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얼굴을 그리는 박유아 작가의 단순한 진심

인터뷰/글 황은미 변호사

People with the face of the Übermen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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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이라는 용어는 사전적으로 ‘생물학적 부모 자식 관계가 아님’을 함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법적 절차 중 하나를 명명하는 용어에 불과하다. 이러한 법적 용어가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되면 많은 사람이 ‘입양’인이 부모와 함께하지 못한 상황과 관련된 모호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무.심.코 드러낸다. 이러한 지나치게 일반화된 이야기와 감정적 표현은 단순히 법적 상태, 즉 ‘입양인’이라는 법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입양’은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매우 민감하고 어려운 주제이다.

‘사건, 인물 등 외부 자극들에 영감을 받고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는 영감을 준 대상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음식을 먹고, 에너지로 쓰려면 소화를 먼저 해야 에너지로 쓸 수 있는 것처럼, 대상에 대해 완벽히 소화한 후에야 작품을 만들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예술가의 표현은 정말 조심스러워야 해요. 예술가의 자기화가 부족한 상태에서, 작품이 대중에게 노출되면, 대중은 예술가의 의도뿐만 아니라 

그 작품의 대상에 대해서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대중의 

잘못된 해석이 대상자인 개인에게 상당한 상처가 될 수 있어요.”

지난 2018년에 한국 해외 입양인 100명의 인터뷰를 모은 ‘사이드 바이 사이드 프로젝트(Side by Side Project: 한인 입양인 글렌 모리, Glenn Morey, 감독작)’에 영감을 받아, 영화 속 입양인들의 초상화를 그린(지금도 계속 그리고 있는) 박유아 작가. 입양인들을 그려야만 했던 그녀의 생각은 무척 단호하고 명료했음에도, 몇 번이고 그녀의 ‘단순한 진심’을 설명했다. 스스로 다짐하듯 ‘신중’하고 ‘조심’해야 했던 ‘입양인’들의 초상화를 굳이 그려야 했던 그녀의 진심은 어떤 것이었을까? 기꺼이 조심하고, 기꺼이 열심히 설명하며 그들을 그.려.낸. 그녀의 마음은 누군가에 기어이 가 닿았을까?

나의 작품을 통해 그들을 대변한다는 생각 자체가 정말 섣부른 것 같아요.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리고 무엇을 안다고… 그럴 수 있겠어요.’  

‘입양’이라는 단 두 음절로 개인의 삶을 일반화하는 법적 언어와는 달리, 예술가의 언어는 더욱 길고, 개별적이고, 조심스럽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예술가의 언어, 시선,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입양인들의 얼굴을 그려야만 했던 박유아 작가의 신중한 언어, 예민한 시선,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입양인들과, 그들의 가족과,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Q. 사이드 바이 사이드 프로젝트는 어떤 내용이며, 어떤 계기로 이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두게 되셨나요?  

뉴욕 타임스에서 사이드 바이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었어요. 사이드 바이 사이드 프로젝트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다른 나라로 입양된(이제는 성인이 된) 100여 명의 입양인들의 이야기를 인터뷰의 형식으로 만들어 모아놓은 프로젝트예요. 글렌 모리(Glenn Morey)와 그의 아내 줄리 모리(Julie Morey)가 함께 만든 작품으로, 글렌 모리 역시 한국에서 태어나 생후 6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된 입양아입니다. 제가 이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게 된 최초의 충동은 성인이 된 입양인들의 얼굴 때문이었어요. 그들의 얼굴은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과도 달랐고, 이곳의 한인들, 즉 교포의 얼굴과도 달랐어요. 왜 다를까? 하는, 충격에 가까운 강렬한 궁금함이 생겼고, 결국 사이드 바이 사이드 다큐멘터리에 담긴 100명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모.두. 열심히 듣고, 보고, 배우게 되었지요. 그리고서 제가 “다르다”고 느꼈던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그들의 얼굴은 어린 시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양되어 겪어낸 특별한, 혹은 초인(위버멘쉬: Übermensch)적인 삶의 흔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제가 다르다고 느낀 것이었어요. 그것은 입양인에 대한 대중의 ‘안타까움’ 혹은 ‘안쓰러움’과는 전연 다른 특별함이었어요. 그렇게 그들에게 관심을 두게 되었고, 그들의 얼굴을 그리고 싶어졌습니다. 

Q. “입양”이란 주제는 어쩔 수 없이 당사자와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 사이의 경험과 감정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은 “입양”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은 마음은 안타까움이 절대 아니었다고 강조합니다. 

사이드 바이 사이드를 보면서 100명의 출연자가 각자 정말 특별한 삶의 여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 하나 비슷한 삶이 없었지요. 입양인이라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 주어진 상황, 그래서 겪어내는 경험치도 모두 달랐죠. 그런데, ‘입양인’이라는 틀로 그들을

안타깝게 보는 대중의 시선이나 감정에 마음이 많이 쓰였어요. 내가 초상화를 그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도 그렇게 보일까 봐 무척 조심스러웠어요. 저는 그들이 안타까워서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어요. 사이드 바이 사이드에 출연한 100명의 인터뷰는 20분이 조금 넘는 짧은 에피소드부터 한 시간에 가까운 길이의 에피소드까지 다양했어요. 그런 에피소드들이 총 100개여서 다 보려면 물리적으로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저는 첫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이틀에 걸쳐 잠자는 것도 잊고, 밥 먹는 것도 거르며, 몰입해서 보았습니다. 다 보고 나니, 제 옆에 눈물과 콧물을 닦아낸 휴지가 잔뜩 쌓여 있더라고요. 이렇게 나를 몰입시키고, 눈물 콧물이 나게 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니, ‘입양’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 여기저기에서 “우리 모두”의 삶이 보였고,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하는 공감에 기인한 감정이었습니다. 입양을 선택한 입양인은 없어요. 우리 자식들은 부모의 의지로 이민을 온 것이지, 그들의 의지로 이민을 선택한 것이 아니잖아요. 어떤 점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어내야 했던 상황과 감정이 입양인이 겪어야 했던 것과 유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이야기가 더욱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제게는 이것이 사람 얼굴하고 똑같이 느껴졌어요. 우리 모두 비슷하게 생긴, 눈, 코, 입이 얼굴을 구성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다 다르게 생겼죠? 하물며 쌍둥이도 다르게 생긴걸요. 그런데, 이런 차이를 보려면 열심히 들여다봐야 해요.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다 보니 그들이 다 다르게 보였고, 한 명 한 명 특별한 그들의 얼굴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 ‘단순한 진심’이었습니다. 

Q. 초상화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그들의 얼굴이 궁금해서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리게 되었어요. 제가 그들을 직접 만나거나 통화를 해서 “알게”된 후 그린 것이 아니에요. 제가 그린 초상화는 개개인의 사연을 담은 에피소드를 보면서, 영상에서 어떤 순간의 얼굴을 제가 선택해 사진으로 출력해서 그린 것이에요. 여기에는 두 가지 과정이 포함돼요. 초상화의 대상이 되는 입양인들을 관찰하고 발견하는 선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의 관점을 깨닫게 되는 후 과정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찰하는 과정에서는 저의 반응이 나와요. 눈물이 나는 것처럼 몸의 자동 반사 같은 것이지요. 그런 반응은 아직 어떤 것인지, 어떻게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지 제 스스로의 성찰과 깨달음을 얻기 전의 것이어서, 왜곡되기가 쉬운 감정들이에요(절대 안타까움이나 안쓰러움이 아닙니다). 그런 다음 그림을 그리며, 몇 겹의 칠을 더해 가며, 같은 얼굴을 또 보고 또 보면서, 내가 어떤 관점으로 그들을 보고 있는지를 성찰하고 깨닫게 되지요. 그리고 나의 눈물의 의미가 명료해졌어요. 어렵지만 문장으로 표현해 보자면 제가, ‘엄마’라는 관점에서 안아주면서 느낀 감정이더라고요. 제가 저의 감정을 들여다보니, 그들이 잘 버텨줘서 기특하고, 애쓴 것에 대해 수고했다고 말하면서 내가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더라고요. 딱 그것이었어요. 엄마의 마음. 그들의 얼굴을 그리는 과정은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나의 관점을 알게 되고, 나를 성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Q. 어린 시절 입양되어 성인이 된 그들의 얼굴에 초인(위버멘쉬: Übermensch)의 모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초상화들을 전시할 때 연작의 제목을 실제로 ‘위버멘쉬’라고 지었습니다. 위버멘쉬에 대한 작가님의 해석과 의미가 궁금합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끝날 때마다 제가 그들을 안아주면서 ‘버텨냈구나’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진심으로, 존경에서 우러나오는 포옹이었어요. ‘아, 살아냈구나, 정말 열심히 살아냈구나’라는 단순한 진심이었지요. 이렇게 살아내는 과정에서 그들은 모두 초인(위버멘쉬: Übermensch)의 면면을 발현합니다. 초인이라고 해서 슈퍼맨 같은 초능력자를 말하는 건 아니에요(웃음). 초인은 스스로 가치 기준을 만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이분들처럼 말이죠. 기존의 가치 기준으로 보면, 불행할 수도 있는, 혹은 실패자일 수도 있는 사람이 자기의 고유한 가치 기준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러면 갑자기 세상이 바뀌잖아요. 가치 기준이 달라졌으니까요. 예를 들면, 성인이 결혼을 안 했거나 이혼하면, 뭔가 문제가 있거나 혹은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불행한 상태라고 일반적으로 치부하잖아요. 그 기준이 비혼이나 이혼을 한 나의 기준이 아니면, 내가 불행할 이유가 없어져요. 입양인들 역시 기존 가치에서 스스로를 판단했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거예요. 자신의 가치 기준을 세우며 살아내면서 버텨낸 걸로 생각돼요. 물론, 이분들만 생(生)을 버텨내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 모두 우리의 생(生)을 버텨내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그분들도, 우리 모두도, 초인의 힘으로 삶의 의미와 기준들을 다잡고 살아내고 있는 거예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초인으로 살았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에 초인의 기지를 발휘해서 살아내고 버텨내는 거죠. 우리 모두는. 

Q. 화가는 원래 이루고 싶었던 꿈이었나요? 

지금 돌이켜 보면, 아이들이 다른 놀이(고무줄놀이 등)를 할 때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던 것 같아요. 아주 어릴 때부터 놀이의 수단으로 그림을 선택했고, 그것이 저의 표현 수단이 된 셈이죠. 그림이라는 놀이는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분명 제가 선택한 것이었어요. ‘평생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될 거야’.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지만, 계속 그리다 보니까 지금도 그리고 있게 된 거예요. 그림 말고 다른 것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더 정확하게는 내가 그림 말고 다른 것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해본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순간에는 그것이 후회되더라고요. 왜냐하면 세상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정말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더 나이가 들어서 보니, 그 재미있는 일들을 내가 했더라면, 잘했을 것 같더라고요(웃음). 내가 나의 가능성을 너무 좁게 상정해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생각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래도 괜찮아요. 그림이라는 표현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웃음).  

Q. 요즘 센트럴 파크 사진을 매일 찍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일종의 일기 같은 것인데요. 매일매일 하려고 하는 것. 그런데, 왜 센트럴 파크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너무 집에만 있어서, 일부로 집 밖을 나갈 핑계가 된 게 센트럴 파크예요(웃음). 커피를 무척 좋아하는데, 집에 있는 커피 머신도 치웠어요. 커피 사러 밖으로 나가게 만들려고요. 마시고 싶으니까, 밖으로 나가게 되더라고요(웃음). 밖에 나갈 자구책으로 센트럴 파크 사진을 찍어요. 제가 집 밖을 안 나가게 되는 이유는 집과 작업 공간이 같이 있어서예요. 쉬는 공간인 집과 작업 공간은 사실은 분리되어야 하는데, 애들 키우면서 작업을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작업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절약해야 했거든요. 밥 안쳐 두고, 붓질하고 나서, 붓질 마를 때까지 또 얼른 집안일하고, 다시 와서 붓질 한 번 더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평생 살았기 때문에, 집과 작업 공간의 분리를 못 했더니, 집 밖을 거의 나오질 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집 밖을 나올 핑계 중의 하나가 센트럴 파크의 사진을 찍는 거예요(웃음).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가며 삶을 살아낸 입양인들을 초인이라 설명하는 작가에게 당신은 초인이었던 적이 있냐고 물었다.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 초인의 순간을 겪어요. 새로운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힘든 삶의 순간들. 그때 우리 모두 초인이 되고, 그 순간을 딛고 일어나 다시 삶을 살아내는 것이죠. 그들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죠.’ 박유아 작가는 ‘입양인의 초상화’ 작업이 민감하고 복잡한 과정과 다양한 관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굳이, 그리고 끝끝내 그들의 얼굴을 그리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전시했다. 분명한 그녀의 기준을 세워가면서 말이다. 왜 그래야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초인이 되어 살아낸 이들을 그녀의 방식대로 꼬옥 안아주려 했던 단.순.한. 진.심.이 아니었을까? 박유아 작가의 작품과 이야기를 통해 ‘한인 입양인’뿐만 아니라 ‘입양인’에 대한 마음과 시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길. 그렇게 서로의 단.순.한. 진심이 통하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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