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삶의 기억 위에 현대적 미를 쌓는다
포스터 모더니즘 시대에 직업을 놓고 젠더이슈로 울궈먹는 접근이 좀 진부하다고 느껴지지만 2014년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건축가의 비율은 전체 건축가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를 봐도 형편이 낫다고는 할 수 없는, 건축분야의 남녀 성비가 4:1 정도이며, 약 28% 정도는 남성의 소득 우위 현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결과가 도출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능성을 배제당한 여성 건축가들의 억울함에는 일견 마음이 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왠지 태생적으로 건축을 하지않으면 안되었을 것 같은 한 젊은 여성 건축가를 만났다. 어느 분야든 프로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면 젠더이슈는 더이상 이슈거리가 되지 않는 것이 정설이듯, 그녀도 여성건축가로서의 어려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보인다.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을 좋아하지만 루이스 칸의 스타일에 갇히고 싶어하지 않는 신예 건축가 최수희씨와 봄비 잔잔히 내리는 아침, Tenafly의 Cafe Angelique 에서 마주 앉았다.
인터뷰 최가비 에디터, 사진 권보준 작가

한때는 기차역이었다가 1960년부터는 기차역의 역할을 다하고 미장원으로 탈바꿈했던 이 곳은 이제 운치를 지닌 카페 안젤리크로 변신해 Tenafly의 한 명소가 되었다. 건축물이 원래의 소임을 다하고 다른 용도로 전환될 때 이전에 가졌던 원형의 정서가 곳곳에서 스물거리는 느낌을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기차를 타기위해, 또 내리기 위해 이 곳을 서성였을 무수한 사람들을 잠시 생각했다. Brick, What do you want to be?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칸이 그의 강연 중에 한 말로 알려진 ‘벽돌아, 너는 무엇이 되고싶니?’ 이 문장은 건축물의 외관에만 국한되어있는 일반인들의 시선을 그 건축물에 담겨있는 보이지않는 건축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건축가(建築家)를 조영가(造營家)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터뷰의 첫질문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건출일을 하는 최수희입니다. 저는 한양대학교 건축학과와 미시건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2012 년부터 뉴욕으로 옮겨 NHDM, Ten to One, Andrew Berman Architect 사무실에서 건축, 인테리어, 전시 등의 다양한 실무 경력을 쌓은 후, 2016 년부터 정대건과 함께 JeongChoiWorks 라는 이름으로 작업을 시작했으며, 도시와 건축에 대한 관찰과 연구를 바탕으로 책 , 전시, 설치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빌려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최근 프리랜서로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건축에 관심을 갖게되신 특별한 동기가 있으셨나요?
아무래도 건축을 전공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어릴때부터 아버지를 보면서 건축이라는 직업에 친숙해졌구요. 그리고 그림그리기에 나름 소질이 있었던 점, 또 수학을 좋아하다보니 나의 장점을 발휘할수 있는 직업이 건축이 아닐까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가만 돌이켜보면 어릴적 어머니께서 재활용 박스를 모았다가 주시면 그걸 이용해 집을 짓고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어려서부터 막연하게나마 꾸어온 꿈이었고 그걸 지금까지 유지해 왔네요.
진부하지만 젠더문제를 좀 거론해야할 것 같은데,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건축을 한다는 것, 많은 제약이 있지않던가요?
한국과 미국의 차이를 좀 말씀드리면, 한국은 건축학과가 공학대과에 속해있어서 마치 금녀의 구역처럼 느껴지는 사회적 인식을 경험했던 반면, 미국에서는 미대에 속해있기 때문에 여학생들의 접근이 훨씬 용이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여자라서 어렵다, 안된다라는 몇가지 제한적 이유 이면에는 여자이기 때문에 유리한 점도 있다는 가능성도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젠더가 큰 문제는 아니었구요, 편견을 깨려고 애쓰기보다는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장점을 발현할 수 있다는 긍정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최수희 건축가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Michigan University Master of Architecture NHDM, Ten to One, Andrew Berman Architect, 프리랜서
www.Jeongchoiworks.com
instagram.com/jeongchoiworks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는 누구인지, 어떤 점과 이유로 좋아하는지요?
사실 어떤 건축가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답을 하기가 조금 주저스러운데요, 왜냐면 제가 누굴 좋아한다고 하면 제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바가 그 사람의 스타일로 제한되어 버릴 수 있거든요. 그런점을 감안해서 말씀드리면,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축가는 루이스 칸(Louis Kahn)이라는 건축가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이자 예일대학과 유펜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분인데, 흔히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분이시죠. 전통 건축에서 모티브를 얻어 창의적인 현대 건축으로 승화시키는, 전통과 혁신을 함께 실현시킨 건축가로 알려져있어요. 타고난 예술적 감각과 경험, 연륜을 바탕으로 건축물의 전체적인 조화는 물론이고 주제가 선명하면서도 공간에 집중하게 하는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죠. 제가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자하 하디드(Zaha Hadid)라는 건축가도 소개할만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들어서면서 해체주의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꼽을 수 있는데요, 모더니즘이 기본에 충실한 이성적,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면, 해체주의는 그에 반하는 탈형식주의로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소재나 독창적 기법,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유로운 건축양식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자하 하디드는 한국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건축한 분인데, 이 DDP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완공한 유작의 의미까지 더해져 왠지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축가죠. 세계에서 몇 안되는 여성건축가 중 한사람이구요.
건축가의 아이덴티티는 대부분 건축물의 형태를 통해서 알 수 있을텐데요, 최수희씨 작업의 특징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직 제 스타일을 특징하기엔 건축가로서 나이도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더 다양한 작업에 참여하고 경험이 축적되면 뭔가 선명해지는 것이 있지않을까 생각해요. 아직은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며 실무를 해야하는 형편이라 제가 저만의 스타일을 고집하거나 내세우기는 쉽지않구요. 우선 JeongChoi Works 라는 이름으로 작업하면서 전시와 설치, 리서치 등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실험적이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풀어나가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고, 특정한 주제에 국한하지 않고 평소에 관심있었거나 재미있을 것 같은 일들을 찾아서 다양한 방법으로 작업하며 공부하고 있어요. 사실 요즘 제 건축의 아이덴티티에 관해서 질문하시는 분들을 가끔 만나는데요, 그래서 저도 나름대로 고민을 해봤어요. 저는 새로운 건물을 새롭게 건축하는 것 보다는 그 건물이 원래 갖고있던 고유의 것을 그대로 보존, 유지하면서 현대감각에 맞게 재해석해서 새로운 Taste를 줄 수 있는 건물을 만들고 싶더라구요. 그런 방향으로 제 아이덴티티를 빌드해보려고 해요.
좋은 건축을 위해 건축가는 어떤 고민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우선 건물은 대개 사람을 위한 것이잖아요. 그 건물을 향유할 사람의 ‘삶의 형태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고 또 그들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탐구도 있어야하겠죠. 또 얼마나 심미적인가-미적인 부분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저는 얼마나 좋은 느낌을 주는가에 촛점을 맞추는 편이고요, 또 얼마나 창의적인가를 고민하고 더 나아가 이 건축물이 주변과 어떤 조화를 이뤄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까지도 할 수 있다면 좋은 건축이 되지않을까 생각해요.
‘건축은 인문학’이라고도 하던데 건축가가 되기 위해 평소 어떤 공부를 하시는지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건축을 하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철학을 공부하라는 말씀을 늘 하셨는데 저는 철학도 나름 공부하지만 우선은 그냥 육안으로 직접 건축물들을 많이 보는 훈련을 하고있어요. 일반인들이 건물의 외관을 본다던가, 혹은 건축물 내부의 공간을 본다던가 하겠지만 저희같이 건축물을 직접 만드는 사람은 일반인들이 보지못하는, 건축물의 실체를 넘어서는 곳까지 시야가 열려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다양한 View Point로 보는 훈련을 하고있구요, 또 더러는 어떤 주제를 놓고 건물을 탐색하기도 해요. 일테면 도서관을 본다고 할 때 도서관이라는 주제에 맞게 분석적으로 접근한다고 할까요? 여러 다양한 분야로 많은 공부가 필요한데 사실 마음만 있고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 소수민족 건축가로 활동한다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워낙 다양한 인종의 건축가들과 섞여있다보니까 내가 소수민족으로서 어떤 불이익이나 어려움을 겪었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요. 다만 문화적 차이가 주는 혼란이나 보충공부가 필요한 경우는 있었어요. 클라이언트가 다양하다보니 건축에 있어서 여러 인종이 각기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든가, 특히 요즘은 Gender 이슈가 화두다보니 화장실을 설계할 때 미리 사회적인 흐름과 신생문화를 빨리 읽고 이해하는 능력도 필요하거든요. 소수인종 건축가로서는 단점 이전에 오히려 장점이 더 많지않을까 싶은데요, 자란 환경이나 가진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만의 고유한 독창성을 드러낼 수 있거든요.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클라이언트가 한국건축가를 선호하는 것도 저희로서는 큰 이점이 된다든지, 또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이 반영된 작업, 일테면 DMZ같은 곳은 어떻게 건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한국사람인 저에게로 집중된다든지, 등 소수민족으로서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앞으로의 계획도 좀 소개해 주시겠어요?
사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면 건축가는 매우 안정적인 직업이에요. 그렇지만 회사일이란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있고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고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시도해보기가 어렵죠. 그래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기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않고 그러기도 힘들어요. 그렇다고 독립을 하자니 우선 경제적인 문제가 있고요. 그래서 회사일을 좀 줄이고 개인적인 작업을 좀 병행해보고 싶어서 얼마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을 병행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관심있는 방향으로 개인 작업에 좀 몰두해보는게 우선적인 계획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