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지원 미술치료사
사랑을 연구하는 이스라엘 사회 학자 에바 일루즈는 현대성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자율성과 폭넓은 선택을 꼽았다. 1960년대 이후 여성운동과 산업화는 미국의 많은 여자들에게 공부를 하고 직업을 선택하며 그만큼 늘어난 정치, 경제, 문화 활동의 자유를 누리게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결혼의 시기는 점점 늦춰졌고 그만큼 아이를 갖는 시기도 늦춰졌다. 물론 아이를 갖지 않기로 선택하는 여성들 또한 늘어났다. 세상에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여성의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임무임을 강조하는 수많은 메시지들이 있지만 여성들은 더 이상 그런 압축적이고 강압적인 메시지에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모성을 강요당하게 놔두지 않는 듯하다.
미국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 고작 백 년 전이며 그것도 백인 여성에게만 제한된 투표권이었다. 모든 인종의 여성들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고작 반세기이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억압되어 왔던 여성에 대한 제한적이고 고정적인 권리와 자유는 지난 반세기 동안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듯 한꺼번에 흘러들어왔다. 매우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변화이지만 이런 변화의 물결 안에서 정작 기혼 여성들은 또 다른 종류의 혼란을 겪는다.
성공한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따르는 ‘훌륭한 엄마와 아내’ 타이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여자들의 사회적 성공 이면에는 엄마와 아내로서의 역할도 완벽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남자들의 사회적 성공에 그의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자질을 함께 평가하는 일은 드물다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저하게 드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여자에겐 아직도 근대의 여성과 현대의 여성에게 요구되는 자질, 순종적인 아내, 현명한 엄마, 사회적 성공, 그리고 21세기 인간으로서의 필수 능력인 자아실현까지 늘어나는 자유와 권리와 함께 그만큼의 모순적 의무와 역할도 함께 늘어난 셈이다.
자신이 떠나온 시대의 한국의 관습을 여전히 고수하는 이민 일 세대 어르신들께 아직도 ‘여자라면, 아내라면, 엄마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조언은 경험과 연륜에서 흘러나오는 지혜의 말로 들리기보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권위의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와 반대로 비교적 진취적인 여성관으로 맞서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되바라지고 예의 없는’ 소리로 허공에 흩어지기도 한다. 여성들의 이러한 시대적 혼란은 미국 안의 한인 이민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더욱더 첨예하다. 옳고 그름이 없는 이슈라고 보지만 대게는 이민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언어와 문화적 barrier로 인해 생겨난 그들만의 조금은 독특하고 복잡한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 복잡한 작은 사회에서도 워킹맘과 전업 맘 사이의 괴리감, 시어머니가 며느리 사이의 갈등,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의 거리감, 그리고 한인 엄마의 아이를 키우는 자질에 대한 끊임없는 평가가 가득하다. 여자들끼리의 비교와 편견은 언제나 있어왔을 수 있고 꼭, 이민 사회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앞서 얘기했듯, 복잡한 문화와 언어, 관념이 뒤엉킨 이곳에 이런 비난과 편견의 색은 더 짙을 수밖에 없다. 너무 다양하고 복잡한 기준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줄 곳 ‘원래 이곳에 있었던 자’들이 아니라는 프레임 안에서 오랜 위축을 경험해왔다(물론 미국의 어느 누구도 이 땅의 원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들은 적다). 이민자들의 입장이라는 것이 나라의 정치적 분위기에 따라 변화를 겪어야 하고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의 ‘눈치 보기의 피곤함’은 때로는 적이 아닌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쏟아내는 것으로 대처되어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역동 속에서 여성은 여성에게 공감하고 위로하기도 하지만 쉽게 비난과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엄마들이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하고자 하는 일을 반대당하거나 지레 포기하는 일들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네트워킹의 부재와 언어장벽은 엄마들을 더 무력하게 만든다. 무력해지지 않으려고 아이의 교육과 성장에 모든 걸 쏟아붓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마들은 알고 있다. 아들딸 구별 없이 받아온 교육과 꿈의 기회들이 단지 내 아이의 성공을 위한 자원으로 쓰인다는 것의 씁쓸함을… 단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가족 이전에 ‘나’를 꿈꾸고 알아갈 권리, 단지 아내와 엄마라는 타이틀로만 불리지 않을 권리 그리고 육아휴직은 일하는 엄마뿐만 아니라 돌봄 노동에 지친 엄마들에게 당연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같은 여성들에게조차 그런 생각이 부정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담을 하다 보면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고립감과 혼란스러움을 많이 접한다. 아이를 향한 지나친 부담감과 자신을 향한 자괴감과 가족 혹은 커뮤니티 안에서의 좌절은 개인의 심리와 어린 시절 상처에서만 원인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여자에게 너무나 가혹한 판단이다. 이민 사회의 역사와 사회 구조, 그 안에 군림하고 있는 전통이라고 포장된 오만과 편견, 무엇보다 그 좁은 세상 안에서 클래스를 나누고 우위를 가리고자 하는 권력 앞에서의 무력감 등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란 나라 안에서 여성의 인권은 꾸준히 성장했고, 직장과 결혼 제도 안에서의 자율성과 평등에 대한 인식도 함께 높아졌다. 여성들에게 마음껏 꿈꾸고 공부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이민 사회의 엄마들에게 얼마나 체감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엄마가 됨으로 인해 선택이 제한되고 자율성과 평등 대신 여전히 요구되는 여성으로서의 고정된 성 역할을 수행하는 수많은 여성들 사이에서의 더 이상의 편견과 분열은 없었으면 좋겠다.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기에도 모자란 이 소중한 시간을 편 가르는 것으로 낭비해버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미술치료 석사 과정 졸업
•Chicago Children’s Advocacy Center 성폭행 피해 아동 치료
• 한국GS Caltex Social Contribution Project와 서울문화재단 미술치료사
•뉴저지 Center for Great Expectation 약물중독 엄마 치유
•뉴저지 Hope and Art Studio 미술치료 스튜디오 설립
•이중문화권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만들기와 상담 프로그램들을 진행 중 <마이 아메리칸 차일드> 팟캐스트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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