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competing myself'

인생 2막과 3막 사이,

그래도 아직 해는 높다.


홀리네임 병원 Korean Medical Program

최경희 부원장의 라이프 스토리



매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인권과 성평등에 관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결의된 이 날은 1975년 유엔에 의해 국 제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올해로 110회를 맞는 이 기념일에는 여성인권과 성평등을 표방한 다채로운 행사 뿐만 아니라, 사회 전 반에 걸쳐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는 세계 각국의 여성리더들을 조명하고 이를 통해 여성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상을 높이는 축제 를 열기도 한다. 이와 궤를 같이 하여, 맘앤아이에서도 미국의 낯선 의료문화와 한인들과의 간극을 좁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한인커뮤니티를 선도하며 의미있는 진보를 해나가고 있는 한인여성리더, 홀리네임 병원 Korean Medical Program(KMP) 의 최경희 부원장을 만났다 .
인터뷰 최가비 에디터



 반갑습니다 최부원장님, 맘앤아이 독자들에게, 또 나아가 많은 한인 여성들이 마음을 열고 경청할 수 있는 좋은 말씀 기대합니 다. 부원장님의 한인커뮤니티를 위한 여러 행보들은 워낙 많은 매체 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오늘은 부원장님의 어린시절 이야기부터 출 발할까 합니다.

네, 저는 경상북도 예천, 그러니까 효와 예를 강조하는 유교의 정서가 뿌리 깊은 농가에서 조부모님과 부모님, 또 6남매, 그리고 농사를 돕던 일꾼들까 지 거느린 대가족 가운데서 자랐습니다. 옛날 시골마을이 그렇듯이 제가 자 란 곳도 하나의 씨족정서가 지배하던 곳인데요, 온마을이 한 공동체를 형성 하고 있었기 때문에 태어나면서 부터 사회를 경험하고 인간관계를 체득할 수 있는 환경이었죠. 흔히 밥상공동체라고 하는데, 같이 일하고 같이 먹으 면서 그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와 배려를 배웠고, 섬기고 나누는 일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셈이죠. 돌이켜보면 어린시절의 그런 경험들이 현재 제 삶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교에서는 흔히 부부유별, 남녀유별을 강조하고 여성의 역할을 가정 안으로 축소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현재 부원장님이 사회적 리더쉽을 갖고 진취적으로 활약하시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학자시면서 공직에 계셨던 아버지께서는 효와 예를 강조하는 유교의 양반 정서를 가르치셨다면, 저는 교육열이 높고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계셨던 어머니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어 머니가 제 인생의 롤모델이셨는데, 어린시절 제 눈에 비친 어머니의 모습은 그 많은 일꾼들을 거느리고 농사와 살림을 꾸려나가시며 공동체를 리더하 시던 활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셨죠. 그 성향을 제가 물려받았다고 생각 해요. 더우기 어머니께서는 ‘여자도 자신의 커리어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어머니의 그 말씀이 아마도 제 무의식 속에서 저의 삶을 주도 해왔던 것 같아요

성장하시면서 부모님으로부터 훌륭한 인품과 기질을 물려 받으신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부원장님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은 어떤 아이였나요?

옛날 한국의 시골마을이 다 그렇듯이 제가 다닌 학교가 집에서 10리나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산넘고 물건너 학교를 다녔어요. 그런 고된 등하교길을 오가며 6년을 개근했어요. 돌이켜보면 어떤 단련된 정신력, 책임감 이런 것이 몸에 배인 아이였단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로 부터 높은 교육열과 커리어의 중요성을 배우 셨다고 하셨는데, 대학에서는 어떤 전공을 선택하셨고 이 후에 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남동생과 함께 서울로 유학을 가게되었어 요. 취업과 사회진출을 위해서는 실업계열 고등학교가 더 유익하다 여 기신 어머니께서 서울여상을 추천하셨고 거기서 저는 경리, 부기 등 실 무적인 훈련을 충분히 받고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했어요. 직장을 다니면 서 야간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다시 용산에 있는 매릴랜드 대학 에서 비지니스와 어카운팅을 전공했죠. 마침 여성의 날을 기념해서 여 성의 권익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한국사회는 남성중심의 사회구조가 지배적이었어요. 명문대학을 마치고 대기업에 입사를 한여성의 경우를 봐도 회사 내에서는 업무가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자기발전을 꽤하기가 어려운 형편이었죠. 그런 배경이 제가 외국 기업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요, 하루는 코리아헤럴드를읽고 있는데, JP Morgan Korean Branch가 오픈하는데 직원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있더라구요. 매릴랜드 대학 은사님을 통해 미국사회의 취업문화와 분위기에 대해 배우고 영어인터뷰를 열심히 준비해서 JP Morgan 한국지사 경리부 과장으로 입사를 하게되었어요. 렇게 한국에서 3년을 일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남편을 따라 미국 월가의 JP Morgan 본사로 옮겨 20년을 일했습니다.2 정도는 동남아 16개국을 커버하는 Regional Center 책임자로 싱가폴에 나가있었지요.

 

 

  말씀을 듣다보니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도 있으셨던 것 같 은데요, JP Morgan 하면 세계 굴지의 기업이고 미국의 Ivy League 엘리트들이 가장 동경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는데 이 곳에서 정년까 지 마치지 않고 조기은퇴를 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2001년에 9.11 사태를 겪으면서 삶의 어떤 전화점을 맞게 되었는데요, 당 시 저는 월스트리트 제 사무실에서 트윈타워의 참사를 목도했거든요. 비극 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그 일을 계기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 요. 내 개인의 성취와 발전을 위해 지금껏 앞만보고 달려왔고 그래서 내가 많은 것을 누리게 되었다면, 이제는 내가 받은 것을 사회로 환원하며 살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죠. 무엇보다 JP Morgan 시절 많은 사람 들로부터 지지와 사랑을 받았고 도움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나도 누군가 에게 그런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한거죠. 그래서 은퇴를 결심했고, 이 후 사회봉사에 눈을 돌리게 되었어요.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 다는 것은 큰 특권이거든요.

 많은 한인 1세들은 사회봉사, 기부문화 이런 것에 여전히 낯설어 하시는데요, 부원장님은 일반적인 한인 1세들의 이민생활과 는 다르게 곧바로 미 주류사회에 진출해서 그들과 함께 생활해 오셨 기 때문에 사회봉사에 자연스럽게 눈을 돌릴 수 있지 않으셨나 싶 어요.

맞습니다. 제 미국생활은 사실 JP Morgan이 다였다고 할 수 있는데요, 제 가 거기서 25년을 보내면서 느낀 것이 미국사람들의 관용과 친절이거든요. 일할 땐 치열하게 일하지만 서로를 돕고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문화, 남을 배려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이 저를 사회봉사라는 자리로 자 연스럽게 이끌어 간 것 같아요. 제가 사는 Harrington Park 교육위원으로 8 년간 봉사했고, Pascack Valley Hospital Board Member가 되면서 처음으 로 코리안 메디컬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사실 JPMorgan에서 비즈니스 개발 훈련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어요. 직접 발로 뛰면서 창의적 성과를 도 출해내야하는 업무가 거의 다였으니까요. 거기서 배운 비즈니스적 기술, 훈 련들을 차용해서 이런 비영리단체 운영에 적용하고 그것이 결국 한인사회 에는 큰 유익으로, 그리고 미국병원들도 함께 성장하는 윈윈비즈니스 프로 그램으로 만들어진 거죠
  Korean Medical Program 이란는 시스템을 통해 미국의 복잡한 의료문화와 한인들과의 간극을 잇는 가교역할 을 하고계신 것으로 알고있는데, 현재 홀리네임 병원 내 KMP 에서 진행되는 행사들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미국병원은 병원마다 각기 다른 정서가 있는데 홀리네임은 95년 전 에 수녀님들이 설립한 병원이라 카톨릭 시스템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환자 중심의 참 따듯한 병원입니다. 실력있는 의사들도 많고 그 중에는 한인의사들도 95명이나 됩니다. KMP의연례행사로는 헬 스페스티벌, 100교회 캠페인, Walk for Mom, 여성 건강 한마당 등, 그 외에도 다양한 이벤트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부원장님의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 고, 어떤 피드백을 주시는지요?

제가 커리어 중심의 삶을 살았다면, 제 남편은 가정 우선주의를 주 장하는 사람입니다. 어떤면에서는 참 다행한 일인데요, 제게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저의 지지자이면서 제가 하는 많은 이벤트에 참여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살뜰히 챙기고 행사의 소소한 피드백까지 주는 자상한 사람입니다. 서로 대등한 관계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기때문에 제가 제 일을 더 잘 해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늘 고맙고 감사하죠. 그리고 이제는 다 성장하고 독립해서 서부쪽에서 살고있는 두 딸도 엄마를 자랑스러워 하고 많이 지지합니다.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는 기회가 많아진 것은 참으 로 고무적인 일이지만 육아와 일 사이에서 어려움을 토로하 는 분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어드바이스 가 필요한데, 선경험자로써 어떤 말씀을 주시겠습니까?

발란스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답은 알지만 실천은 어려운 영원한 딜 레마죠.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또 모자란 점이 있었을 거에요. 제가 집에 없는 동안 아이들을 돌보 는 사람이 항상 있었고,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 했고, 아이비리그를 보냈고, 이 정도면 할만큼 했다 싶다가도 이건 그냥 내 입장에서 내 린 일방적인 평가일 뿐, 돌이켜보면 아이들과의 친밀감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늘 미안하죠.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아 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노력을 좀 더 할 것 같아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엄마로써 좀 더 센스블한 태도가 필요한데요, 아이들의 말을 존중 하고 대화를 많이 하고 비록 시간은 부족할지라도 자녀와의 정서적 유대를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확 대됨과 동시에 사회 각계에서 우수한 여성리더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인사회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계시는 부원장님의 행보가 차세대 한인 여성 리더들에게 적잖 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어깨가 무거우실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제가 어떤 리더의 역할을 한다는 생각보다 커뮤니티 서비스를 열 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한인사회에 여성리더들이 아직은 부 족하다보니, 리더라는 측면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임 감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요즘 미국의 주류사회의 변화를 봐도 알 수 있듯 이 아마 1세대가 지나가고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일어나면 한인사회에도 여성리더들이 많이 배출될 것으로 기대해요. 여성리더들의 양적인 성장도 중요하지만 어떤 지도자가 되는가 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일을 하든지 남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명예를 지키는 것을 일의 우 선순위로 둡니다. 제 개인의 명예가 내가 속한 단체의 명예가 되고 커뮤니티 의 위상이 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내부로는 겸손한 Servant leadership을 발 휘함으로써 아래사람을 오히려 배려하고 섬기며 소속된 단체와 몸담은 커 뮤니티 전체를 아우르는 책임있는 리더가 되는 것, 말하자면 내적, 외적 덕 목을 골고루 갖춘 리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일정 소화하시려면 짐작컨데 무척 바쁘실 것 같아 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계시나요?

저는 운동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등산을 자주갑니 다. 워낙 자연을 좋아해서 골프도 하면서 체력관리를 하죠. 나이들어갈 수 록 체력이 곧 능력이 되기때문에 건강관리 잘 해야죠.

  긴 시간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부원장님께서도 지난 시간을 정리하시면서 잠시 쉬어가는 편안한 자리셨기를 바랍 니다. 앞으로의 계획 여쭤볼까요?

JP Morgan에서의 25년 삶을 내 인생 1막이라고한다면, 패스켁 벨리와 홀 리네임에서의 사회봉사를 통한 제 2막의 인생이 현재까지 14년째 이어지 고 있습니다. 홀리네임 KMP에는 여전히 많은 숙제들이 남아있지요. 지금 여기까지 쉼없이 달려오는 동안 내 인생은 어느덧 오후로 접어들었지만, 그 래도 해는 여전히 높이 떠있습니다. 사실 지난 2동안 Columbia Mailman School of Public Health 를 마치고 MPH(Master of Public Health)를 획득 했고, 최근에는 필 머피(Phil Murphy) 뉴저지 주지사의 정부 보건분야 인수 위원으로 임명되었는데요, 앞으로 보건복지를 통한 세계로의 진출을 꿈꾸 는 인생 3막을 조금씩 스케치해보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그림은 없지만 마 음은 무척 설렙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큰 Impression을 받았는데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삶을 주 체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한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사실 남성우월적인 사회의 틀을 벗고자 하려면 여성 스스로가 의존적 사고 에서 깨어나야 하고 여성권익을 위해서는 스스로가 먼저 성장해야 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Excellence 입니다. Achieve Excellence! 누군가 그랬지요? I’m competing myself. 남들과 경쟁하려 하지말고 어제의 나자 신과 경쟁하고 오늘의 나와 경쟁하고 그렇게 날마다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 는 뜨거운 삶을 사시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시종일관을 편안하게 이끌어 주시고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 로 잔잔한 감동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원장님 말씀이 맘앤아이 독 자들에게, 또 많은 한인여성들에게 격려와 도전의 메세지가 되었기 를 바랍니다.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