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나드는 경이로운 아티스트

글 Windy Lee 에디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각성으로 얻은 수치심과 거친 맹수 및 거센 날씨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태어난 태초의 ‘옷’은 일종의 ‘방패’ 같은 원초적 기능에 국한되어 있었다. 인류 복식사는 이런 옷의 원초적 보호 기능에 욕망이 더해진, 복잡다단한 차이와 차별이 융합된 세계의 집대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인류의 복식사를 인물이라는 씨줄과 시대라는 날줄로 다시 엮어, 무대에서 단적으로 내보여야 하는 무대 의상이야말로 옷이라는 오브제의 매력적 총합을 보여주는, 옷 디자인 부문의 ‘꽃’이라 할만하다. 이처럼 하나의 옷이 무대에 올려진다는 것은 대본을 분석하고 연구를 거듭하여 작품과 등장인물의 성격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캐릭터를 살려주면서, 때로는 캐릭터의 심경도 나타내야 하고, 등장인물의 신분과 그들이 살던 시대상도 담아내면서 관객의 눈까지 즐겁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 사명감까지 짊어져야 한다. 무대 의상 디자인은 등장인물에 대한 분석뿐 아니라 작품 전반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유다. 무대 위의 옷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내용은 물론 무대의 형태와 색채가 이야기와 어우러져 작품을 잘 설명해 주는 요소가 되어야 한다. 게다가 배우의 신체적 특징과 움직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연기할 내용은 물론, 배우가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캐릭터의 움직임도 따로 익혀두어야 한다. 특히 무용가를 위한 무대 의상은 춤마다 고유한 동작들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즉 무대의상 디자이너는 의상 디자인, 의상 제작, 무대 디자인, 조명 디자인을 포괄한 무대와 연극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시대별 예술, 건축, 음악, 문학 등에 나타난 관습, 문화, 생활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도 필요하다.  

 

이러한 세세한 요건들을 모두 충족하면서 풍부한 지식과 실력으로 차이를 드러내며 미국 무대 의상계에 독보적 존재로 우뚝 선 이가 바로 한국계 미국인 의상 디자이너 윌라 김이다. 지난 2016년 향년 99세로 타계한 윌라 김은 ‘윌 로저스 폴리스’와 ‘세련된 숙녀들’로 뮤지컬계 최고상인 토니상에서 최우수 의상 디자인상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70여 년의 경력 동안 네 번 후보에 올랐다. ‘죽은 용사를 위한 노래’와 ‘샌프란시스코 발레:템페스트’로 TV 및 예술 부문 최고상인 에미상도 받았으며, 2007년에는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이자 의상 디자이너로서는 유일하게 ‘무대예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랐고, 2008년에는 대한민국으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수여 받았다. 오랫동안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의상을 담당하던 윌라 김은 90세에 2007년에 올린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의상 200여 벌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녀의 길고 다채로운 경력을 살펴볼 수 있는 최초의 회고전이 공연 예술을 위한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The Wondrous Willa Kim: Costume Designs for Actors and Dancers’라는 타이틀로 열리고 있다. 이 회고전은 윌라 김 작품 세계에 대한 유일한 단행본, ‘윌라 김의 디자인'(2005)의 저자인 의상 디자인 역사학자 바비 오웬이 큐레이팅했다. 이 전시에서는 듀크 엘링턴의 ‘세련된 숙녀들’와 ‘윌 로저스 폴리스’, 그리고 줄리 앤드류스의 마지막 주연작이 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빅터/빅토리아’ 등의 작품을 포함한 다양한 의상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초기 디자인부터 마지막 작품에 이르기까지 윌라 김은 색과 질감의 특별한 조합을 통해 기발한 의상을 만드는 데 재능을 발휘했다. 한국인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김은 LA에서 화가를 꿈꾸며 훗날 칼아츠가 된 곳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 유명 무대의상 디자이너 라울 펜 뒤부아 밑에서 일했다. 졸업 후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에 입사한 그녀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먼저 이름을 알리며 본격적인 무대의상 디자이너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뉴욕으로 건너온 그녀는 ‘사랑의 레드 아이’, ‘굿타임 찰리’ 등 수많은 브로드웨이 작품의 의상들을 디자인했다. 엘리엇 펠드, 마이클 스뮌 등 유명 안무가와 무용수, 발레 히스파니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같은 제작사, 오페라 공연, 피겨 스케이터, 심지어 연극, 영화, TV 프로덕션의 의상까지 다양한 분야의 의상 디자인을 맡았던 그녀의 작품은 늘 찬사를 받았다. 심지어 슈퍼볼 광고를 위해 샐러드를 테마로 한 드레스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윌라 김 작품 세계의 놀라운 스펙트럼과 독창성, 그리고 섬세한 아름다움이 담긴 그녀의 다채로운 작품들과 스케치를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8월 19일까지 계속되는 윌라 김의 이번 회고전을 통해 그녀의 작품들이 무대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음을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주소_ NYPL for the Performing Art, 40 Lincoln Center Plaza New York, NY 10023

웹_ nypl.org/ev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