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지원 미술치료사
책 육아가 여전히 유행이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찬사만 봐도 우리 사회가 독서를 얼마나 숭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독서 열풍에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왜 책을 많이 읽어야 하 는가?’ 우리는 ‘읽다’라는 행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무조건 많이 읽고, 빨리 읽고, 높은 수준의 책을 읽는 것이 정말로 더 좋은지에 대해 좀 더 정확한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는 책 육아라는 말이 없다. 행복한 아이로 키우는 과정에 책이 등장 할 순 있어도 나의 육아를 대표하는 단어로 ‘책’을 대대적으로 쓰지는 않는 다. 아이 때부터 집집마다 한두 세트씩은 있다는 몇십 권의 화려한 전집 문 화도 사실은 한국에서만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 렇게 ‘독서’에 목을 맬까? 어쩌면 주어진 답을 외우고 그대로 써내면 되었 던 암기 위주의 교육, 질문하지 않고 듣기 위주의 교육을 겪었던 이전의 한 국에서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세계를 확장했던 아이들은 학교에서 얻지 못한 자기 주도적 배움을 통해 사고력과 창의력에 큰 차이를 보였을 수도 있다. 한국의 교육은 그 차이에 주목했고 공교육과 사교육은 앞다투 어 독서와 논술의 영역을 확장해왔을 수도 있다.
똑똑함이 가진 가치가 큰 우리에게는 결국 다독은 아이의 성공과 연결되 는 수단일 수밖에 없는 걸까? 책 육아의 목적은 좋은 대학은 아니라고 말한 다.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가 궁극적으로는 책 육아를 하는 사람들 의 목표라고 알고 있다. 아이가 자신의 꿈을 찾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 부모 가 그리고 학교가 채워줄 수 없는 부분들을 책이 채워줄 수 있고 아이의 세 계를 확장해 줄 수 있다. 그러니 책으로 하는 육아가 아니라 육아 안에 책이 해줄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책 육아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다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두 권을 읽어도 그 내용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반응하 며 새로운 생각과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그 내용에 반응하고 생각하는 사람, 책이 주는 지식이 아 니라 책이 주는 경험에 반응하는 사람이 독서가 주는 유익을 진정으로 취 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읽기, 수학, 과학 등 모든 영역에서 1, 2위를 하는 핀란드의 경우 유치원 단계에서는 문자 교육이 금지돼 있다. ” 이 시기에는 집중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데 문자 교육이 오히려 집중력 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이유를 설명한다. 독일에서 시작된 발도르 프 교육에서도 7세 이전에 글자를 가르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아직 뇌가 성숙하지 않은 영유아 아이들에게 과도한 책 읽기나 문자 학습이 적절치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 시기의 아이들은 사람들과의 교류와 다양한 감각 을 통해 직접 경험함으로써 배움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자연 과학 전집에 서 자세하게 그려진 나비 그림을 보며 나비 몸의 구조를 배우고 애벌레에 서 나비가 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보다 자연에서 날아가는 나비와 교감하는 것이 그 나이 때 세상을 배워가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우리 집에도 수많은 전집이 있다. 아이는 일찍 스스로 읽기를 깨쳤고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책을 읽어왔다. 하지만 아이가 글씨를 읽게 된 순간부터 나는 오히려 더 독서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주려 노력해 왔다. 어디서든 발에 책이 치이면 주저 않아 글자를 읽어대는 첫째 아이를 보며 책을 많이 읽는다고 뿌듯해할 이유가 없다. 결국은 독서의 힘이 아니라 생 각의 힘이 중요하고 생각의 힘은 단순한 읽기에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자 신이 경험한 것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만의 사유를 하지 못한다면 안 읽은 것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유로 나아가는 길은 단순한 다독 에서 오지 않는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많은 책을 읽어주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 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따라가는 것 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이가 좋아한다면 혹은 관심 있는 책이 있 다면 함께 읽으며 즐거운 대화를 가져도 좋겠다. 아이가 책을 유난히 좋아 한다면 막을 이유는 없다. 다만 책을 안 읽거나 안 좋아한다고 하여 조바심 을 낼 이유도 없다. 영유아기 때는 ‘책을 꼭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담긴 것으로 인식하면 된다. 자기 전에 엄마가 읽어주 는 이야기에 기분 좋은 교감을 하는 매개체이면 되는 것이다. 아이가 학교 를 들어가서 읽기를 배우거나 혹은 그전에 스스로 읽는 법을 터득한다면 독서의 양보다는 아이가 고른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어떤 점이 흥미로웠 는지,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지를 토대로 다음 책을 고르거나 독후 활동 을 후원해 주면 된다. 아이들은 대게는 읽기보다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 들어 내는 것에 재능이 많다. 그렇다면 아이의 엉뚱한 이야기를 잘 들어주 는 것이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지금 자신이 무 언가에 관심이 있을 때 그것을 존중해 주고 후원해 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함께 가치를 두고 가는 부모 밑에서 아이들 은 자연스럽게 책 자체가 목적이 아닌 수단임을 알게 되고 잘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치료 석사 과정 졸업
• Chicago Children’s Advocacy Center 성폭행 피해 아동 치료
• 한국 GS Caltex Social Contribution Project와 서울문화재단 미술치료사
• 뉴저지 Center for Great Expectation 약물중독 엄마 치유
• 뉴저지 Hope and Art Studio 미술치료 스튜디오 설립
• 이중문화권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만들기와 상담 프로그램들을 진행 중 <마이 아메리칸 차일드> 팟캐스트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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