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ople Interview ]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바리톤 성악가 한규원

고급스럽고 힘찬 목소리로 많은 평론가와 관객의 사랑을 받는 바리톤 성악가 한규원이 공연차 미국을 방문했다.
미 서부에 있는 오페라 아이다호의 <카르멘>에서 치명적 매력의 투우사 ‘에스카미요’역을 맡았다. 오페라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에스카미요가 부르는 “투우사의 노래”만큼은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곡이다. <카르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내년에도 오페라 아이다호의 또 다른 작품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서부에서 공연을 마치고 뉴저지를 방문한 그를 맘앤아이 스튜디오에 초대했다.

“안녕하세요. 바리톤 성악가 한규원입니다.
오페라 아이다호(Idaho, Boise 소재)의 공연을 위해 미국에 3년 만에 왔습니다. 팬데믹때문에오페라공연무대에오르는것은근2년만인데요.
저는 이번에 오페라 <카르멘>에서 투우사 ‘에스카미요’ 역할을 맡았습니다”

오페라 카르멘은 유혹적이고 거친 매력을 소유한 집시 카르멘과 군인 돈 호세의 어긋난 사랑을 다룬 오페라이다. 사랑에 쉽게 싫증 내는 카르멘의 새로운 사랑이 되는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바리톤 한규원 씨가 맡은 역할이다 세계적 성악가로 인정받고 있는 바리톤 한규원 씨는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을까?

법조인이 되려던 대원 외고 모범생, 어느 날 성악가를 꿈꾸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에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좀 늦은 편 이었죠. 당시 영어 과외 선생님이 ‘너는 밤하늘의 별을 가끔 보 니?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의 가치는 뭐라고 생각하니?’ 같은 철 학적 질문을 많이 던지셨어요. 그로 인해 더 깊이 사유하게 되 고,어린나이에철학,종교,예술등인간의본질적가치를찾기 위한 공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든 것 같아요. 그전에는 법조인이 돼야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갑자기 음악을 공부하게 된 거죠.”

성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먼저 동네에 있는 상가 주소록을
보고 무작정 서울 음악원에 전화해 찾아갔다. 선생님께 성악을 할수있을지테스트해달라고부탁했고,음악을해도좋다는답
을 받았다. 그리고 부모님께 무슨 일이 있어도 성악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석 달 후 콩쿠르에서 남자부 1등으로 입상했다. 선생님은 단번에 1등을 거머쥔 그에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겠다 며 기뻐하셨으나, 성악 시작과 함께 내신 관리에 어려움을 겪으며 미국 유학을 결정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내신을 잘 받는 게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성악을 시작하면서 공부보다 성악에만 사로잡혀 있었어 요. 피곤하면 목소리에 안 좋으니까 무조건 자고, 수업 시간에도 피곤하면 자고요. 청소 시간에는 먼지 마시면 안 되니까 도망가 있고 (하하)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내신이 나빠졌어요” (웃음)

“당시할머니와작은아버지가미국에계셨는데,부모님께서음악을하려면어차피외국에가는게도움이될테니 조금일 찍 유학을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고등학교 3학년 1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미국에 오게 됐습니다”

미국으로 유학 온 고등학생으로서의 첫 시작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 미국에 와서 고등학교 3학년으로 들어갔는데 제가 다녔던 곳 은 ESL이 없는 학교였어요. 3학년 공부를 시작하고 2주 정도가 지나 서 선생님이 2학년으로 내려가 공부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때는 어린 마음에 1년 더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이 친구들보다 뒤처지 는것같아속상했어요.그런데계속미국에서살다보니,그1년의시 간이많은도움이됐던것같아요.”

맨해튼 음대와 동 대학원을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같은 학 교에서 Professional Study를 수료했다. 뉴욕에서의 생활은 어땠을까?
“고등학교는 메릴랜드에서 다니다 뉴욕으로 왔는데, 대학 1학년 1학기 를마쳤을때갑자기집이좀어려워졌어요.당시그런유학생들이많았 겠지만, 저도 고생 좀 하면서 학교에 다녔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래도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다른데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정 말 음악에 빠져서 연습도 제일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수업 이 비는 시간에는 항상 도서관에 가서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몇 해 전에 학교에 오랜만에 가서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들어봤어요. 옛날에 학교 다니던 생각이 나서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그때 고생은 했지만, 시간을 돌려서 다시 공부하라고 해도 즐겁게 할 것 같아요.”

바리톤은어린나이에맡을수있는역할이제한적이다.바리톤 성악가에게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성악이라는게나이들면서할수있는역할이많아지기도하고,바뀌 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오페라의 주인공, 특히 로맨스가 있는 남자 주인 공은 대부분 테너와 소프라노가 많아요. 바리톤은 아버지 역할이나 극 중 방해꾼 역할 같은 게 많은 편이고요. 그래서 젊을 때는 바리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적이에요. 테너는 나이 들어 관리가 잘 안 되면 공 연에서기힘들수있는데바리톤같은저음성악가는나이가들수록더 많은역할을편하게할수있죠.”

그는 졸업 후 San Francisco Opera가 주최하는 Merola Opera Program에 발탁되어 오페라 <Don Giovanni> 무대로 호평을 받았다. 그 후 같은 작품으로 미주 31개 도 시 순회공연을 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의 상근단원 Adler Fellowship에 한국인 최초로 발탁된다. 그리 고 오페라단 Schwabacher Debut Recital 무대로 전 석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 Strassbourg 국립 오페라단 <투란도트> 공연으로 유럽 오페라계에 데뷔하면서 매니저도 생겼고, 같은 해 도쿄의 신국립극장 에서 <마적> 공연으로 일본에 데뷔하면서 본격적으로 각국을 돌며 공 연을 하게 됐어요.”

일본 오사카에서 매년 연말, 1만여 명의 합창단과 함께 하는 무대에 솔리스트로 서다.

“유럽에서 오페라 공연을 같이한 일본인 지휘자님이 일본에서 공연해 보 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다음 해에 이를 기념하 는공연이일본에서열렸는데,일본가수두명과한국가수두명이함 께 서는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를 계기로 지휘자님께서 일본에 매년 12 월 첫째 일요일에 열리는 합창 공연에 솔리스트로 설 기회를 주셨어요. 10,000명의 합창단과 함께 합창 교향곡인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부르 는 공연인데요. 2004년 이후 거의 매년 공연에 참여해오다 코로나 이 후 함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너무 떨렸어요. 합창 교향곡에서 바리톤 솔로 가제일먼저나오거든요.1만명의이목이쏠려있는가운데혼자솔로 로 노래를 하려니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솔로 파트가 길진 않지만 까다 로워서몇해동안긴장하고스트레스도많이받고떨면서불렀던것같 아요.이제는150회이상공연을해서예전보다는좀편하게공연을즐 기며하는것같아요”

성악가조수미는목관리를위해평생비를한번도맞아보 지 않았다고 한다.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다. 바리톤 한규원의 목소리 관리 비법이 있을까?

“성악가의컨디션조절은재미있는일화가많아요.아는동료중에는여 름에도오리털점퍼를입고자는사람도있었어요.목을아끼기위해사 람들을만나도말을안하는사람도있고,바람부는곳에는나가지도않 는다는 사람도 있고요.”

그러나 성악가 한규원은 ‘일상생활을 하며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자 신의 철학이라고 한다. 컨디션 조절에 너무 얽매이면 정작 일을 즐기며 할수없기때문이다.

“성악가가 평소 연습 때 하는 만큼 무대에서 부른다면 잘하는 것이라 할수있어요.저는평소같은컨디션을유지하는게중요하다고생 각합니다. 잘 자고 물은 많이 마시고 즐겁게 생활하면 무대에서도 평 소와비슷한소리를낼수있다고생각해요”

KBS 드라마 <대왕 세종>의 OST를 부르고 열린 음악 회에 다수 출연하며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그는 최근 고려대학교 강단과 기업 강의 등에도 나서며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내년에 아이다호 오페라에서 또 다른 작품 공연을 하기로 했습니다. 올해는대학강의시간이더늘어서강의준비를하는데도많은시간 을 쏟을 것 같아요. 그리고 팬데믹으로 얼어붙었던 공연계가 정상화 되길바라며더많은공연을통해관객들을만날수있도록잘준비 하려고 합니다. 맘앤아이 독자 여러분도 봄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하 루빨리 맞게 되시길 바랍니다.”

Mom&i 맘앤아이