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도덕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그때는 예의범절, 친절, 존중과 배려 같은 개념들을책으로 가르치는 시절이었다. 책으로 배웠다 해도 그런 개념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 마음과 몸속에 베어 들어 어떤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다른 시대를 사는 아이들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들에게 어른을 공경하고 약자를 배려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사는 것의 가치를 가르친다. 그런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을 응원하고 칭찬하기도 한다. 다만 그런 아이들이 간헐적으로 받는 칭찬과는 비교도 안되게 성적이 우수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의 가치가 더 높게 매겨진다는것이 씁쓸할 뿐이다. 책으로 배웠던 도덕적 개념은 경험으로 배운 성공 주위와 물질만능의 개념으로 우리 안에서 서서히 교체된다. 엄마들은 그런 변화에 가장 취약하다. 내 자식이 당장 선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사는 것보다는 경제적 능력과 명예를 갖추는 것이 실질적으로 아이에게 주는 이익이 크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고 사회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리든 아니든 간에 자식이 행복하길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고, 자식의 행복이 현재 나의 부모 노릇에 달려있다는 믿음으로 인해 부모들은 끊임없이 달린다.
최근 양육서나 교육서를 읽어보면 미국의 학자들은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에게서 나타나는 평가와 성취 위주의 교육, 필요 이상으로 아이들을 컨트롤하고 혹은 보호하는 양육 형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다. 비교적 평가에서 자유로웠던 미국의 공립 교육은 2000년대 초반 ‘No Child Left Behind Act’ 그리고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 중심의 교육으로 인해 점점 평가와 성취 위주의 교육으로 바뀌어 갔다. 부모들은 바뀌어 가는 교육 환경에 적응하랴, 높아져만 가는 대학교 입학 기준에 아이들을 맞춰주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인 스포츠나 악기 등의 과외활동도 프로 수준으로 따라갈 수 있게 서포트하랴, 한국 못지않은 스트레스와 책임감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하여 이 넓은 땅 곳곳에 작은 대치동들이 높은 요새처럼 군림하고 있다. 미국에 와서도 학군을 신경 써야 하고, 선행 학습을 시켜야 하며, 방대한 학
교 숙제를 내 일처럼 도와주고, 대학교에 가는 모든 과정에서 많은 돈을 써가며 정보를 취합하고 아이를 볶아야 한다. 부모들은 그저 사회적 변화에 발맞추어 뛸 뿐이지만 사회는 이들에게 ‘Helicopter Mom’이라는 부정적 수식어를 붙이고 이런 부모들의 양육방식이 아이들에게 역효과를 내고 있는지에 대해 적나라하게 떠들어대고 있다. 한편에선 달리라 하고 한편에선 천천히 가라 하니 부모들은 어디에 기준을 맞춰야 할지 혼란스럽다.
얼마나 많은 한국 부모님들이 미국까지 와서 자녀를 잘 키워보고자 하는 열정과 꿈 그리고 그만큼 큰 부담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이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대학을 잘 가는 정보보다는 어쩌면 미국이라는 이 거대하고 복잡한 나라에서 어떻게 나와 내 아이가 서로 신뢰를 잃지 않고 자신의 꿈을 발견하는지, 그리고 과열된 경쟁과 왜곡된 욕심의 피해자가 되지 않고 ‘건강한 나’를 발견하고 만들어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어렸을 적 책으로 배운 도덕 같은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지만 책으로 배운 개념들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배움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대학 순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해버리는 치사하지만 모두가 하고 있는 그 기준을 우리가 살짝 내려놓고 학업적 성취 너머의 아이가 가진 고유한 모습 자체로 존중해 줄 순 없을까? 그리하여 엄마들도 아이의 성적과 입시와 별개로 엄마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존중받을 순 없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어떻게 변할지,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부모 스스로의 정체성은 어떻게 건강하게 가꾸어야 할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앞으로 몇 번의 칼럼을 통해 이 질문들에 대한 고민과 방법들을 천천히 소개해보려 한다.
• 미술치료 석사 과정 졸업
• Chicago Children’s Advocacy Center 성폭행 피해 아동 치료
• 한국GS Caltex Social Contribution Project와 서울문화재단 미술치료사
• 뉴저지Center for Great Expectation 약물중독 엄마 치유
• 뉴저지 Hope and Art Studio 미술치료 스튜디오 설립
• 이중문화권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만들기와 상담 프로그램들을 진행 중 <마이 아메리칸 차일드> 팟캐스트 진행 중
www.hopeandartstudio.com /hopeandartstudio
글 Jiwon Yoon,
ATR-BC, LCP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