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의 묘미

글 Windy Lee 에디터

 

 

1894년 뤼미에르 형제가 역에 도착하는 기차 장면을 담은 최초의 영화를 상영한 이래 인류의 이야기 전달 방식은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너도 들었어?”를 시전하며 입에서 입으로 원본이 조금씩 달라지던 시대에서 눈앞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이야기를 ‘함께 보고 듣는,’ 군중 경험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이야기꾼의 시선과 목소리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로 인해 영화는 한 때 군중을 미혹하고 선동하는 매체로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관객도 자신의 목소리를 냄에 따라 이야기꾼은 호응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리스크를 안고 특별한 시선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놔야 하는 숙명을 지니게 되었다. 이런 우리 시대 이야기꾼들의 고단함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자리가 바로 ‘영화제’가 아닐까 싶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우리는 보고 듣고 손뼉 칠 준비가 되어 있소’라고 말하는 듯 따뜻한 호응을 보이는 관객들이 모인 곳이니 영화제는 감독들에게는 가히 천국과 같을 것이다. 세상과 사람을 향해 열린 시선과 마음으로 호기로운 이야기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영화제에서 흥미롭고 다채로운 이야기들 속으로 자유롭게 거닐어보면 어떨까

 

링컨 센터에서 해마다 열리는 뉴욕 영화제(New York Film Festival, NIFF)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경쟁 영화제이다. 뉴욕 실험 영화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영화제이기도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저명한 제작자와 국제적인 영화감독의 작품들까지 균형 있게 라인업으로 갖춘 권위 있는 영화제이기도 하다. 뉴욕 영화제는 비경쟁 영화제이기 때문에 수상의 영예가 따르진 않지만, 초청을 지속적으로 받는 영화감독과 제작자에게는 명성이 뒤따른다. 특히, 뉴욕 영화제는 꽤 중요한데, 그 이유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영화제에서 초연된 화제작들을 기다리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뉴욕에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매년 오스카 수상작은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선정된다.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뉴욕 영화제는 9월 30일부터 10월 16일까지 링컨 센터 내 4개 극장과 외부 연계 5개 극장에서 Main Slate, Spotlight, Currents, Revivals 등 네 개 섹션별로 선별 초청된 영화들이 상영된다. 섹션마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영화 팬들을 끌어 모으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섹션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신작 32편이 라인업 된 Main Slate라 볼 수 있다. 이 섹션의 라인업이자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역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인 노아 바움백 감독의 <화이트 노이즈>다. 바움백 감독은 2005년 <오징어와 고래> 이후 2017년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2019년 <결혼 이야기>로 뉴욕 영화제의 지속적인 초청을 받아왔다. 또한, 올해 화제작 중 하나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로라 포이트러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 사태>도 뉴욕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다. 이 작품은 사진작가인 낸 골딘이 마약성 진통제 제조사와 오너 가문을 상대로 벌인 투쟁을 다뤘다. 특별 상영작은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아마겟돈 타임>이 선정됐다. 이외에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초연되고 NIFF 폐막작으로 선정된 엘레간스 브래튼 감독의 <인스펙션 The Inspection>과 선댄스 영화제에서 <클레먼시>로 대상을 수상한 치논예 추쿠 감독의 <틸>,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을 촉발했던 ‘하비 와인스타인’ 성추생 사건을 재조명한, 캐리 멀리건과 조 카잔 주연, 마리아 슈레이더 감독의 <그녀가 말했다>도 주목할만한 영화제 초청작으로 손꼽힌다.

 

여기에 칸 국제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자 제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 장편 영화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도 뉴욕 영화제 Main Slate 공식 초청되었다.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나온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자 11번째 장편으로 탕웨이와 박해일의 첫만남이라 보기 어려운 강렬한 시너지와 수사 멜로극이라는 독창적 이야기와 박 감독 특유의 감각적 미장센이 더해진 수작으로 유수 국제 영화제로부터 초청과 수상의 영예를 이어가고 있다. 역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와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초연된 홍상수 감독의 신작 <워크 업>도 이번 뉴욕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우리에겐 조금 더 친밀하게 다가온 캄보디안계 프랑스 감독인 다비 슈 감독의 <리턴 투 서울>도 올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던 작품으로, 프랑스로 입양된 한인이 부모를 찾는 여정을 담았다.

 

영화제의 묘미를 더욱 느끼고자 한다면 올 시즌 가장 기대되고 의미 있는 작품들을 상영하는 Spotlight 섹션이나 혁신적인 형식과 목소리에 중점을 둔 작품으로 라인업을 갖춘 Currents 섹션, 그리고 디지털 방식으로 리마스터링된 고전 명작들을 볼 수 있는 Revivals 섹션의 영화들을 관람해보길 추천한다. 영화를 열린 마음으로 완벽하게 즐기는 관객들과 함께 오직 영화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관람 경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관심 있는 영화나 감독이 있다면 상영 이후 감독과 배우와의 Q&A 시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참여해보자. 이 또한 영화제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LINE-UP

SEP 30, OCT 15 화이트 노이즈 White Noise
OCT 7모든 아름다움과 유혈 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OCT 12 아마겟돈 타임 Armageddon Time
Oct 14 인스펙션 The Inspection
OCT 2, 8 워크 업 Walk Up
OCT 7, 10 소설가의 영화 The Novelist’s Film 
OCT 8, 9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OCT 13, 15 리턴 투 서울 Return to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