 죄인처럼 느껴져 땅만 보고 다녔다. 새벽 여섯 시면 시작되는 키친 수업. 숨통을 조이는 긴장감 속에서 온종일 선 채로 수업을 듣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된 몸으로 밤 새워 에세이를 쓰고 공부를 했다. 젊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공부하고 애환도 나누는 가운데서 오롯이 혼자 모든 걸 헤쳐가야 했다. 3주 주기로 퀴진이 바뀌면서 강사들도 바뀌는 바람에 저마다의 스타일과 액센트를 익혀야 했다. 새로운 강사, 학생들에게 자기 소개를 할 기회가 잦았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보다,이제껏 잊고 있던 ‘나’를 발견했고, 그것을 찾는 일이 때로는 더 힘들었다.CIA에서 1학년을 마치고 엑스턴십을 맨해튼, 장 조지의 ABC 키친에서 했다. 주말이면 1,000 접시의 음식을 만들어내야 할 만큼 바쁜 곳이라 요리하는 사람들은 기피 레스토랑 1호인 곳이다. 하지만 뉴요커들이 좋아하는 브런치 메뉴나 캐주얼 다이닝이 궁금했던 김지연 세프는 일말의 주저 없이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CIA에서 연회 음식을 배우는 시간에 요리대회가 열렸다. 요리 잘하는 학생 세 명을 추려 음식을 만들게 한 뒤 각국의 학생들이 시식해서 순위를 정하는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검은 콩과 구운 마늘을 갈아 넣은 블랙빈 스프로 당당히 일등을 했다. 세계 각국의 요리하는 학생들에게 ‘맛’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보석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 아시안 퀴진 수업 때는 강사 세프가 김치며 한국 음식 시연을 맡겨왔다. 김치를 담그고 김밥 마는 걸 보여주자 모두들 신기해하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한국 음식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CIA의 ‘스승’ 세프들에게서 평소 품었던 질문들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If you have any culinary questions, I’ve got an answer!”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감격을 주체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일말의 경계나 주저함 없이, ‘요리’만 보고, 아낌없이 가진 걸 나누어주는 그들에게서 배우고 채울 수 있었다.
▶김지연 세프는 한국, 뉴욕을 거쳐 전미에 파티드라마의 간판을 거는 꿈을 갖고 있다. 꿈꾸고 도전하고 노력하는 파티드라마를 통해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이루고 싶어서다.
진일보한 파티드라마, 뉴욕에 입성하다
CIA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뉴욕에 ‘파티드라마’를 런칭했다. 서울과 하남에 수제청 제조공장을 갖고 있는 수제 도시락 및 케터링 브랜드가 ‘미식의 도시’ 뉴욕에 또 다른 뿌리를 내리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대기업 도시락 대량 출고를 전문으로 했지만 뉴욕에서는 조금 다르게 시작했다. 파티 캐터링과 ‘앳 홈(At Home)’ 패키지로 업스케일 파티음식과 프리미엄 요리를 제공한다. 세컨드 브랜드인 ‘프래쉬 파티(Fresh Party)’를 통해 과일 수제청과 수제 소스도 판매하고 있다. 많은 면에서 예전의 파티 드라마에서 진일보했다. 소셜 미디어로 지켜보던 사람들의 구매문의가 이어졌고 재구매율도 60%를 넘는 등, 시작부터 청신호다 .식자재가 가진 고유한 색만큼 아름다운 컬러가 없다고 생각하는 김지연 세프에게 파티 음식은 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나가는 예술 작품이다.
그만큼 파티드라마의 요리는 눈으로 우선 맛보는 즐거움이 있다. 맛도 훌륭하지만 그만큼 아름답다. 파티드라마의 음식을 앞에 둔 사람들은 환호한다. 사진을 찍어 공유하기에 바쁘다. 그런 이들의 모습을 보며 김지연 세프는 예전과 다른 행복을 느낀다. 손에 쥔 것을 미련 없이 놓기로 했던 선택에 감사한다. 요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는 세프복을 입는 것조차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부족한 점, 아쉬운 점을 겸허히 인정하고, 배우고 채우려 땀 흘렸기에 누구보다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다.
“한국, 뉴욕을 넘어 전미에 걸쳐 파티드라마의 간판을 걸고 싶습니다.단순히 사업 확장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파티드라마는 ‘김지연’이라는 삶의 드라마를 펼쳐가는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제 꿈과 도전을 그려나가는 캔버스이기 때문입니다. 꿈꾸고 도전하고 노력하는 파티드라마를 통해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이루고 싶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꿈을 이루어냈다면, 저보다 나은 여러분은 못 이루어 낼 것이 없습니다. 인정하고 믿고 애쓰고 실행한다면 말입니다. 두려우면 고민하기보다 노력하고 실행하기-. 저, 김지연과 파티드라마의 철학입니다.”
손맛 좋은 한 주부가 밤 시장 아르바이트로 번 50만원으로 시작한 도시락 사업-. 그 ‘도시락’은 이제, 뉴욕을 시작으로, 전미 브랜드, 글로벌 브랜드를 품고 가는 꿈의 토대가 되었다. 두려우면 고민하기보다 노력하고 실행한 김지연 세프의 파티드라마-. 그 꿈과 열정의 드라마는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