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의 아메리칸 드림 실현을 돕는
뉴저지 출신 신세대 정치인
앤디 김(Andy Kim) 연방 하원의원
한인 이민사회에서는 한 세기가 넘는 이민의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걸출한 정치인을 많이 배출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다. 1986년 김창준 공화당 전 의원이 정계 진출한 이후로는 거의 20년 이상 한인 정치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 2018년 마침내 20년의 긴 공백을 깨고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이 탄생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겠다는굳은 결의로 당시 뉴저지 3지구에 도전해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었던 앤디 김의원! 특히 그는 민주당으로서는 첫 당선 사례가 되어 한인 이민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한 의미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미 전역에서 가장 치열했던 선거구에서의 승리였기 때문에 그의 당선은 김의원 한 개인의 기쁨이 아니라 미주지역 모든 한인 이민자들의 승리이자 기쁨이었다. 뛰어난 언변과 소탈하고 진솔한 면모로 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신세대 정치인 앤디 김의원. 맘앤아이는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치인으로서의 지난 1년 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글 최가비 사진 앤디 김의원 제공
한인 이민자 부모를 둔 앤디 김의원은 펜실베이니아 주에 인접한 뉴저지주 말튼(Marlton)에서 자랐으며, 시카고 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 곳에서 성장했다. 모든 가족이 다 수재라는 풍문이 있을 정도로 김의원의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학구적인 소양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이민 1세대로 김의원의 정신적 지주이자 든든한 후원자였으며,김의원 자신이 가장 닮고 싶어했던 아버지 김정한씨는 MIT와 하버드를 거친 유전공학박사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그의 어머니 또한 뉴저지 주에서 간호사로 활동해 온 재원이다. 또한 김의원의 누나인 모니카 김씨는 예일대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의사가 되길 원했던 부친의 뜻은 따르지 못했지만 김의원 역시 스스로 학비를 벌어가며 시카고 대학을 졸업한 후 로즈 장학생(Rhodes Scholarship)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옥스퍼드 대학 시절만난 그의 아내 Kammy와 결혼해 현재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
2009년 9월 이라크 전문가로서 국무부에서 일하기 시작한 앤디 김의원은 이후 2011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의 전략 참모를 지냈고 2013~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미 국방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각각 이라크 담당 보좌관을 지냈다.
특히 2013년에는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 국가’(IS)전문가로서 오바마 행정부의 IS에 대한 폭격과 인도주의 지원을 담당하는 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앤디 김의원이 출마해 당선한 뉴저지 3지구는 유권자 65만명 중 백인이 85%이고, 한국인은 고작 300여 명에 불과한 곳으로 그의 당선은 선거에서의 승리 그 자체를 훨씬 뛰어 넘는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36세의 젊은 정치가이지만 탁월한 군사전략가로 활약해온 그의 전력을 바탕으로 한인사회는 물론 미 주류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Q 반갑습니다 의원님, 맘앤아이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앤디 김(Andy Kim)입니다. 2018년 중간 선거에서 뉴저지 제 3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어 현재 민주당 하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이민자 2세 출신으로 유치원 때부터 학창시절을 뉴저지에서 보냈습니다. 뉴저지 한인들과 맘앤아이독자들과 지면을 통해 인사 나눌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Q 의원님께서 성장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한인 1세대로 저에게는 항상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근면한 모습을 늘 보이셨으며, 삶의 여러 면에서 모범적이셨습니다. 특히 저희 부모님은 제가 자라는 동안 제가 속한 사회에 대한 공공 서비스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평생에 걸쳐 암과 알츠하이머 퇴치를 위해 연구하는 과학자와 간호사로 일하셨으며 수천 명의 사람들을 도우셨고 저는 두 분의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아마 지금 나라와 커뮤니티를 위해 일을 하게 된 밑거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Q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의회에 출마하시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요?
저는 사실 한인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성장한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한인교회에 출석하면서 한국인이라는 일체감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경험하면서 자랐습니다. 그 공동체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당파 이 전에 사람은 다 서로 같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사람들은 노력과 인내를 중히 여기는 민족입니다. 저는 우리 한인들의 그런 고매한 가치를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아왔습니다. 이후 옥스포드 대학에서 로즈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거기서 아내 Kammy를 만나 가족을 이루었으며 제가 받은 교육과 노력으로 커리어를 쌓게 되자 그 간의 과정들을 통해 얻은 것들에 대한 사회환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 전략 고문으로 재직하였고, 백악관에서 반테러 정책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의 두 아들이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 만든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공공부문에서 일하고 싶었고 그것이 제가 의회에 출마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또 나를 키워준 사회 공동체와 이민자로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게 해준 국가를 위해 싸운다고 밝혔던 선거 출마 당시의 다짐을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Q 지난해 뉴저지를 방문하셨을 때 Cliffside Park 주민들과 TownHall Meeting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클립사이드 팍이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비교적 한인이 많은 곳을 자주 다닙니다. 의회에서 일하는 코리안 어메리칸으로서 커뮤니티에 직접 참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클립사이드 팍 타운 홀 미팅은 취임 이후 첫 모임으로 한인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직접 듣고 공유하고 또 해결하기 위해 만든 자리입니다. 이 미팅에서는 헬스케어, 이민, 한반도 평화문제를 주된 안건으로 다루었으며, 뉴저지 주민들이 주신 ‘이민’에 다양한 이슈를 서로 나누며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한인 커뮤니티와의 미팅을자주 갖고 한인 정치인으로서 우리 한인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Q 작년 선거 기간 동안 한인들로부터 많은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시 정말 많은 분들이 저를 지지해 주셨습니다. 한국계 이민자의 아들이 연방의회 선거에 뛰어들어 승리를 이루었다는 것 자체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고 한인 커뮤니티의 위상을 더 높이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도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의 부모님은 자신이 속한 국가와 사회에 대한 봉사와 노력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정부를 뉴저지 의회에서 실현하고자 합니다. 지역주민들이 일상생활을 원활히 이어 나가도록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뉴저지를 비롯해 미국 전역의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최대의 관심사는 교육과 양질의 일자리입니다. 특히 고등교육과 헬스케어에 관심이 아주 높습니다. 또한 지역주민들의 의료 서비스 보장, 중소기업 창업, 국가 안보 강화, 특히 한인들에게는 북핵 대응과 한반도 평화도 큰 이슈입니다. 저의 정치인으로서의 헌신의 초점은 항상 제가 봉사하는 지역 사람들에게 있음을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러한 한국계 미국인 사회의 우선순위들에 대해 책임 있게 대응하고자 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정계에 진출해 국가와 지역 커뮤니티를 위해 일하는 일꾼으로서 한인 2세 및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우선적으로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권하고 싶습니다. 친구와 가족들에게 투표 등록과 투표를 독려하고 직접 참여하는 것이 바로 내가 속한 커뮤니티를 더욱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특히 한인 커뮤니티는 한인을 대변할 목소리가 더 많이 필요하고,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 서비스 분야에 더 많은 한인들의 진출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저를 표본으로 삼아, 차세대의 코리언 어메리칸들이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한인들 중 미국에서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시겠는지요?
미국의 유권자들은 정치 지망생 개인의 단순한 정치적 야심만을 가진 직업 정치인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목표와 지향점을 가지고 그것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하며, 입후보자가 왜 정치를 하기를 원하는지, 그 배경이 무엇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와 의지에 대한 공감이 있어야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저의 핵심 목표와 배경은 아메리칸 드림과 공공 서비스에 대한 헌신이었습니다.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꿈은 아주 위대한 것입니다. 다만 모두의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스토리를 지닌 사람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Q 이제 1년의 임기를 마치셨는데 간략한 소회와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의 계획을 나눠주시겠어요?
저는 지난 선거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 헬스케어, 사회보장 확대 등의 정책에 집중한 공약들을 내세웠습니다. 지난 1년도 그래왔듯이 앞으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이슈들을 위해 일해 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어려운 사람들을 정책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늘 한반도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북핵문제는 이 곳 한인들도 큰 관심을 갖는 문제이며 특히 북핵은 한국인과 미국인 모두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문제입니다. 당파의 실리가 아니라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저의 궁극적인 대의는 피부색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누구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조성하며 한인사회의 요구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교류하여 그 뜻을 연방의회에 잘 전달하는 역할을 남은 임기 동안도 잘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2020년 재선을 위해서도 열심히 뛸 계획입니다.
Q 여러 가지 일정들로 매우 바쁘실텐데 가정에서 아빠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발란스는 어떻게 유지하고 계신가요?
솔직히 정말 쉽지않은 일입니다. 바쁜 일정도 그렇지만 워싱턴에서 지내는 동안은 두 아이들이 무척 그립습니다. 가족이란 제가 저의 일을 잘 감당하도록 늘 영감을 주고 에너지를 주는 원천이기에 너무나 감사한데 아빠로서의 역할을 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다행히 저의 역할까지 대신해주는 저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사랑하는 아내 Kammy가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 아내 Kammy는 두 아이들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어머니로 늘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있습니다. 그런 가족이 있다는 것이 바쁜 일과 중에도 항상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