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심지아
나한테는 가족 외에 가족이 한 명이 더 있는데, 중학교 일학년때부터 사십 중반이 되가는 지금까지 매일 연락하는 친구다. 우리는 둘 다 엄마이고 부인이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 때나 결혼 전에는 단둘이 여행도 자주 가고 만나서 재미난 일도 많이 했는데 결혼, 출산, 육아를 하면서부터는 만나면 일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었고, 같이하려는 것들도 아이들 상황이나 스케줄 때문에 걸리는 것들이 많아졌다. 올해 여름에는 한국에 가지 않는다 했더니 친구가 자기 혼자 뉴욕에 와서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자기가 딸을 데리고 캘리포니아 시댁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내 친구는 우리 집에 머물면서 식구들 걱정 말고 둘이 시간을 보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딸과 남편은 2주간 캘리포니아로 떠나고, 나는 한국에서 도착한 친구를 JFK에서 픽업했다.
친구를 픽업하기 전날, 나는 냉장고를 싹 비워버렸다. 그리고 김치 냉장고에 남은 반찬들을 본 냉장고로 옮기고 김치 냉장고를 술 냉장고로 용도 변경했다. 이제부터2주간, 우리는 픽업 시간 애데렐라도 아니고, 저녁 식사 거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며, 대낮에 일어나고, 도시락 간식 등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 게으르게 하염없이 누워있어도 괜찮고, 낮부터 취하도록 술을마셔도 되며, 식구들 아침을 챙길 필요가 없으니 밤 늦게까지 놀다가 잘 수 있다. 친구에게 앞으로 열하루 간 뉴욕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더니,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되는대로지내고 싶다고 했다. 부엌을 봉쇄하고, 끼니는 배달 음식과 외식으로 해결했다. 물 대신 종일맥주를 마시고, 다리 아프다고 징징대는 애들 없이 뉴욕을 되는대로 돌아다녔다. 걷다가 힘들면바에 앉아 낮술을 마시고, 갤러리들을 돌아보고, 쇼핑하고 싶으면 시간 보지 않고 여유롭게 쇼핑하고, 모든 계획을 즉흥적으로 세우며 다녔다. 교육이나 일 이야기 같은 것 말고, 유치한데이트 쇼를 보면서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며 여고생 때처럼 깔깔대고 웃었다. 중간중간애들이 보고 싶으면 영상 통화도 하고, 남편들이 보내주는 사진을 보았다. 딸 하진이는 뉴욕서경험할 기회가 잘 없는 미국 교외의 일상을 체험하면서 나름 재미있게 보내고 있었다. 사촌 동생과 고모네 앞마당의 레몬을 따다가 레모네이드 스탠드를 차려 14불이나 벌었다고 했다.
고모네가 회원권이 있는 서버브식 초대형 피트니스 클럽에 가서 수영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손잡고 타깃에서 장난감 득템도 많이 했다고 했다. 서로가 잠시라도 옆에 없으면 큰일 날 것같았던 나와 하진이는 떨어져서도 얼마든지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열하루의 방학이 끝나고친구는 가족 곁으로 돌아가고, 하진이와 남편을 픽업하러 가는 길이 나도 즐거웠다. 친구가 떠나자마자 아이도 너무 보고 싶고 고마운 남편도 그리웠다. 늘상 너무 붙어있을 때는 나를좀 가만 놔둬 줬으면 했는데, 이제부턴 매일매일 딱 달라붙어 있어야지.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서로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건강하게 여겨졌다. 방학은 학생만을 위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일년에 한 번쯤 엄마에게도 방학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