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좀 내주오, 갈 데가 있소

 

글 Windy Lee 에디터

 


뮤지컬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처럼 음악이 대사와 모든 장면을 이끄는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 대중들이 생각보다 많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거나 부자연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으로 보인다. 모든 대사가 노래로 된 오페라 역시 비슷한 이유로 기피하는 관객들이 꽤 있다. 그런데도 오페라가 오랜 세월 동안 오히려 관객을 늘려가며 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오페라가 선호되지 않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음악이란 매개체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인간의 다양한 감정도 더욱 극대화하여 보여줌으로써,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건 아닐까 생각된다. 거기에,  관객의 시각과 청각까지 사로잡는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무대는 덤일 것이다. 클래식 음악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아는 만큼 보일 거란 믿음으로 음악이라는 양날의 검을 쥔 오페라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뜬금없이 오페라가 보고 싶어 러쉬 티켓을 겨우 구해 설렘을 안고 링컨 센터로 향했던 적이 있다.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화려한 분수대 뒤로 금빛 샹들리에와 곡선의 붉은 계단, 그리고 샤갈의 초대형 벽화인 “The Triumph of Music”과 “The Sources of Music”이 어우러져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는 그곳을 휘감은 공기마저 로맨틱함, 그 자체였다. 오페라 하우스만큼 우아한 자태의 관객들 사이에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자, 앞에 놓인 개인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오페라 내용을 영어 자막으로 통역해주는 모니터임을 깨달은 순간 왠지 모르게 피곤함이 몰려오는 듯했다. 입이 떡 벌어지는 화려한 무대와 의상도, 훌륭하고 멋진 베테랑 배우들의 노래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짙어지는 나의 내적 한숨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더불어 열려버린 판도라의 상자처럼, 오래전 오페라 보기를 중단했던 이유까지 기억이 났다. 무대에도, 대사에도, 모두 집중하고 싶던 그때의 나는 무대와 스크린을 열심히 눈으로 오가며 이탈리아어나 독일어, 혹은 불어 대사로 채워진 무대를 한글 자막으로 파악하다 지치고, 지루해하다 결국 오페라에 대한 흥미까지 잃어버렸던 걸로 기억한다. 시간이 많이 흘러, 뉴욕에서 최정상의 오페라 공연을 보고 있음에도, 이탈리아어 노래에 영어 자막이라는 이중고까지 겹쳐 빠르게 지쳐가던 내게 익숙하고 거대한 희망의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수많은 광고와 스포츠 행사의 배경 음악으로 쓰이던 “개선행진곡”이었다. 갑작스럽게 선물처럼 날아든 전율과 희열 속에서 거장 베르디의 대작, <아이다>를 무지하게 마주한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오페라가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오페라는 이탈리아에서 1500년대 말, 후기 르네상스 시대에 그리스 가극 형태로 처음 시작되었다.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의 인문주의를 부활시킨 운동으로, 중세 암흑기에 갇혀 있던 인류의 찬란한 이성과 감성이 눈을 뜨면서 건축, 회화, 조각 분야에서 찬란한 성과가 나타났던 시대다. 시기적으로 조금 뒤처졌지만, 음악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오페라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다프네>가 음악과 연극과 춤이 어우러진 고대 그리스극을 되살리려던 귀족들과 예술가들에 의해 탄생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최초의 오페라는 기록으로만 남아있을 뿐 악보가 전해지지 않아, 그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오페라 Opera는 라틴어로서 작품이라는 뜻을 지닌 ‘opus’의 복수형인 ‘작품들’을 의미한다.  

어원의 의미대로 오페라는 여러 음악이 한데 모인 ‘작품들’이기도 하고, 음악, 문학, 연극, 미술, 무용 등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합쳐진 종합 예술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페라는 대사에 음악을 붙여 성악이 중심을 이루는 극적 작품이다. 주요 특징으로는 모든 대사가 ‘레치타티보’라 불리는 노래로 되어 있으며, 부르는 방법에 따라 독창인 아리아, 중창, 합창 등으로 구분된다. 오페라 가수들은 마이크 없이 성량과 기교로 내용을 전달하며, 이탈리아에선 가수 목소리 자체의 아름다움인 미성과 기교적 완성도를 강조하는 벨 칸토(Bel Canto)란 창법이 특히 발달했다. 오페라에 사용되는 모든 음악은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에 의해 라이브로 연주되는데, 극 중 분위기 묘사 혹은 강조 등 다양한 기능으로 오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오페라 도입부인 서곡 혹은 전주곡처럼 오롯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만 있는 오페라들도 적지 않다. 오페라 대본의 경우, 문학 작품, 역사적 사건 및 인물들을 바탕으로 문학적으로 구성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대사에 음악을 붙인 성악 극인 만큼 오페라는 대본 전체가 다 작곡되어 있으며, 보통 규모가 큰 오페라 전용 극장에서 상연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는 자코로 페리가 작곡한 <에우리디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클라우디아 몬테베르디가 1607년에 작곡한 <오르페오>는 오페라다운 면모와 잠재성으로 인해 진정한 최초의 오페라로 평가되었으며, 당시 이탈리아 전역에서 대대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1800년대에 들어서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현재까지 세계 3대 오페라 작곡가로 꼽히는 베르니, 푸치니, 바그너에 의해 오페라는 마침내 꽃을 피우게 된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보통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비제의 <카르멘>, 푸치니의 <라 보엠> 등을 세계 3대 오페라로 꼽는다. 이외에도 푸치니의 <토스카>, 베르디의 <리골레토>와 <아이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와 <마술피리>, 도나제티의 <사랑의 묘약>, 그리고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등은 세계 3대 오페라와 함께 오페라 입문자라면 꼭 한 번 볼만한 작품들이다. 언급된 작품 중에서 <토스카>, <사랑의 묘약>, <라보엠>, <아이다>는 맨해튼 링컨 센터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4월에 상연 예정이므로, 오페라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가깝고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또한, <리골레토> 중 “그리운 그 이름”과 “여자의 마음”, <카르멘> 중 “하바네라: 사랑은 들새와 같은 것”,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 <라 보엠> 중 “그대의 찬손”, <라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헨델의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너무나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들이다. 이 아리아들을 찾아 감상하면서 흥미가 생기는 가사나 마음에 드는 곡이 있다면 내용을 찾아 숙지한 후 오페라 관람에 도전해 보자. 생각지도 못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음악, 특히 오페라는 청각과 시각의 사로잡힘에 더해 공감대를 통해 그 감동의 폭이 커질 수 있는 예술이라 믿는다. 그 공감대의 바탕은 극 중 인물에 대한 관람객의 기본적 이해가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정현종 시인이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 했는데, 아마 오페라는 희로애락이 담긴 인류의 삶 전체가 내게 오는, 한 사람의 일생 그 이상의 어마어마한 일이 내게 오는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Photo courtesy of The Metropolitan Opera Arch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