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줄리아나가 앞을 잘 보지는 못해도 남다른 의지를 지닌 아이라고 이내 알아볼 수 있었다. 아이는 한 번 하겠다고 생각한 일은 모두 도전했고, 또 용케도 해냈다. 자전거, 스케이트, 짐내스틱, 승마…. 아이는 하고 싶은 걸 선택하고 실행하는 데 일말의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도 결국은 다 해냈다. 줄리아나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사진을 찍어 학교 역사를 기록하는 ‘히스토리언’에 지원하겠다 했을 때 특히, 아버지는 말렸다. 엄마에게 대놓고 걱정을 할 정도였다. 혹여, 되지 않았을 때 아이가 받을 좌절감을 우려해서였다. 그런데 줄리아나는 단 한 명의 히스토리언이 되고 말았다. 나아가, 선생님 조언으로 자신을 도와줄 친구가 정해지자 이렇게 말했다.
“제가 히스토리언이에요. 도움을 받더라도, 제가 계획하고 제가 생각한 대로 사진을 찍고 진행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줄리아나는 스스로 하는 것과 도움받는 것의 경계, 그리고 책임감과 감사함의 경계를 지혜롭게 구분할 줄 아는 아이였다. 그랬기에 도와주는 친구하고도 더없이 신나게, 즐겁게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다. 부모에게 그건 아주 뜻깊은 일이었다. 줄리아나를 인정하고 도와주는 손길이 고맙게도 많았지만 그 어떤 도움도 미치지 못하는 영역은 분명 있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는 오로지 줄리아나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주 큰 글자를 눈 가까이 대면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정도라 주로 점자에 의지하기에, 공부할 때 줄리아나는 비장애인 학생에 비해 3배 정도의 시간을 요한다. 오로지 손끝으로 자료의 모든 내용을 이해해야 하기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수학은 공식을 넣어서 종이에 한 가득 풀어야 하고 과학 같은 경우도 그래프, 도표를 이해해야 할 때가 많지요. 그런데 줄리아나는 머리 속에서 그걸 계산하고 풀어내는 것 같아요. 그러려면 보통의 의지와 집중력으로는 안 되잖아요. 옆에서 보면, 놀랍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지만 안쓰러울 때가 더 많죠.”
명실공히 세계 최고 명문 대학인 하버드와 프린스턴에서 모두 입학 허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고조되지 않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 말을 할 때 가늘게 떨렸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굳이 큰 행동으로 보일 필요가 없는 지도 모른다. 부모로서 할 일은 ‘엄마가 다 했다’고 본인이 할 일은 ‘본인이 알아서 다 했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눈가가 조용히 붉어졌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줄리아나는 어린 시절, 신나게 놀았던 기억 속에는 늘 아버지가 함께 있었다며 웃었다.
줄리아나는 이제 대학 기숙사로 가면서 집을 떠날 참이다. ‘혼자’가 아니라 ‘홀로’가 될 참이다. 낯선 세계를 앞에 두고 있다. 그 형체가 분명히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줄리아나는 위축되고 두렵기보다는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부푼다. 이제까지 줄리아나가 두드린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답을 해 주었다. 어느 식당에 갔다가 시각장애인 안내견인데도 개를 들이지 못한다는 참담한 반응을 얻었을 때처럼, 세상이 주는 대답은 줄리아나가 원하는 방식인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친구들과 시각 장애인을 돕는 ‘VITA(Visually Impaired Total Access)’ 클럽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기금을 모아 메기를 만나게 해 준 ‘가이딩 아이즈 포 블라인드)’에 몇 천불의 기부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서너 명으로 시작한 회원이 지금은 50여명으로 늘면서 줄리아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성장하고 있다. 세상이 보인 예기지 못한, 혹은 고무적이지 못한 반응에서 줄리아나는 가치있는 대답을 이끌어낸 것이다.
“제가 받지 못한 걸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저는 받지 못해서 받은 게 더 많고, 받은 것에 집중하죠!”
그렇기에 줄리아나는 스스로 하지 못한다고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같이 트랙팀에 있으면서 스스로 달리기를 못한다고 생각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함께 뛰었다. 그 친구와 함께 타운에서 주최한 ‘5K’ 달리기 대회에 출전했다. 방향을 인도하기 위해 그 친구가 줄리아나와 끈을 잡고 뛰었는데 두 사람은 나란히 2등, 3등을 차지했다. 이제 스스로 달리기를 못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그 친구를 보면서 줄리아나는 1등한 것보다 기뻤다.
줄리아나는 이런 기쁨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이 가진 어려움은 ‘장애’가 아니라 다른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자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그저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분일 뿐-. 이런 줄리아나는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어떤 이유로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그 어려움을 덜어내거나 극복할 수 있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 그들을 도움의 원천과 이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워싱턴에서 일하고 싶다. 선거 시스템이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나라, 미국에 살고 있는만큼, 정치학을 공부해 편견과 불평등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끝내기가 아쉬운 인터뷰를 마치고 작별 인사를 하다가 결국은 ‘사회적 거리 유지’를 어기고 줄리아나의 손을 잡고 말았다. 하네스를 하지 않아 ‘일 하지 않는 시간’ 속에 있게 된 메기가 앞 뜰을 지그재그로 뛰어다니다 다가왔다. 그 뒤쪽에서 줄리아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서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올해 들어 유난히 따뜻한 햇살이 눈 부시게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