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wing up in Concrete Forest]
초등학생이 된 후 첫 봄 방학. 팬더믹이 종료된 건 아니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코비드와 함께하는 뉴노멀을 살아가고 있다. 팬더믹 상태에서 킨더를 시작하여 반년은 완벽히 원격 수업으로 집에서 모니터 보면서 친구들 얼굴을 익히고, 반년은 주 2회 수업, 그러다 코비드 양성이라도 나왔다 하면 바로 올스톱. 그렇게 간만 보듯 킨더 학년을 보낸 후, 일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주 5일 수업을 가고, 필드 트립도 가고, 마스크도 선택 사항으로 바뀌면서 친구들 얼굴도 익히게 되고, 어느 정도는 정상적인 초등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어영부영 2년의 유년기를 빼앗긴 딸과 떠나는 첫 봄 방학 여행으로 어디가 좋을까? 아직 일학년인데 물놀이를 가는 게 역시 최선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역사와 위인에 관심이 많은 딸을 믿고 프랑스 여행을 계획했다.
글 심지아
20년도 더 전에 배낭여행(그 시절 X세대 대학생의 로망 두 가지, 자가용 그리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하루에 20불 정도 하는 한인 민박에 머물면 한 방에 벙크 베드 몇 개가 있는데 남자방 여자방식으로 나뉘는 식이었다. 숙박비에 포함된 아침은 보통 한식이 나왔고, 점심 샌드위치를 싸주는 곳도 많았다.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은 이렇게 저렴하게 여행하고, 저녁에는 맥주 같은 걸 사들고 와서 민박집에 비치된 라면을 끓여 먹고 지난 여행 이야기들을 나누며 정보를 교환했다. 나는 여행을 혼자 떠났었기에 민박집에서 만난 친구들이랑 한 번씩은 음식점을 예약해서 가보기도 하고, 혼자 걷는게 좀 무서운 밤거리 산책을 함께 나서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돌아다녔다. 가장 좋아했던 여행지는 파리였는데, 밤바람을 맞으면서 유람선도 타보기도 하고, 센 강변에 앉아 바게트, 치즈랑 와인을 마시는 프랑스 청년들 사이에 쓱 끼어 앉아 그들처럼 분위기를 내기도 했다. 퐁피두 센터 앞 기울어진 돌바닥에 가방을 베개 삼아 눈 감고 하늘 구경도 하고, 몽마르트를 걸어내려오는 길에 만나는 왁자지껄한 석양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파리는 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가 됐고, 종종 혼자서 여행 혹은 출장 갈 기회가 많았었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랑 함께 가는 파리라니… 정말 괜찮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10일의 일정 중 4일은 파리 외곽을 돌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수동 방식으로 운전할 줄 아는 남편 덕에 렌터카를 저렴하게 예약했다. 유럽은 자동 변속 렌터카가 잘 없고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다.
파리 여행은 둘로 나누어 첫 2박은 1구에 잡았다. 오페라-뱅돔 지역은 파리 여행을 갈 때 가장 선호하는 숙소 지역인데, 비록 너무 ‘여행객 동네’ 같은 면이 없지 않으나, 그만큼 모든 랜드마크가 가깝고 편리하며, 치안도 좋은 편이다. 이틀간 느슨히 1구를 돌아보며 딸이 너무 사고 싶어했던 과일 맛 봉봉-캔디도 잔뜩 사고, 팔레 루얄에 가서 앉아있기도 하고, 백화점도 한 바퀴 휘리릭 돌아보기도 하였다.
짐을 한번 정리해서 북역에 렌터카를 픽업하러 갔다. 차를 빌려 나오는데 수동을 오랜만에 운전하는 남편도 긴장 상태고, 두 손으로 운전하느라 커피도 못 마시는 남편 조수 노릇을 해야하는 나도 바빴다. 노란색으로 뒤덮인 유채꽃밭을 여러 번 지나 첫 목적지인 지베르니에 도착했다. 담벼락에 두 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기다린 결과, 겨우 모네의 정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니 또 모네의 집에 들어가기 위한 긴 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네를 사랑하고 궁금해하는지 새삼 놀라웠다. 노란색으로 꾸며진 다이닝 룸, 파란색 부엌, 분홍색 외벽과 풀색의 문과 창틀들이 장난감 집처럼 예뻤다. 연꽃 호수 쪽으로 가는 길에 딸이 묻는다. “엄마, 모네는 이 집을 사려고 돈을 얼마나 모은 거야??” “모네 그림 하나면 뉴욕에 우리가 사는 집 건물 전체를 살 수도 있어.” “그림 하나가 그렇게 비싸다고?!!!” “그럼. 좋은 아트는 사람들한테 영감도 주고, 휴식도 주고, 위로도 건네고 많은 것들을 해주니까. 돈을 아주 많이 주더라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지.”
뉴욕보다 한발 빠르게 봄이 왔는지 벌써 민들레 꽃씨가 날리고 있었다. 지베르니 구경을 마치고 숙소를 예약해둔 루앙으로 갔다. 루앙 호텔은 원래 성곽이었던 곳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듯, 속은 모던하고 좋아서 우리 가족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다. 호텔에서 조금만 걸으면 시계탑과 루앙 성당이 나온다고 해서 저녁 식사 후 수영을 한 판하고(일곱 살과 여행하려면 수영장 있는 호텔은 필수다) 밤길을 걸어 루앙 성당에 가보았다. 해가 들면 시시각각 다른 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모네가 루앙 성당을 많이 그려 유명해진 곳이다. 루앙은 ‘백년 전쟁’의 가장 주요 거점 도시기도 했고 프랑스 영웅 잔 다르크가 마녀로 몰려 화형 당한 곳이기도 하다. 여성 리더에게 관심이 많은 딸이 가장 좋아하는 위인 중 한 명이 잔 다르크여서 잔 다르크 성당에도 다녀왔다. 성당 안에 잔 다르크 이야기를 꼼꼼히 읽고 마녀 재판에 관해 물어보는 딸에게 중세 시기 마녀 사냥에 관해 얘기해 주었더니 곰곰이 생각한 듯 딸이 물었다. “남자들도 그런 일을 겪었어? 아니면 여자만 겪은 거야?” “마녀사냥은 여자만 당했어.” “왜???” “예전에는 여자가 너무 튀거나 남다르면 그런 일을 당했어. 근데 사람들이 잘못된 일인 걸 알고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해서 이제는 그런 일은 전에 비해 없지. 하진이가 어른이 될 때쯤에는 그런 일이 아주 하나도 없으면 더 좋겠다.”
딸이랑 여행하면서 이런 대화가 가능해질 정도로 다 키웠구나. 그런 감동의 쓰나미 속에 오전 수영을 한 번 더 하고, 다시 수동 변속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떠났다.
도빌(Deauville) 수산 시장에 들려 이즈니 굴과 수산물을 잔뜩 시켜서 점심으로 먹고 해안 길을 따라가니 얼굴이 까만 양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장면이 펼쳐지고, 그 뒤로 몽생미셸이 나타났다. 몽생미셸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를 잡았는데 방에서 몽생미셸이 보였다. 풀밭을 달려 몽생미셸 근처까지 가보니 밀물이 들어와 있었다. 옛날 수도승들은 이 길을 건너가다 물이 들어와 죽게 되면 자기가 지은 죄가 커서 그랬다고 생각했다지… 저녁에 석양을 배경으로 몽생미셸 입구에 있는 식당에 가서 노르망디식 저녁을 먹고 나오니 가로등 하나 없는 수도원에 서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오싹해졌다. 무섭다고 칭얼대며 울기 시작하는 딸을 날름 안고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다시 돌아가 꼭대기까지 올라가면서 딸이 묻는다. “그래서 성 미카엘이 그 남자(오베르 주교)한테 이 성당을 지으라고 한 거야? 이 돌을 다 어디서 갖고 왔어.” “그래서 신기한 거야 어떻게 그 옛날에. 이런 무거운 돌들을 다 여기로 날라서 이렇게 바다 위에 성당을 지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외계인이 지은 거 아니냐고도 했대.”
몽생미셸을 뒤로 하고 파리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목적지인 앙부아즈로 향했다. 쉬농소 성과 앙부아즈 성 두 군데를 돌아보는 게 목표였는데, 앞 일정에서 자꾸만 더 보고 싶은 게 생겨 시간이 자꾸 밀리는 바람에 쉬농소는 포기하고 숙소에서 가까운 앙부아즈만을 돌아보았다. 기대했던 것은 샤또에서 하룻밤을 묵는 것이었는데 작은 샤또지만 역사가 있는 성에서 자보면 재밌을 것 같아 예약을 해뒀다. 평소 공포 영화와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들어서는 내내 귀신 타령을 했고, 결국 아무 일 없었지만 잠 한숨 못 자고 밤새 귀신 걱정을 했다.
파리로 돌아와 차를 리턴하고 마지막 4일간 머물 호텔로 옮겼다. 아이와 함께 가니까 에어비앤비를 예약할까 고민했었는데, 파리는 가게도 주변에 많고 식당도 편해서 호텔도 괜찮을 것 같아 호텔들로 예약했는데 잘한 결정이었다. 마지막 숙소는 6구 생제르맹 데프레 역 바로 앞으로 정했는데 밤에는 센 강 다리를 건너 루브르 앞쪽을 산책하고, 아침에는 룩셈부르크 정원을 산책할 수 있어 좋았다. 프랑스인 친구 로로 아저씨가 루브르 가이드를 자청했다. 사람 많아 안 가겠다는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면서 “파리에 왔는데 루브르를 안 가면 어떡해?” 라는 말에 항복하고 쫓아갔다. 로로 아저씨는 아트 딜러가 직업이라 아트에 대한 애정과 지식도 워낙 많지만, 무엇보다도 프랑스인의 자부심 가득한 설명을 듣다 보니 루브르를 다 다시 배우는 기분이 들었다. 나 혼자 올 때는 하지 않는 파리 여행을 다 했다. 바토무슈 유람선도 20년 만에 다시 타고, 뮤지엄 투어도 하고 몽마르트도 올라갔다. 재잘재잘 떠들며 궁금한 것도 묻고 요기조기 구경하며 잘 쫓아다니는 딸을 보며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열두 번도 더 들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몽생미셸에서 산 노트북에 그날그날 한 일들을 기록하는 딸이 우리 못지 않게 이번 여행을 즐거워하고 기억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 우리 앞으로도 이렇게 안 가본 도시들 구경할 수 있어? 거기 역사도 배우고 보고 계속 그럴 수 있어? 예를 들면 남미나, 북극이나!! 페루, 멕시코 그런 곳. 다 가보고 싶어.” 어린아이가 있으면 수영장이 있는 리조트 여행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보다 더 즐기고 느끼고 감탄하는 딸을 보면서 그래 이제부터 원하는 대로 더 많은 곳을 여행하자. 새롭고 재미있는 많은 곳들을 다 함께 보러 가자고 약속했다. 새로운 여행 메이트를 만나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내년에는 아예 캠핑카를 빌려 스페인, 포르투갈을 돌아볼래? 딸이 마냥 아기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