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조금 더 꼼꼼하게 스튜디오 이곳저곳을 살폈다. 식물들에 충분히 물을 주고 그러지 않아도 살균 세정 티슈로 반복해서 닦아내던 책상들을 한 번 더 닦아냈다. 히터를 끄고 다시 한번 뒤돌아봤을 때, 한눈에 들어오는 소박한 스튜디오를 천천히 눈에 담았다. 그러고도 마음이 허전해 문을 잠그러 가는 나의 발걸음이 힘없이 늘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고작 몇 주 만에 일어난 일이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그동안 우왕좌왕하던 마음이 정리가 되면서 엄마들과 아이들의 이야기로 생기 넘쳤던 나의 미술치료 스튜디오, Hope and Art Studio 또한 굳게 문을 걸어 잠갔다.
모두의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워킹 맘들은 일과 육아와 살림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병행해야 하는 전에 없던 역사를 날마다 써야 했고,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던 엄마들도 그들의 개인적인 일과 스케줄이 뿌리째 흔들렸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당장의 렌트비와 생계를 걱정했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연봉 삭감이나 정리해고를 두려워했다. 주변에 형제, 가족, 친척들이 있든 없든 간에 사회적 거리두기 제도를 통해 우리는 소규모 핵가족의 구성원들끼리의 역동을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많은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그러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불안은 평등하게 찾아왔다. 가족생활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들이 정작 가족과 틈이 없는 시간을 함께하게 되니 경험하게 되는 갈등과 분쟁도 고립감과 불안감만큼이나 커져갔다.
세상은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모양과 속도로 시시각각 위험을 안고 변화했지만 정작 격리된 우리 집 내부는 폭풍의 핵처럼 고요했다. 매일 울려 대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메시지도 대충 확인하거나 넘겨버리고 최소한의 뉴스만 확인하며 사니 세상은 정말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워낙 긴장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시작해서 그런지 홈스쿨링 하는 아이들과 재택 근무하는 남편과의 하루하루는 그런대로 지낼 만했다. 세상에 서로 만나지 않고도 배움이라는 활동은 원활하게 진행되었고 아이들은 심지어 원격 플레이 데이트를 하면서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미래의 삶을 원래 자기 것이었다는 듯 잘 살아내고 있었다. 적어도 첫 이주는 그랬다. 실제로 아무도 이 주 만에 코로나 사태가 잦아들 거라고 생각지 않았고 자가격리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나는 자가격리 기간 동안 SNS를 통해 많은 엄마들과의 소통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마이 아메리칸 차일드’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미국에서 사는 한국 엄마들을 위한 방송을 하고 있었지만 조금 더 거리감 없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과연 다른 엄마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대부부의 엄마들은 잘 지내는 듯 보였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창의적인 놀이 활동들을 제공했고 자의 반 타의 반이긴 해도 가족의 삼시 세끼를 부지런히 챙기며 각자 있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듯 보였다. 적어도 인스타그램의 반듯한 정사각형 창으로 보이는 보통 엄마들의 삶은 그렇게 보였다.
물론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개개인의 이야기에는 다양한 어려움과 슬픔, 실망, 좌절과 두려움이 있었을 것을 안다. 우리의 삶이 다른 이에게 보이는 모습과 실제로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모습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 또한 상담사로서 수없이 확인해 온 사실이다. 물질적 자원과 심리적 자원이 풍부한 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시기를 비교적 잘 넘길 수 있겠지만 그 두 자원 중 하나, 혹은 둘 다 부족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조차 막혀버린 엄마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 사는 것 자체가 문화적 고립이었던 엄마들, 가족과의 갈등으로 마음이 지쳐버린 엄마들, 자식의 교육적 성공을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달리기만 했던 엄마들, 다른 엄마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아 힘들었던 엄마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작 가족을 돌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죄책감에 휩싸였던 엄마들…우리 주변에 이 다양한 엄마들은 격리와 고립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내가 Hope and Art Studio를 운영하면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선물할 그림책 스토리를 창작하고 백지에 연필과 붓 자국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순간들이었다. 양육 서적에서 강조하는 완벽한 이론과 조건들에 대입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고 수용하는 과정’이 엄마들에게는 더 중요하다. 세상이 말하는 그림과 글 솜씨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이야기와 그림을 만들어 보는 시간은 자신 안에 이미 존재하는 ‘충분히 좋은 엄마’의 조건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시간들이었다.
어쩌면 다양한 엄마들에게 이번 자가격리의 시간은 그렇게 ‘ 있는 그대로의 나’를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언어와 문화의 이질감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24시간 옆에서 부딪혀야 하는 아이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은 아니었을까? 성취와 성공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리던 것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 이야기하기에 바빴던 모임들이 없어지니 남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 내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게 되는 시간은 아니었을까? 일에 치여 돌볼 틈이 없었던 가족들을 위해 차리는 삼시 세끼가 힘들어도 만족감이 차오르는 시간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대로 마냥 놀아도 괜찮은가,’ ‘우리 아이들이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수많은 고민과 불안에 잠식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걱정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사회와 이념들이 정해 놓은 ‘좋은 엄마 되기’ 기준들에나를 맞춰가느라 숨이 차고 지쳐 있던 당신이라면 이번 격리 기간을 통해 조금은 남이 기대하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기를 소망해본다. 코로나 사태가 해결이 되고 나면 우리의 내일은 예전의 것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바빠질 것이고, 환경은 인간에 의해 계속 파괴될 것이다. 우리는 철저한 이해관계와 돈 벌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나를 맞추며 살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또다시 그들의 꿈이 아닌 부모의 꿈을 이행하기 위해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자가격리와 사회적 고립이 조금 더 길어지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시간이 천천히 가고, 자연이 되살아나며, 사람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걱정하며 안부를 묻고, 소외된 사람들이 이 평등한 고립 속에 오히려 더 외롭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시간 개념 없이 자유롭게 노는 그런 모습이 참 그리웠다.
“우리는 현실에 반대하지 않고 현실을 인정하고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현실을 살 수 있다. 혁명은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희진-
• 미술치료 석사 과정 졸업
• Chicago Children’s Advocacy Center 성폭행 피해 아동 치료
• 한국GS Caltex Social Contribution Project와 서울문화재단 미술치료사
• 뉴저지Center for Great Expectation 약물중독 엄마 치유
• 뉴저지 Hope and Art Studio 미술치료 스튜디오 설립
• 이중문화권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만들기와 상담 프로그램들을 진행 중
<마이 아메리칸 차일드> 팟캐스트 진행 중
www.hopeandartstudio.com
글 Jiwon Yoon, ATR-BC, LCP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