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 장구로 제2의 인생 시작

털이 북실북실한 탈을 쓰고 사자가 되어 힘차고 흥겨운 탈춤을 선보이는가 하면 어느 날은 기생이 되어 그녀들의 한을 풀어내기도 한다. 백색의 치마, 저고리를 입고 고운 쪽머리에 하얀 명주 수건을 든 채 살풀이 춤을 추는 모습은 또 다른 얼굴을 한 여인이다. 한국 전통 춤의 대한 명인 레나 김(김미자) 선생의 이야기이다. 일평생 한국 전통 춤을 배우고 대한민국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 이수자이기도 한 그녀가 미 동부에 ‘고고 장구’를 들여왔다.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선생님께서는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 15호, ‘북청 사자 놀음’의 이수자이시죠? 이수자란 무엇인가요?

네 저는 북청 사자 놀음을 전승한 무형문화재 이수자입니다. 무형문화재는 보유자 – 전수 교육 조교 – 이수자 – 전수자로 이어지는 일정한 전승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보유자는 해당 종목에 자질과 뜻이 있는 전수생을 선발해 교육해야 하고 전수생 중 3년 이상 전수 교육을 받은 자는 심사를 거쳐 이수자가 됩니다. 저는 1968년 국가 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 사자 놀음에 입단하여 스승님들의 춤을 연마하고 이수자로서 여러 종류의 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후배 양성에 힘을 쏟기도 했습니다.

Q 무형문화재 제44호 무등답교 선소리 산타령의 전수자이기도 하구요, 한국 사단법인 대한민국 명인회에 등록된 전통 무용, 구고무의 대한 명인이신데요. 춤과 소리를 해오신 선생님의 역사가 깊은 것 같습니다.

전 우리 전통 춤을 생명처럼 여기며 여기까지 열심히 이끌어 왔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무용을 배워 지금까지 춤을 춰왔지만 지금도 한없이 부족한 것만 같습니다. 고인이 된 인간문화재 이근화선 스승님, 고인이 된 김천흥 선생님으로부터 승무춤, 북춤, 무당춤 등 여러 춤을 배웠고, 이은관 선생님, 김순택 선생님으로부터는 소리를 배웠습니다. 소리꾼 이효연 선생과 국립 극장 공연을 하기도 했고, 박경량 선생님과도 깊은 친분을 맺으며 많은 공연을 함께 했습니다. 심중소회, 무도회, 각 예인 열정을 펼치며 국악 방송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었죠.

 

Q 한국 전통 춤은 발레나 현대무용에 비해 무용가로서의 수명이 더 길 뿐만 아니라 세월이 흐를수록 그 깊이가 더해지는 예술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랜 시간 한국 전통춤을 고수해오신 선생님께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춤이 있으실까요?

 

1968년에 작고하신 김천홍 선생에게 배운 승무춤과 북춤에 애착이 많이 갑니다. 살풀이 춤도 저에게 큰 의미가 있고요. 어릴 때 췄던 저의 살풀이 춤에는 깊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에서야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동작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이 이해가 됩니다. 춤이라는 것은 내 몸의 모든 호흡과 마음을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무릎과 무릎은 항상 붙어 다녀야 하고, 발목을 눌러 한발 한발 내딛어야 하지요. 우리나라의 춤은 눌림의 춤이라 할 수 있는데 민족의 한을 담아 추는 춤이라 깊이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최근에는 전통 춤을 넘어서 대중들이 좀 더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고고장구’를 가르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고고장구’란 무엇인가요?

한국의 전통 문화 예술을 대표하는 타악기 중 하나인 장구의 리듬과 현대적 안무를 새로운 박자로 재탄생 시켜 대중 문화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고고장구’인데요. 요즘 유행하는 신나는 트로트 음악에 맞춰 장구도 치고 신나는 춤도 추면서 한국의 얼과 신명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고고장구’는 단순히 타악기를 두드리는 리듬과 안무를 즐기며 삶의 즐거움을 되찾는 행위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명나는 리듬과 역동적인 안무를 통해 신체 건강을 유지, 단련하는 것은 물론 스트레스 해소와 우울증 치료에도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Q 한국에서 이미 중장년층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고고장구’를 미 동부지역에 최초로 들여오신 분이 선생님이시죠.

 

제가 3년 전 한국에서 자격증을 취득해 현재 사단법인 한국고고장구 진흥원의 미 동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모든 수업이 중단되었다가, 지난 7월부터 ‘고고장구’ 수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현재 뉴저지에서 ‘고고장구’를 배우는 수강생들은 40대부터 7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합니다. 저는 김미자 전통 예술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억압된 감정의 해소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요즘, 우리의 전통 악기를 기반으로 한 ‘고고장구’는 신명나는 흥겨운 장단과 안무의 몰입을 통해 얻어지는 흥과 치유의 에너지를 가지고 새로운 자아의 발견과 함께 생활에 활력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김미자 전통 예술 아카데미에서는 ‘고고장구’ 클래스뿐만 아니라, 전통 고전 무용 수업과 민요 수업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꿈이 있으시다면요?

 

저의 재능을 물려받았는지 제 딸도 선천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제주도에서 1977년도에 무용학원을 할 때부터 딸도 무용을 배웠습니다. 그 때가 유치원생이었는데도 아주 뛰어난 재능을 보였었지요. 그 후 미국에 와서 본격적으로 무용을 배워 미스 뉴욕 진으로 뽑혀 활동하면서 한국에서 방송 활동도 했었어요. 다시 미국에 돌아와서는 금융계쪽 일을 하다 지금은 아이들 양육을 하고 있습니다. 딸도 항상 춤에 대한 열정을 잊지 않고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가 되면 저를 이어 한국의 얼과 전통 문화의 전달자가 될거라 보고 있습니다. 저는 어려운 난관을 거쳐 국가 무형문화재 이수자이자 전수자가 되었고 2021년 11월에는 국회의원 지도자상을 받았습니다. 이제 제 2의 고향인 이곳에 정착해 멀지 않아 제 딸이 뜻과 재능을 보태어 함께 지역 사회에 재능 기부와 더불어 전통 고전 무용가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저의 희망이자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