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진정한 나를 찾았습니다

의학도에서 애니메이터 된 픽사 스튜디오의 한국인 애니메이터, 김재형 씨



인터뷰 및 글 이수정_작가/스토리텔러

2021년 1월에 개봉한 영화 ‘소울(Soul)’이 화제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된 한 재즈 뮤지션과 지구에 가고 싶지 않은 어린 영혼의 모험을 그린 이 영화는 ‘뉴욕 거리와 우주를 잇는 여정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는 작품’으로, 평단과 관객들은 ‘삶의 기쁨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라고 극찬하고 있다. 피트 닥터 감독의 섬세한 연출, 목소리 연기를 맡은 제이미 폭스와 티나 페이의 열연, 외에 귀를 황홀하게 하는 OST와 사운드에 전세계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그와 더불어 환상적이면서도 리얼한 CG는 가히 ‘역대급’이라는 갈채를 받고있다. 이런 애니메이션에 한국말과 한국어 간판이 등장한다는 놀랍고도 반가운 사실! 픽사의 한국인 애니메이터, 김재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하고 계신 일을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세요.
픽사에서 맡은 직책은 애니메이터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캐릭터 애니메이터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모든 사
람들을 애니메이터라고 알고 계시지만 정확하게는 캐릭터나 사물 등을 스토리에 맞게 연기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만을 애
니메이터라고 합니다. 실사 영화의 배우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은 전문분야들이 세세하게 나누어져 있어서 제가 하는 일 외에 조명, 카메라 연출, 디지털 모델이나 배경 제작 등의 많은 분야들이 있고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다양한 고유의 직책들이 있습니다.

영화 ‘소울(Soul)’에서는 어떤 작업을 하셨는지요? 주인공인 조 가드너의 모든 것을 창안하신 건가요?
영화 소울에서 캐릭터 애니메이터로 일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작업할 때 애니메이터 한 사람이 1주일에 3-4초 정도의
분량을 만들어 내는 속도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영화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애니메이터가 필요합니다. 소울의 경우 100여 명의 애니메이터가 참여했습니다. 다른 부서의 모든 아티스트들을 합치면 연 인원으로 400~500명 정도 됩니다. 실사 영화에서는 보통 한 명의 배우가 하나의 역할을 맡아 연기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장면 별로 애니메이터가 캐스팅되기 때문에 여러 명의 애니메이터가 특정 캐릭터를 장면 별로 나눠 그려내게 됩니다. 저는 사람과 영혼 형태의 주인공 조와 22, 고양이가 나오는 장면들을 주로 담당해서 작업했습니다.

‘소울’에는 한국 말과 한국어 간판이 등장합니다. 어떤 계기로 한국어와 한국어 간판이 들어가게 되었는지요?
소울에 나오는 한국어 대사나 한국어 간판은 제가 낸 아이디어는 아닙니다. 한국어 대사는 스토리 부서에서 일하는 한국계 스토리 아티스트가 제안하고 또 직접 목소리 연기를 했습니다. 거리의 한국어 간판은 ‘세트 익스텐션’ 부서서 일하는 한국인 아티스트의 이름을 따서 ‘Hosuk’s 호호만두’라고 만들게 되었습니다.

‘소울’에서 ‘몰입’이란 상태를 흥미롭게 풀이한 장면이 나옵니다. 애니메이터로서 김재형님이 생각하시는 ‘몰입’은 어떤 것이며 영화 ‘소울’에서는 ‘몰입’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요?
제가 생각하는 ‘몰입’은 오랜 시간의 노력으로 습득된 어떤 지식이나 신체적 능력이 그 사람의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과 어우러져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피트 닥터 감독이 원한 ‘소울’의 몰입 장면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맡아서 애니메이션했던 장면들 중에 조의 피아노 오디션 중 무아지경에 빠져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감독은 오디션 초반에 조가 긴장해서 이성적으로 피아노를 칠 때와는 다르게 점점 무의식적으로 연주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고민 끝에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정확히 음악과 일치하지만 몸의 움직임이나 표정은 실제 피아노 연주할 때보다는 훨씬 더 부드럽고 평안한 모습을 보이게 만들었어요. 거기에 더해, 연주 자체를 행복해하는 조의 감정을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더해서 표현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장면이었지만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제가 애니메이션을 완성한 후에 다른 부서의 아티스트들이 작업한 판타지적인 배경을 합쳐서 최종적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애니메이터로서 ‘소울’에서 특별히 이런 점에 마음을 썼다는 부분은 어떤 것일지요? 독자들이 ‘소울’을 어떻게 보아주기를 바라시는지요?
제가 애니메이터로 일하는 동안 악기 연주 장면을 처음으로 만들게 되었는데요, 이 영화에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런 장면들이 진정성 있게 보여지길 원했어요. 그래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열심히 준비해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소울’은 어떤 사건을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보기보다는 이야기가 흐르는 대로 끝까지 보고 나면 그때부터 마음 속에 울림이 시작되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많은 사람들이 지쳐있는 팬데믹 시기에 개봉이 되었는데요, 제가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분들에게 마음의 위로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픽사는 전세계를 통틀어 그야말로 굴지의 애니메이션 영화사입니다. 아트 스쿨을 졸업하시고 픽사에 입사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의 수업 중에 픽사 클래스라는, 픽사 애니메이터들이 직접 애니메이션을 가르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 수업들을 통해서 실제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수준의 애니메이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었고 동시에 더 나은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졸업 즈음에 완성된 포트폴리오로 여러 회사에 지원했는데 운 좋게도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턴 과정에 들어가게 되었고, 3개월 정도의 인턴 과정을 마친 후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애니메이터란 직업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입니다. 창의력과 예술을 접목시킬 수 있는 분야면서 ‘재미’도 느낄 수 있다는 게 이유일 것 같은데요. 현직 메이저 영화사의 애니메이터로서 애니메이터란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실제로 일을 하시면서 찾은 매력과 또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제가 생각하는 애니메이터의 힘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을 하는 데에 있어 큰 동력이자 목표가 됩니다. 또 ‘animate’라는 말의 뜻처럼 생명이 없는 사물이나 디지털 캐릭터를 움직이게 하고,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게 만들어서 생기를 불어넣는 일 자체가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점이라면 역시 창작의 영역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고, 많은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하면 할 수록 알아야 할 것이 더 많아지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사’란 직업을 떠나 애니메이터가 되시기로 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떤 갈등이나 고민의 과정은 없으셨는지요? 그리고 있었다면 그것을 극복, 해결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의대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졸업 후 의사로 일할 때까지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즐겁게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늦어지기 전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결정을 하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고, 또 부모님께 모든 도움을 받아 공부를 했기 때문에 고민이 적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계속 일을 한다고 해도 그냥 먹고 사는 수단 이상의 의미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환자를 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어서 미련 없이 그만 둘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었고, 어린 시절에 현재와 연관해 중요한 ‘사건’이나 기억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부모님의 교육관 이야기도 좋습니다.
장래희망 란에 모든 아이들이 다 쓰는 과학자, 건축가를 썼던 때 이후로는 어떤 구체적인 꿈이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매우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하셔서 저와 동생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운동을 시키셨는데요, 대충대충 하는 법이 없으셔서 결국엔 초등학교 때부터 스키선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도 계속 하길 바라셨기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까지만 운동을 하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참가한 대회에서 처음으로 1등을 한 후에 미련 없이 접고 학업에만 전념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한편으론 이런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선택하는 데에도 크게 걱정하거나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스쿨을 다니시면서 특히 기억에 남거나 인상적인 일이 있다면요?
제가 다닌 학교의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잘 따라오지 못해도 항상 잘한다고 칭찬을 하면서 고칠 부분에 대해 에둘러 표현하는 경향이 있어서 실제로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가늠하기가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저도 첫 1년 동안 계속 잘한다는 말만 듣고 편한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에 학교에 계시던 한국인 선생님 한 분이 한국 학생들의 작품들을 평가해 주실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아주 직설적인 내용의 비평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기분도 상하고 당황하기도 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죠. 이후부터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에 대한 개인적 기준을 계속 높이려고 노력하고 거기에 맞춰서 공부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선생님이 그날 해주신 비평에 대해 지금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학도셨는데요, 어떤 경험이든 무의미한 게 없다고들 합니다. 혹시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하시면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로 일하셨던 경험과 어떤 연관성을 느끼셨다면 무엇일까요?
애니메이션이 예술의 영역이긴 하나 제작 과정에서는 의외로 논리적이고 기술적인 부분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해내는 데에 의학을 공부할 때의 습관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작게는 해부학 같은 경우 의학에서 만큼 깊게는 아니지만 미술에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도움이 되었고 ‘소울’의 병원 장면처럼 의학적인 조언이 필요한 곳에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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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분이나 자녀분들은 김재형님 일에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고 어떻게 응원하시는지요? 혹시 가족 분들 중에도 애니메이터나 아트쪽 일을 하시는 분이 계신지요?
아내는 매사에 오래 걱정하지 않는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알아서 잘 하고 있으면 문제 없다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일하러 가는 것을 두고 혼자 놀러 가는 거냐고 이야기할 정도로 이 일을 아빠가 좋아하는 놀이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술 분야에 일하는 가족들로는 화가인 이모가 한 분 계시고, 무용가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촌들이 있습니다.

맘앤아이 매거진은 패밀리 매거진입니다. 가족 분들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제 아내는 의대 재학 중에 한 동기의 여자친구가 친한 친구를 소개시켜 주어서 만나게 되었어요. 졸업 후 병원에서 일이 바빠지기 전에 일찍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벌써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공부나 운동보다는 음악을 더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의 오케스트라 활동과 피아노 배우는 것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보통의 아이들처럼 게임하는 것도 좋아했는데요, 특이했던 점은 그냥 플레이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게임에 나오는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거나 다른 오케스트라 친구들과 합주하면서 놀곤 했습니다. 대학 전공도 이렇게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을 계속 하고 싶어서 영화/게임음악 작곡으로 정하고 음대에 진학했습니다. 아마도 성악을 전공한 아내의 도움으로 음악 공부할 때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기면서 계속 흥미를 잃지 않고 했던 결과인 것 같습니다. 둘째는 첫째와 성향이 많이 달라서 좀 활동적이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합니다. 역시, 공부보다는 미술이나 요리 등을 좋아하는데 아직 어려서 좋아하는 것이 계속 바뀌는 중이라 그냥 옆에서 지켜보는 중입니다.

앞으로 애니메이터로서, 또 개인적으로 이어가실 행보를 응원합니다! 간단히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 주세요.
우선 처음 이 일을 하려고 결정했을 때의 마음가짐처럼 하루하루 즐겁게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습니다. 다만, 계속 좋은 프로젝트를 통해서 더 많은 경험을 쌓은 후에는 제 자신의 작품을 만들거나 아니면 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귀한 시간 내 주시고 귀한 이야기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맘앤아이 매거진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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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 Hyung Kim / 김재형


서울 태생으로 의과대학 출신의 애니메이터다.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Academy of Art University MFA)를 졸업하고 현재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Pixar Animation Studios)에서 캐릭터 애니메이터로 일하고 있다.

현재,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타운, 모라가에서 아내, 그리고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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